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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찐주언니 Jul 06. 2024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캐나다 아이들의 여름방학

캐나다는 6월 마지막까지 수업 일수를 채우면 7월 1일 캐나다데이부터 2개월간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무려 2개월. 말이 2개월이지 진짜 개학은 9월 첫째 주 수요일에 하니 실제로는 2개월에 앞뒤로 5일 정도 방학이 더 붙는다. 말 그대로 여름 내내 놀라는 말이다.

그 추운 겨울에도 겨울방학이 고작 2주였으니 여름방학 두 달은 당연한 건가. 

특히나 이번 여름, 위니펙엔 참 많은 비가 내렸다. 하루가 머다 하고 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내리고, 소나기인 줄 알았는데 종일 비가 올 때도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5월엔 봄이고 6월부턴 더운 날이 며칠 있어야 하는 위니펙이 6월 내내 선선한 바람이 불기만 반복하고 7월에 들어서고 5일이 지난 오늘에서야 비로소 여름날씨를 느낄 수 있었다. 바깥온도 28도까지 오른 오늘. 수영하기 딱 좋고, 뒷마당에서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매년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아이들은 엄마와 공부하는 패턴이 자연스레 바뀐다는 것을 안다. 평상시엔 매주 토요일 하루 40분정도 하던 공부가 방학이 되면 자연스레 평일로 바뀌고 주말에 공부를 쉬는 패턴이다. 매일 같이 게임이 하고 싶은, 특히 남자아이들은 게임을 매일 할 수 있게 하는 조건으로 엄마와의 공부를 걸었다. 대신, 공부를 먼저 하든 게임을 먼저 하든 순서는 상관이 없다. 엄마와 공부시간은 오전 10시 30분 정도에 시작한다고 정해놨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게임을 먼저 하고 공부를 하든, 공부를 하고 게임을 하든. 그건 상관없다는 이야기이다. 보통 여름방학이 시작됨과 동시에 나는 오전 9시에 일어나고 아이들은 8시 전에 일어나기 때문에 둘째와 셋째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티브이를 잠시 보고 9시쯤 게임을 한 시간가량 한다. 게임이 끝나면 9시에 일어난 내가 아이들 아침을 느지막이 준비해서 오전 10시에 대충 먹이고 10시 반이 되면 공부를 시작한다. 이런저런 공부와 숙제검사가 끝나면 11시 반이 되고 나는 바로 점심 준비를 한다. 아이들은 이때부터 자유시간이다. 무얼 하든 상관없지만 엄마가 내준 숙제는 반드시 내일까지 해올 것! 이것만 한다면 사실 남은 하루의 모든 시간은 노는 시간이다.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여름방학이겠지만 여기는 캐나다니까. 

여름방학은 이 여름을 맘껏 즐기며 놀라고 있는 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름방학에 캠핑을 간다. 텐트를 가져가는 가족들도 있고, 트럭에 트레일러를 끌고 캠핑을 가는 사람들도 있고, 캠핑카가 있는 사람들도 있고, 가족 캐빈이 있어서 여름 내내 그곳에 머무르는 사람들도 많다. 가족을 만나러 가기도 하고, 해외여행을 가기도 한다. 

우리 가족도 매년 여름엔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지만 올 해는 아무 데도 가지 않기로 했다.

올해, 우리 가족의 여름휴가는 우리 집 뒷마당이다.


작년 여름, 드디어 뒷마당 공사를 끝냈다. 무려 한 달 가까이 걸린 대공사였다. 

무수한 잡초들을 밀고, 수평을 맞추고, 돌을 깔고, 잔디를 깔고, 데크를 만들고, 가지보를 설치하고, 농구골대와 아이들을 위한 그네 그리고 트램펄린을 설치했다. 그러는 동안 가뜩이나 짧은 위니펙의 여름이 홀랑 지나가버렸다. 


올 해는 드디어 이 뒷마당을 실컷 즐기리라.


우리 집 백 야드는 꽤 넓은 편에 속한다. 

집에 놀러 온 사람들마다 "와.. 진짜 넓다." 한다.

넓긴 넓다. 

집을 지을 때 땅 두 곳  중 골라야 했는데 우리는 이곳을 선택했다. 넓은 뒷마당 때문이었다. 넓은 뒷마당이 좋았던 이유는 코로나 때 너무도 애타게 원했던 것들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이 넓은 뒷마당에 아이들이 굳이 놀이터에 가지 않아도 안전하게, 언제든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올해 4월이 되고 드디어 봄이 오는 듯하자 남편은 수영장 자리에 작년에 미리 사놓은 above ground 수영장을 설치했다. 5월엔 전기 기술업자를 불러 240v를 설치하고 수영장 물을 따뜻하게 덥히는 워머를 설치했다. 수영장에 필터를 달았고 정부에 인스펙션을 신청했다. 2주 안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5월 말 경에 수영장에 물을 채워주는 업체에 연락에 트럭 한가득 가져온 물을 우리 집 수영장에 채워 넣었다. 아직 덥혀지지도 않은 물에, 날씨는 아직 20도를 웃도는데도 우리 집 막내는 구지구지 들어가 수영을 하겠다며 물속으로 입수를 했다. 수영을 하기엔 아직 쌀쌀했지만 막내 아이는 자기 혼자 30분간 물놀이를 하다 나왔다. 그날을 시작으로 날씨가 엄청 덥지 않아도, 물이 따뜻해서 인지 아이들이 매일같이 물놀이한다고 수영장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주 짧은 7월과 8월, 딱 두 달의 여름을 즐길 준비는 끝났다.

지난주 목요일을 끝으로 아이들은 긴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학원이라곤 7월 둘째 주에 있을 수영이 전부다. 아이들 셋 모두 신청했는데 딱 일주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5일간 하루 한 시간 하는 수영수업이다. 둘째 아이는 늘 다니던 태권도에 매주 2번, 45분씩 태권도 가는 것과 일주일간 진행되는 코딩수업이 전부다. 다시 말해 여름방학 9주 중에 2주만 학원을 가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없다. 


놀고 먹고 놀고 먹고.


방학이 시작된 날. 집으로 택배가 하나 도착했다. 어머니께 부탁해 받은 한국 책과 문제집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큰 아이를 위해 나름 베스트셀러들을 골라 9권을 주문했는데 방학이 시작한 지 일주일 동안 8권을 읽어버렸다. 

더 이상 한국책 주문은 어려우니 영어책도 좀 번갈아가면서 읽는 게 어떠냐는 나의 말에 딸은 안 그래도 그럴 거란다. 책을 이토록 좋아하는 것이 누구를 닮은 건지 아직도 모르겠지만, 책 읽는 아이를 보며 안심하는 건 어느 부모라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큰 아이는 방학이 시작된 지 일주일 동안 여러 권의 책을 읽었고, 막둥이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돌봐주며, 가끔 엄마가 너무 늦잠을 자는 아침엔 동생들을 위해 간장계란밥을 차려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딸을 보고 있자니 앞으로 남은 여름방학이 두렵지 않다. 


둘째는 여름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눈 뜨면 티브이부터 켠다. 엄마가 유튜브를 보지 말라고 했으니 넷플릭스에 이것저것 기웃대는 중이다. 어쩌면 초등학교 4학년 아이에게 너무도 유치한 '브레드 이발소'를 보기도 하고 포켓몬스터를 돌려보기도 한다. 요즘은 엄마와 누나가 같이 보는 드라마나 예능을 옆에 앉아 보기도 한다. 얼마 전만 해도 엄마랑 누나가 티브이를 보고 있으면 재미없다고 위층으로 휙 올라가 버리더니 요즘엔 좀 컸는지 같이 앉아서 보고 있는 둘째를 보고 있으면 유튜브 보며 이상한 말투와 행동을 따라 하던 모습보다 훨씬 건전하고 보기 좋은 것 같아 안심이 된다. 둘째는 3살 때부터 조립하는 걸 좋아하고 엄마도 이해하기 어려운 도면을 보고 어려운 레고 조각들을 곧잘 갖고 놀았다. 그런 놀이들이 여전히 취미생활이 되어 요즘엔 "단순하게 이것저것 만지면 작동되는 것 말고 조금 더 복잡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서 이렇게 저렇게 작동할 수 있는 그런 거.. 없어요?"라는 둘째의 질문에 답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엄마는 뭘 원하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는데 다행히 아빠는 조금 아는 눈치다. 이 작은 시골동네에선 둘째가 원하는 박람회나 사이언스센터가 있을 리 없는데 어디를 가야 둘째를 만족시켜 줄 장소에 데려다줄 수 있을지 고민해 봐야겠다.


셋째는 이제 막 6살이 되었다. 방학이 끝나면 우리 집 막둥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고 우리 온 가족이 매일같이 말한다. 우리 집 막내는 그냥 어린 아이다. 떼쓰고 우는 척하면 누구든 달려들어 자기를 아기처럼 달래주는 형이 있고 누나가 있어 든든한 아이이다. 누구보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있고 그래서 받은 사랑만큼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아이이다. 막내와 이번 여름방학부터 초등학교 1학년 수학 문제집을 풀어보기 시작했다. 너무도 쉽고 단순한 숫자 공부임에도 막내 손에 문제집이 들려있는 게 아직도 마냥 신기하다. 나에겐 마지막 한글을 가르칠 대상자 이자,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키워야 할 마지막 아이이다. 올여름 방학 내내 수영 열심히 하고, 한글을 좀 더 가르쳐주고, 1부터 100까지 셀 수 만 있게 준비시켜 학교로 보낸다면 이보다 더 뿌듯할 순 없을 것 같다. 




벌써 방학이 1주일 지나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나와 아이들은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중인 것 같다.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바깥을 내다보며 라면을 끓여 먹고, 날이 좋으면 뒷마당으로 나가 수영하고, 농구하고, 그늘에 앉아 느긋하게 책도 보고 커피도 마시면서.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인 하루하루를 살았는데 아이들이 방학을 하니 모든 게 여유로워졌다. 

다만 삼시 세 끼가 걱정일 뿐. 


남은 방학이 구만리이다. 

올 해는 뒷마당에서,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행복한 시간을 많이 많이 보내는 게 목표다.

곧 큰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서 저 해맑은 웃음을 언제부터 보지 못하게 될까 문득 멈칫할 때가 있다. 

그날이 오기 전에 맘껏, 이 여름을 아이들의 웃음소리 속에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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