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Very Normal Day
가장 보통의 하루.
오늘 눈을 뜨자마자 떠오른 문장이다. 잊기 전에 검색창에 입력해 보았으나 단편 영화와 관련된 결과밖에 나오지 않았다. 분명 낯이 익은 문구였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고 찾아보니 스치듯이 봤던 '언니네 이발관'의 2집 앨범의 제목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장 보통의 하루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내 뻔하디 뻔한 방학 루틴을 보면 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운동을 가고, 샤워를 하고, 책을 읽고, 정리하는 하루. 매일 먹던 반찬에 매일 먹던 밥을 먹는 하루.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무언가를 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불안한 하루. 분명 평범한 것이 제일 어렵다지만 정작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난 뭐가 어려운지도, 뭐가 행복한 지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하루.
오늘도 독서 노트를 작성하기 위해 『타이탄의 도구들』을 정독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 없이 눈알을 굴리던 중 '별것 없는' 문단이 시선을 붙잡았다. '팀 크라이더'라는 사람이 쓴 글을 발췌한 것이었다. 자기 계발서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주제였음에도, 무언가 이상했다. 언뜻 보면 진부할 만한 내용이 왜 이리도 와닿았는지 모르겠다. 이 글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을 찾아라'라는 제목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로 시작되는데, 현대인들의 '바쁘다'는 단어가 21세기 들어 제일 많이 하는 대답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뉴욕에서 프랑스로 터전을 옮긴 친구의 이야기를 예시로 바쁜 환경이 인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심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얼마나 건강을 해칠 수 있는지를 읊는다. 특히 '대학 입학 때 유리하게 작용할 각종 과외활동을 챙기는 학생처럼 친구들에게 뒤지지 않도록 빈틈없이 스케줄을 세운다'는 문장에서는 미국이나 대한민국이나 별반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현대 사회는 바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심하게 바빠질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이를 『미래 쇼크』를 통해 높은 일시성과 신속한 처리를 바탕으로 제목 그대로 '미래 쇼크'가 일어날 것이라며 시사하고 있다. '바쁘다'는 단어는, 이보다 정확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인들의 일상을 대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잠시 현대인들의 일상에 대해 비판한 문단을 읽어보자.
바쁨은 존재의 확인이자 공허함을 막아주는 울타리 역할을 한다. 노트에 일정이 꽉 차있는 사람의 삶은 어리석거나 하찮거나 무의미할 수가 없을 것이다. 시끄럽고 정신없고 스트레스 넘치는 생활은 우리 삶의 가운데에 위치한 '두려움'을 가리기 위함인 듯하다. 하루 종일 각종 업무를 처리하고 이메일에 답하고 영화도 보면서 도저히 한 눈 팔 틈새 없이 바쁘게 움직이다가 잠자리에 들면, 낮에는 성공적으로 막아두었던 평소의 걱정거리와 질문이 밤에 불을 끄는 순간 옷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괴물들처럼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도 지금 당장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는 다급한 일들이 튀어나온다. 그래서 누군가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혼자 남겨지는 것'이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팀 페리스 - 『타이탄의 도구들』 p320.
'두려움'. 저 한 단어에는 일일이 늘어놓을 수도 없는 현대인들의 많은 애환이 담겨 있다. 20대에게는 졸업과 취업, 30대에게는 내 집 마련과 결혼 따위의 것들 말이다.
나도 그랬다. 아니, 그러고 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완벽하게 끝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히곤 한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도 휴학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추가 학기를 수강해도 되는 것인지, 빌려놓은 책은 언제 다 읽을 것인지, 오늘 하루도 후회 없이 살아왔는지에 대한 무수히 많은 '두려움'에 잠겨있었다. 이마저도 똑같이 불안해했던 며칠 전의 내가 몇 번이고 점검했던 것들인데도 말이다.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두려움에 도사리고 있다. 한 술 더 떠서 몇몇은 불안 장애를 달고 사는 것 같다. 물론 이들이 모든 세상 사람을 대변하진 못하겠지만, 선배, 친구들로부터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말말말ㅡ과 그것이 정설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이들ㅡ을 보면 적어도 젊은이들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을 위해 불안에 떨었고, 무엇 때문에 불안해했던 것인지 떠올려보면 코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일들 때문이었다. 남들보다 성적이 낮게 나올지 불안했고, 사소해 보여서 건너뛴 내용들이 시험에 나올지 불안했고, 학교에 두고 온 물건이 없는지 불안해했고, 홀로 까먹은 학교 행사는 없는지 불안했고, 대회에서 수상하지 못해서 불안해했다. 학교 한쪽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던 사람에게는 사소한 일들이 세상의 전부처럼 보였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모든 것들을 병적으로 챙기고, 그것도 모자라 한 번 두 번씩 더 살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찜찜함이 사라지지 않는 후유증이 생겼다. 그저, 그럴 수 있다는 조그마한 관대함과 여유, 그놈의 보잘것없는 여유만 있었더라면 이러지는 않았을 터이다.
팀 페리스 - 타이탄의 도구들 p322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는 한 마디이다. 우리가 받아들이기도 힘들 정도로 빨라지는 세상의 템포 때문에 언제까지 시간이 사치품이 되어야 할까.
앞선 글의 저자도 여느 직장인과 별다를 바 없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산더미 같은 이메일, 수많은 프로젝트에 신물이 날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도망치듯 자연에 정착한 그는 다음과 같이 해방의 즐거움을 칭송한다.
이곳에서는 의무 때문에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 TV도 없고 이메일을 확인하려면 차를 타고 도서관으로 가야 한다. 일주일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을 수도 있다. 미나리아재비, 노린재, 별을 바라본다. 책 읽을 시간도 많다. 그리고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글을 썼다. 세상에 몰입하지 않은 채로 글의 소재를 찾기는 힘들지만, 세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소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중략) 비록 인간이 자연에 접근하는 방법을 비싸게 만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자연은 공짜다.
팀 페리스 - 타이탄의 도구들 p321~322
그가 자연의 아리따움을 표현하는 내용은 실로 감동을 자아낸다. 읽다 보면 찌르르 거리는 풀벌레 소리가 가득한 숲 속에서 명상하는 느낌이 든다. 미나리아재비, 노린재, 가마우지, 지빠귀처럼 누군가 붙여준 독특한 이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직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에 머무르는 우리의 육체는 강제로 '퓨처 사피엔스'로의 진화를 강요받고 있다. 그렇게 세상에 우리를 끼워 맞추는 사이 우리는 중요한 무언가를 잊으면서 살아간다. 때문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떠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단언한다. 자연 곳곳으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 타이탄들이 말해주었듯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여정이 될 것이다. 호화롭지는 못할지언정, 여전히 자연은 공짜니까.
최근 다녀온 바다의 밤하늘에는 별들이 수놓고 있었다. 때론 풀밭에 누워서 하릴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검은색 공백과 잔잔한 반짝임에 몸을 푹 담그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처럼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보고도 싶다.
그렇게 그리움을 하나둘씩 되짚다 보면, 우리가 잊고 있던 '가장 보통의 하루'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대한 그의 고찰이 담긴 문장으로 마무리를 지어볼까 한다.
죽음을 앞두고 더 열심히 일하지 않고 글을 더 많이 쓰지 않은 것을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닉과 게임을 하고 로렌과 늦은 밤에 긴 대화를 나누고 헤럴드와 배꼽 빠지게 웃던 시간이 더 많았으면 싶을 것이다.
인생은 바쁘게 살기에는 너무 짧다.
팀 페리스 - 타이탄의 도구들 p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