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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주언니 Aug 07. 2024

아이 둘을 잃어버릴 뻔 한 오늘

산책을 하다가 순식간에 삶이 잠시 고꾸라진 어느 날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아이들을 간혹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신문에서, 뉴스에서, 여기저기서 들은 기억이 있다. 우리 엄마도 내 막냇동생이 10살이던 해에 잠시 아이를 잃어버렸다가 찾았고, 나도 놀이공원에서 없어져 잠시 잃었다가 찾은 적이 있다고 했다. 아이들을 잃어버리는 경우에 대부분은 금방 찾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의 상황이 나에게는 제발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었다. 아이들을 잃어버리는 것이 굳이 부모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그건 정말이지 너무도 순식간이고,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우연히 그 모든 박자가 딱 맞아떨어진 최악의 결과라고 늘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니 그런 일이 제발 나에게는 일어나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던 날들이 있었다. 




오늘의 위니펙은 여느 8월 답게 선선했고 여름이 저무는 날씨였다. 

남편은 나이트 근무를 갔고 나는 아이 셋과 함께 해가 지기 전 저녁 산책을 다녀오자고 길을 나섰다. 남자아이 둘은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 했지만 나는 "엄마는 좀 걷고 싶은데.. 웬만하면 다 같이 좀 걸었으면 좋겠어. 굳이 타고 싶다면 엄마가 보이는 곳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타. 그럼 타게 해 줄게." 

둘째와 셋째는 그렇게 하겠노라 약속을 하고, 나와 딸은 손에 물통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섰다. 

동네를 쭉 둘러싸고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가끔씩 짧은 차 다니는 도로를 지나야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남자아이들 뒤에서 "양쪽 멀리까지 보고 차가 안 오면 건너도 좋아"를 외쳤다. 막내는 형아 옆에 서서 형이 "건너자!" 하면 얼른 자전거를 타고 후다닥 길을 건너갔다. 나는 두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많이 컸네. 이제 제법 길도 잘 건너고' 생각하며 딸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아이들 뒤를 걸어갔다. 

아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엄마를 기다렸다 길을 건너고, 기다렸다 길을 건너는 게 귀찮았는지 큰아들이 말했다.

"엄마, 우리 이제 큰 놀이터에서 만나요!"

"너 갈 수 있어? 거의 다 오긴 했는데. 그럼 거기서 만나자. 동생 잘 챙기고!"

"네!" 


그렇게 딸과 함께 계속 걷는데 문득 '아! 그 놀이터를 가려면 다음 길 건너는 곳에서 쭉 가면 안 되고 왼쪽으로 꺾어야 하는데. 기억을 하려나? 기억 못 하고 그냥 계속 쭉 갔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스치기 시작했다.

딸에게 "놀이터에 잘 도착했겠지? 설마 계속 쭉 간 건 아니겠지?" 하자 딸은 "얼른 가보자" 한다.

갑자기 딸과 나는 놀이터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왼쪽인데. 여기서 왼쪽을 보면 놀이터는 보이지 않아. 하지만 여기서 왼쪽으로 갔어야 해. 도착했을까?'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딸아이는 "있겠지 엄마? 응응? 잘 도착했겠지? 제발 얘들아.." 하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다독이며 "괜찮아. 우린 놀이터에서 만나기로 했어. 있을 거야."


놀이터에 도착해서 딸에게 얼른 아이들을 찾아보라고 했다. 밝은 초록 티셔츠를 입고 있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딸아이도 나도 아들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 애들이 없어 어떡해! 어딜 간 거지? 어딜 가서 찾지?" 엉엉 우는 딸아이를 달래며 괜찮을 거라고. 분명 가다가 놀이터가 안 나와서 다시 왔던 길로 돌아오고 있을 거라고. 하며 얼른 다시 산책로로 달려 돌아갔다.


'애들이 분명 왔던 길로 다시 나를 찾으러 올 거야.' 하는 생각 하나만으로 아들들의 이름을 크게 불러가며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전거 타는 사람 하나 안 보이고,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슴이 미친 듯이 쿵쿵 뛰어대고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꾹 참으며, 나보다 더 한없이 울고 있는 딸아이를 달래 가며 계속 달렸다.

길을 가다 보니 왼쪽에 분수대가 보였다. 그 분수대 옆이 바로 놀이터다.

'혹시 저 분수대를 아들이 보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원래 가던 길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놀이터로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생각하며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린 다시 놀이터를 향해 왼쪽으로 달려갔다.

"딸! 얼른 가서 다시 한번 찾아봐봐. 분수대 보고 찾아왔을 수도 있어!"

딸아이는 "얘들아 제발 제발" 울먹이며 놀이터를 향해 달리고 나는 계속 뒤를 돌아보며 혹시나 길이 어긋나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며 놀이터를 향해 다가갔다.

그때 "엄마! 저기 있어!" 하는 딸아이. '됐다!' 하는 생각.

그대로 막 달려서 놀이터를 향해 가는데 자전거를 타고 놀이터 반대쪽에서 들어오는 두 녀석이 보였다. 나는 막 달려가서 그 많은 사람들 틈을 헤집고 아들들을 와락 안았다. "왔네! 어떻게 왔어! 왔으니 됐어!" 

참았던 울음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왔다. 그 시간 저녁, 선선한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이 놀이터에 있었는데 저 아줌마는 왜 저렇게 우나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엉엉 울었다.


"아들! 길 잃었었어? 엄마는 아까 여기 왔었는데 네가 없어서 길 잃은 줄 알고 너무 무서웠어. 다신 널 못 볼까 봐."

"아무리 가도 놀이터가 안 보여서 동생이랑 다시 엄마한테 돌아가자고 뒤로 돌아서 계속 왔는데 엄마가 없는 거야. 그래서 조금 당황했는데.. 오다 보니까 분수대가 보이는 거야. 그래서 여기로 찾아왔어."

역시나 분수대였다. 

그 시간, 그렇게 콸콸 분수대에 물이 틀어져 있어서 감사하고, 두 번은 엇갈리지 않고 타이밍 맞게 이곳에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일하고 있는 남편에게 장문의 카톡을 남겨서 방금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짤막하게 보냈다. 어쨌든 지금은 아이들을 다 만났고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고 가슴이 무너져 내렸었더라고..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수만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은 이미 일어난 일들 같았다.

'만약 납치라도 됐다면..'

'만약 길이 계속 엇갈려서 해가 지도록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만약 어딘가에서 사고를 당했는데 아무도 모르게 아이들을 데려갔다면..'

'만약 경찰까지 부르는 상황이 됐더라면..'

'만약 두 아이를 다시는 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더라면..'

'만약, 만약, 만약.....'


집에 돌아와 큰 아들이 씻는 동안 막내아들이 말한다.

"엄마, 아까 형아가 그랬어. 괜찮아. 엄마는 벌써 놀이터에 가 있을 거야."하고..

그랬구나.. 우리 아들이 동생 마음을 살폈구나..


아이들을 재우면서 "엄마, 나는 아까 정말 엄마를 잃는 줄 알고 조금 걱정했어요. 동생이 형아 혹시 우리 엄마 죽.. 하는데 내가 얼른 아니야. 엄마는 놀이터에 이미 가 있을 거야.라고 했어요."

아직 9살인 아들이, 맨날 집에선 동생이랑 투닥투닥하는 아들이, 그래도 자기가 형이라고 동생이 이상한 말 하며 걱정할까 봐 그 마음을 알아채고, 자기도 무서웠을 텐데 두리번두리번 살피면서 안전하게 동생까지 데리고 엄마한테 와줘서 너무 고맙다고. 엄마가 진짜 너무너무 고맙다고. 엄마는 혹여나 너희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할까 봐 그게 너무너무 무서웠다고. 진짜로 너무너무 무서웠다고. 엉엉 울며 말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생기는 일들이 있다.

계속해서 내 눈앞에 두고 있겠노라 다짐해도 꼭 모든 사건사고는 내가 아주 잠시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알고 있었기에 늘 두려웠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순간에 찾아오는 사고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도 차마 생각지 못한 그 단 하나의 생각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 그 일들이 차라리 나의 일이면 괜찮을 텐데 내 아이들에게 찾아오고, 우리 가정에 찾아온다는 사실은 늘 나를 두렵게 했다.

언젠간 나도 아이들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늘 있었지만, 그래서 늘 조심했지만. 그럼에도 아주 갑작스럽게, 산책하다가 내 인생자체가 갑자기 고꾸라져 버린 듯한 이 일은 앞으로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큰아들이 "다신 자전거 안 탈래요." 한다.

나는 "아니야. 자전거가 문제가 아니야. 네가 자전거를 타는 것도 문제가 아니야. 오늘은 그냥 잠시 길을 잃었을 뿐이야. 그러니까 자전거는 타도 돼. 단 엄마가 보이는 곳에 있어줘. 엄마는 네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게 젤 무서워."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자려고 침대에 걸터앉은 아이를 안고 펑펑 울었다. '내가 너를 오늘 이 시간 보지 못했다면 난 어떻게 됐을까.. 우린 모두 어떻게 됐을까..'

"엄마, 괜찮아. 울지 마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해결됐잖아요. 괜찮아. 해결 됐어." 하면서 내 등을 토닥토닥해주는 아이. 


오늘 그 잠시의 시간. 10분인지 15분이었는지 모르겠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너도 크고, 나도 크고, 우리 모두 한 뼘 더 자란 시간이었다. 동생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딸아이는 나는 동생 없이 살 수 없다 고백하는 날이었고, 조금 무서웠지만 형아가 괜찮다고 말해줘서 나는 괜찮았다고 말하며 형아를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막내가 되는 날이었다. 나 또한 잠시 눈앞에서 놓아준 나의 아이들이 이렇게 순식간에 내 삶에서 놓아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날이었다. 



뒤늦게 남편에게서 카톡이 도착했다.

엄청 무서웠겠네. 우리 큰 아들 진짜 잘했네. 맛있는 거 사줘야겠다.

다들 고생 많았네. 그러게 자전거를 눈앞에서 타라니까.. 아주 큰 거 배웠겠다 등등..


욕먹을 각오도 했는데. 너는 애를 어떻게 보는 거냐며..

늘어지는 잔소리를 하면 군말 않고 다 들을 각오도 했는데..


그런 모진 말들보다 나를 걱정해 주는 남편의 말 한마디에 쿵쿵 뛰던 가슴이 아주 조금은 잦아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늘 우리 가족 모두는, 아주 조금 성장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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