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초등학교 아이들 성적표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사립학교이다. 처음부터 아이를 사립에 보낸 것은 아니었다. 큰 아이는 킨더부터 2학년까지 3년간, 둘째는 누나와 같은 학교의 킨더만 다녔다. 그러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자는 결론이 났고 지금은 돌아오는 9월에 1학년이 될 막내까지, 세 아이가 모두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다.
큰 아이가 이번에 6학년이 되니, 아직까지 중고등학교에 해당되는 Gr.7-12학년은 어떤 성적표를 받는지 모른다. 대신 지금까지 받아본 우리 아이들의 초등학교 성적표를 가지고 캐나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성적표 방식과 개인적으로 느끼는 공립과 사립학교 성적에 대한 느낀 점들을 적어보고자 한다.
캐나다 학교는 1년이 총 3학기로 되어있다. 그래서 각 학기마다 한 번씩, 1년에 3번의 성적표를 받는다. 성적표를 받는다고 해서 중간기말처럼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저학년까지는 각 과목마다 진행되는 프로젝트, 과제, 수업시간에 하는 활동들을 전반적으로 평가해 성적에 반영되고 고학년부터는 자주 보는 퀴즈(테스트)의 성적, 과제의 성적, 발표를 얼마나 잘 준비하고 완성도가 높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모든 성적을 토대로 점수가 나온다.
공립이나 사립이나 성적을 매기는 방식은 동일하다. 1점부터 4점까지.
성적표 맨 앞장엔 결석일수와 지각한 날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적혀있고 1점부터 4점의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나와있다.
그리고 그 뒷장엔 아이의 전반적인 학업 자세를 평가하는 learning behaviour scale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을 볼 수 있고 그 다음부터는 각 과목에 대한 세부사항들과 함께 점수와 각 과목별 선생님의 코멘트를 볼 수 있다.
공립이나 사립이나 성적표의 전반적인 형태는 매우 비슷하다. 특별히 다른 부분은 없다.
각 trem(학기)마다 성적표 배부 날짜가 있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적표를 가지고 집에 온다.
한 가지 차이점은 공립학교는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마지막 수업날(term3) 학교에서 모두에게 성적표를 나눠주고 우리 아이들의 경우엔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1주일 정도 후에 성적표가 집으로 발송된다는 점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벌써 3주째에 접어들었다. 아이들의 성적표는 2주 전에 집에 도착했다.
학교에서 보낸 메일을 열어보니 '오늘 너희 집으로 성적표를 보냈고 마지막 장에 보면 내년 너희 아이들을 담당할 담임선생님의 이름이 적혀있다.'는 메일이었다.
매년 6월 말이 되면 아이들은 내년에 어떤 선생님이 걸릴지 조마조마하면서 제발 좋은 선생님이 걸리길.. 제발 내가 원하는 친구들과 같은 반이 될 수 있기를.. 하며 기대한다. 그 결과가 마지막 성적표에 적혀있는 것이다.
이제 6학년이 되는 딸아이는 이런 성적표 받는 일에 익숙해졌다. 방학이 시작되었고, 곧 집으로 성적표가 날아올 것이다. 나는 진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몇 점이 나왔을지, 내년엔 어떤 선생님 반에 당첨되었을지 두근두근 댄다는 이야기를 일주일 내내 입이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했다. 그리고 드디어 집에 성적표가 도착할 날이 되었다.
"엄마엄마! 메일박스 봤어? 성적표가 왔을 건데..!"
"알았어..! 갔다 온다고!!"
아니나 다를까 메일박스를 열어보니 학교에서 날아온 성적표 3개가 봉투에 고이 접어들어있었다.
"왔다!"
"빨리빨리!"
초등학생 성적이 뭐 그리 중요하냐만은 유난히 성적에 집착하는 우리 집 큰 아이는 두근두근 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성적표를 뜯기 시작했다.
봉투를 뜯자마자 가장 먼저 맨 뒷장을 휙 뒤집는다.
"Yes!"
"선생님 누구야? 네가 원했던 선생님이야?"
"완전완전! 나 지금 기분이 날아갈 거 같이 좋아!"
선생님을 확인한 후에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천천히 성적표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다행히 점수가 나쁘지 않다. 딸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덩실덩실 춤을 추며, 아주아주 만족한다고 쫑알쫑알 떠들어댄다.
처음 공립에서 사립으로 옮겼을 때. 그리고 옮기려고 마음먹고 있을 때. 사람들이 말하는 이야기를 주워듣길, 공립이나 사립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사립을 보내시는 분들은 "확실히 달라. 아이를 사립에 보낼 마음이 있다면 돈이 좀 들더라도 사립을 보내라." 하셨지만 공립을 보내시는 분들은 "크게 뭐 다른 것도 없는데 굳이 사립을?"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아직 사립을 보내보지 않은 나로서는 어느 이야기를 좀 더 귀 기울여 들어야 할지, 우리 아이에겐 어떤 학교가 더 맞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위니펙의 전반적인 공립학교 수업 환경이 맘에 차지 않았고 가장 큰 계기는 두 학년이 함께 수업한다는 사실이 사립으로 맘을 바꾸게 했다. 1학년과 2학년이 한 반, 3학년과 4학년이 한 반. 교육청은 그렇게 하기로 한 여러 가지 이유들을 제시했지만 결국은 교사 부족의 문제이고 한국 엄마인 나는 학교 수업을 곧잘 따라가는 우리 아이에게는 맞지 않는 시스템이라 생각해 오랜 고민 끝에 사립으로 맘을 돌렸다.
그렇게 3학년부터 전학을 간 아이는 평소대로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다. 수업의 참여도를 보자면 선생님 말씀에 그 어떤 토 하나 달지 않는, 범생이 스타일의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하지만 엄마인 나는 내심 사립으로 옮긴 후의 첫 번째 성적표가 너무도 걱정이 되었다.
역시나.. 아이가 3학년 term1이 끝나고 가져온 성적표는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공립에서는 모든 과목이 거의 4점이었고 어쩌다 3점이 몇 개 있었는데 처음 보는 2라는 숫자가 내겐 매우 충격이었다. 4점은 별로 없고 대부분이 3점인 점도 그랬다. 사립학교의 점수가 깐깐하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숫자가 성적표에 찍혀있는걸 처음 본 나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지 못했더랬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략
4점은 90점 이상
3점은 80점 이상
2점은 60-70점대
1점은 50점 이하
의 느낌이다. 그리고 각 과목을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 수업의 전반적인 것으로 평가를 하는데 2점이라니. 역시 사립은 다르구나 생각했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모든지 웬만해선 4점을 주는 공립과는 확연이 다르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 첫 성적표는 나뿐만 아니라 아이에게도 약간의 충격을 주었고 이것을 계기로 사립은 공립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아이가 3학년을 지나 4학년, 5학년을 지나면서 분명히 시험의 양도 많아지고 프로젝트나 점수를 받기 위한 과제의 수가 공립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선생님들은 어느 정도 잘하는 아이 누구에게나 4점을 주지 않았고 정말 잘했다고 생각되는 아이에게 4점을 주는 것 같았다. 가끔은 5점을 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드문 케이스라고 딸은 말했다.
한국에서 아이들과 캐나다로 이민오시는 대부분의 한국 부모님 중에 한국교육 시스템을 이곳까지 끌고 오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은 캐나다 맞춤형으로 이제부터 우리는 캐나다에 살게 되니 이곳 시스템을 알아가고 적응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이다. 캐나다는 한국과 다르게 학교가 너무도 자유롭고 각종 시험으로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으며 특히나 공립의 경우엔 학교에서 내주는 숙제도 거의 없다. 학교를 말 그대로 다녀오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내가 지켜본 아이들의 학교는 공립과 다르게 과제가 꽤 많은 편이다. 그리고 여러 스타일의 아이들이 있겠지만 우리 아이의 경우엔 그 모든 프로젝트에 진심이고, 잘하고 싶고, 좋은 결과를 내고 싶어 한다. 그런 면에서 이 학교가 우리 아이와 잘 맞는구나 생각한다. 반면 점수는 생각보다 깐깐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3년간 아이들의 성적표를 쭉 놓고 보면 1학기에서 2학기에 성적이 조금 더 오르고 3학기에는 2학기보다 성적이 조금 더 오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학교의 특징인지는 알 수 없으나 둘째 아이도 전반적으로 비슷한 양상을 보여준다. 마치 '아이가 매 학기마다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엄마.' 하고 말해주는 듯하다.
초등학교 점수는 아무 데도 쓸모가 없다.
단순히 '너희 아이가 학교에서 이런 것들을 배웠고 굳이 점수로 따지자면 몇 점이야.' 하는 정도를 알려주는 것뿐이다. 그 점수가 아이를 판가름하는 데 사용되거나, 그 점수를 올리기 위해 사교육을 할 필요는 없다. 우리 둘째 아이의 경우엔, 수업자세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코메트를 보면 '다음엔 좀 더 고치려고 노력하자 아들아.' 하는 것이고 첫째나 둘째나 3점이든 4점이나 '이정도면 성적 매우 잘 나왔네!' 하고 느껴진다. 다만 성적에 스스로 욕심을 느끼는 우리 집 큰 아이의 경우엔 3점만 받아도 승부욕을 느끼고 다음엔 4점으로 만들겠어! 하는 의지를 불태우는 계기로 사용된다. 결국 그 4점이 중고등학교 때 100점 만점에 몇 점으로 이어지는지가 관건이고, 내가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한국과 다르게 킨더부터 성적표를 주는 나라. 하지만 그 성적표의 의미가 아이를 판가름하는데 쓰이지 않는다는데 나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그저 내 아이를 알아가는 지표로 활용되는 것이 좋고 거기서 멈출 수 있어서 좋다. 성적표는 받지만 옆 친구와 경쟁하지 않아도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내가 몇 등인지도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래서 성적표는 매번 받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학교를 단순히 즐거운 곳으로 인식하고 다닐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