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손가락단의 차량은 칸트 앞에 멈춰 섰다. 그중 한 명이 험비(전투차량)에서 내리더니 칸트를 지나쳐 앨리스에게 다가갔다. 칸트는 그 남자의 행동을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앨리스의 후드를 걷어냈다. 앨리스는 그 남자를 노려보며, 으르렁댔다. 앨리스를 살펴본 남자는 차량을 향해 손짓했다. 세 손가락단은 일제히 앨리스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그때 칸트가 양손을 들고 차량 앞으로 다가가 세 손가락단을 향해 말했다. - 내 딸이오. 아직 묻을 자리를 정하지 못해 이렇게 떠돌고 있소.
지켜보고 있던 세 손가락 단원 중에 버킷 모자를 쓴 남자가 칸트를 보며 말했다. - 낡은 총을 가지고 있군. 뭘 사냥하지?
- 조그만 동물들..... 여우나 들개 따위가 대부분이죠.
- 나도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그런 엽총으로 사냥을 하곤 했지.
- 저 아이와 함께 사냥을 해 봤나?
칸트는 다소 무거운 어투로 대답했다.
- 변하기 전에는 그러질 못했소.
모자를 쓴 남자는 앨리스를 잠시 바라봤다. 앨리스의 마스크 사이로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 딸이라도 좀비와 있으면 감염되거나, 총에 맞거나 둘 중에 하나야. - 특히 우리 같은 헌터들은 좀비를 보면 습관적으로 방아쇠를 당기게 되거든. 그는 헌터들의 장식품인 좀비의 송곳니를 매만지며 말했다.
칸트는 앨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 그저 바라는 건 딸의 마지막을 내손으로 끝내는 것이오. 모자를 쓴 남자는 칸트를 잠시 바라보더니 일행에게 손짓을 했다. 차량들이 굉음을 내기 시작했다. 남자가 탄 차량은 칸트 옆에 멈춰 섰다. - 여기서 빨리 벗어나. 좀비들이 출몰한다는 소식이 있으니까. 칸트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남자에게 되물었다. - 이 황무지에 말이오? - 우리도 궁금해서 쫓는 중이지. - 딸의 일은 유감이야. 좀비들은 볕을 좋아한다는군. 양지에 묻어주게.
그들은 칸트와 앨리스를 지나쳐 향하던 방향으로 사라졌다. 칸트는 멀어져 가는 차량을 보며 말했다. - 이렇게 순순히 물러날 줄은 몰랐는걸. - 우리의 연기가 점점 나아지고 있어, 앨리스. 차량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고, 칸트는 앨리스의 후드를 씌운 후에 다시 길을 나섰다.
바람은 잔잔하고, 태양의 빛은 따가웠다. 칸트는 메말라 있는 물통 안을 뒤집어 흔들었다. 그는 지친 표정으로 앨리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 아까 그 벙거지 녀석한테 물을 좀 얻을걸 그랬어. - 세 손가락 녀석들 중에 그렇게 친절한 녀석이 있는 줄 몰랐지. - 50km는 더 가야 강이 나올 거야. - 이젠 니가 날 끌고 가야 할지도 몰라.
멀리서 가늘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였다. 칸트는 말했다. - 누군가 사고가 났거나, 약탈당한 것일지도 몰라. - 위험하지만 그래도 물을 얻을 수도 있으니 가봐야겠어.
칸트는 연기가 나는 곳을 유심히 살피며, 그곳으로 향했다.
세 손가락단의 깃발은 찢긴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차량의 유리는 거의 모두 깨져있고, 피가 여기저기 번져있었다. 뒤집힌 차량에서 연기가 나고 있었다. 오전에 마주쳤던 세 손가락단은 모두 몰살당한 듯 보였다.
칸트는 긴장한 채로 총을 겨누며 주위를 살폈다.
연기 나는 차량의 뒤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생존자가 있나>
칸트는 조심스럽게 차량 뒤로 다가갔다. 어떤 남자가 차량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칸트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 루터....
루터는 칸트를 바라보곤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 오! 마이 VIP~! 이게 얼마만인가! 루터가 칸트에게 다가가 안으려고 하자, 칸트는 루터에게 총을 겨누며 말했다. - 친한 척은 그만하고, 이것들은 너의 짓인가? - 응? 루터는 여유 있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 나는 무기를 파는 쪽이지 쓰는 건 별로라고.
- 내가 한 게 아니야.
칸트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 그러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루터는 뒤집힌 차량을 가리켰다. - 저 차를 보라고.
차량의 장갑은 뭔가에 의해 심하게 뜯겨 있었다. 칸트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 변종의 짓이군.
루터는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말을 이었다. - 그 변종을 추적하고 있었어. - 이 세 손가락단 친구들도 함께 말이야.
칸트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루터에게 물었다. - 넌 어떻게 무사한 거지?
- 난 이 근방에서 세 손가락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었어.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아 여기까지 찾아온 거고.
칸트는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다시 물었다. - 이런 개활지에 좀비가 왜 나타난 거지? 그것도 변종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