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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루쉰읽기

떠나라 가거라

루쉰, 전사의 글쓰기 #5

by 기픈옹달

뭐라도 써야지. 겨우 몇 글자를 적었다. 글쓰기는 시작이 어렵다. 뭐 그리 글쓰기 전에 할 일이 많은지. 이는 이것저것 들쑤시는 못된 버릇 때문이기도 하고, 실상 별 할 말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하지 않는 편이, 글 한 글자도 남기지 않은 편이 편하다. 이불속에 숨어서 뜨끈한 바닥에 내내 누워 있고만 싶다. 끙끙 앓는 척이라도 하면 그렇게 손가락질할 사람도 없다.


그래도 뭐라도 써야지. 체면일까? 체면이 소중하기는 한데, 나라는 사람을 따져봐도 체면을 그리 중시 여기는 사람은 아닌듯하다. 뻔뻔함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체면치례 하겠다고 스스로 수고를 감당할 위인은 아니다. 문득 위태롭게 쥐어 잡고 있는 줄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꾹꾹 눌러 글이라도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어느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여느 해보다 추위를 덜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추위가 좀 늦게 오는지 그렇게 춥지는 않다. 작년 이맘 때는 뼛속까지 추위를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아니면 지나치게 현재를 낙관하는 것일 수도. 기억이란 얼마간의 미화와 얼마간의 퇴색을 거치기 마련이다. 솔직히 말하면 고작 1년 전 일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생각이었는지 어떤 상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까마득한 시간의 뭉텅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득한 시간 속에 하루하루를 던져 넣으며 살아, 지난 시절이 잘 가늠되지 않는다. 선후도 불분명하고, 사건의 경과도 모호하다. 옛날엔 참 영특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수두룩하고, 설사 기억한다 해도 흐리멍텅한 것이 수두룩하다. 어둠이 차츰 나를 집어삼키는 듯하다.


정말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야. 종종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수긍한다. 사람을 알뜰히 살피는 사람도 아니며, 그렇다고 남을 소중히 챙겨주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까먹은 얼굴이 여럿 있다. 잊어버린 이름도 많다. 옛 인연과 두루 사귀며 주변인을 살뜰히 챙기는 사람을 보면 대단하다 싶다.


Y는 대학 입학 후 처음 만난 몇 사람 가운데 하나다. 모든 사람이 낯설었을 때 엉뚱한 계기로 인연이 닿았다. 졸업 후 수많은 인연이 끊어졌는데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너 OO이라고 알지? 글세 얼굴을 봐야 알겠는데. 종종 대화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이제는 그런 질문도 낡았는지 누구를 아느냐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으레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아닐까. 아쉽지는 않다. 솔직히 그리 궁금하지 않기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가끔은 내 살 궁리도 바쁜데 무슨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나 싶기도 하다. 따분함을 비치지 않도록 노력하는데 아직까지는 크게 실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크게 관심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가끔 거울을 보노라면 내 자신이 낯설다. 내 것이 아닌 것마냥, 남의 것도 아닌 것마냥, 버려두지도 그렇다고 품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대하고 있다.


거울 이야기가 나왔으니, 어느 날 거울에서 아버지와 삼촌들의 얼굴을 읽은 날이 있었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 마흔이면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는데, 그때까지 이 얼굴을 지워야지. 거울 앞에 서면 내 모습이 어정쩡하니 반쯤은 그때 마음먹은 목표를 이룬 셈이다. 그래도 혹여 모른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익숙한 얼굴이 다시 튀어나올지.


핏줄을 통해 흘러든 그 특유의 표정. 성내고 화내고 눈알을 굴리며 일그러지는 얼굴과 닮은 모습을 읽었을 때의 끔찍함이란. 부채 의식을 느꼈다. 이것을 털어내야지. 어린 시절 내 마음을 쥐어짜던 그 표정을 버려야지. 옛사람들은 못난 사람을 일러 불초자不肖子라 불렀다. 이때 초肖란 닮았다는 뜻이다. 즉 부모를 닮지 않은 사람이 불초자, 못난 놈이다.


그렇게 멀어지려 애썼는데, 내 이름에는 못난이를 뜻하는 '초肖'의 반대말, 현賢이 들어 있구나. 이제는 이름값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바라던 일이다. 이름을 지우고 싶었다. 감추기보다는 지우고 싶었다. 그렇지만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 내 이름 석자가 가끔 낯설기도 한 것을 보면 앞으로 한참 더 지내면 어떨지 모를 일이다.


요즘 얼굴이 밝아졌어요. 지난여름엔 죽을상이었는데. 그런가? 나를 잘 모르니 그 말에 반박도 수긍도 쉽지 않다. 따져보면 그 말이 맞다는 생각도 든다. 술이 줄었고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줄었다. 매일 같이 맥주를 마셨는데, 맥주를 마시지 않았다면 지금쯤 지갑이 꽤 두툼할 테다. 헌데 그 까닭이 모호하다. 술을 먹을 일이 줄었는지, 몸이 견디지 못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선후야 어쨌든, 술이 줄어서 그런 건지 몸이 술을 받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비애는 줄어든 듯하다. 덤덤하고 담담하다.


작년 10월 루쉰 세미나를 시작했다. 찾아보니 세미나 제목을 이렇게 잡았다. '길이 끊어진 그곳에서'. 지금 돌아보면 저 말은 나에게 적잖이 간절한 말이었다. 길이 끊어졌고, 전도가 무너졌으며, 희망에 실망할 때였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때엔 저 말대로 '끊어진 그곳에서' 있었다. 끊어진 그곳에서 무얼 할지 모르고 멍하니 있었다. 하는 일마다 좌절을 얻었고, 가끔씩 위로와 만족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답 없이 살고 있다.


딱 2달만 세미나 하자는 생각이었다. 이제는 세미나 따위는 하지 말아야지. 어떻게든 마침표를 찍을 요량이었다. 헌데 텍스트를 읽으면 읽을수록 고양되었다. 그렇다고 무엇을 해야겠다는 강렬한 목표나 소망, 비전 따위가 흘러든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억척스럽게 한걸음 한걸음을 떼며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길이 끊어진 거기서도 발을 떼어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어쩌면 늘상 아는 사실을 텍스트를 통해 다시 마주했을 뿐이다.


어쨌든 생각과는 달리 여기까지 왔다. 일 년이 훌쩍 넘었다. 드디어 다음 주에 루쉰 세미나를 마칠 생각이다. 그러나 시작에서 생각한 것과는 영 다른 마침표가 되고 말았다. 일단 읽을 만큼 읽었다는 생각에 마침표를 찍는다. 어떻게 솟아난 욕심인지 내년에는 다시 처음부터 루쉰 전집을 읽어볼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꾸역꾸역 억척스럽게 여기까지 왔고. 다시 한번 더 나아가 보려는 마음이 든다.


이럴 때면 마음이란, 욕망이란 대관절 어디서 솟아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어느 날 갑자기 씨앗이 싹을 띄우는 것처럼 그렇게 당면하여 내 눈앞에 나타나는 건 아닌지. 억척스런 시간이 영 쓸모없는 건 아니었구나. 나에겐 기다림도, 기대감도 없었지만 적어도 멈추지는 않았다. 방향도 속도도 모르지만 어쨌든 '길이 끊어진 그곳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허무와 냉소, 절망과 좌절, 부끄러움과 부러움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 속에 얼마간 무뎌진 것도 사실이다. 답답하다 보니 담담하고 덤덤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막막하고 먹먹하며, 캄캄하고 아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도 여전하다. 그래도 무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머무르지 않으려 한다. 좌표 없이 무작정 발을 내딛는다. 답 없이도 발을 옮길 수 있다면.


"……. 대답하라. 않겠거든, 떠나라!……"
<들풀: 빗돌글>


지난여름 어떻게든 번역 맡은 책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에 수 없이 끙끙댔다. 내 어리석음이며, 내 무능함이며, 내 게으름이며를 탓하며 꾸역꾸역 번역하다 보니 끝을 맺었다. 이제 마무리 작업이 남았다. 아직도 갈 길이 있으나 헤아리지 못할 만큼 멀지는 않다. 어쨌든 가늠해볼 수 있는 가까운 미래에 있다. 어서 빨리 털어버려야지. 지난번엔 더위와 싸웠다면 이번에는 추위와 싸워야 하는구나.


가을부터 글을 쓰고 있다. 그 전에도 글을 쓰기는 했으나 붙잡고 쓰지는 않았다. 생각이 날 때마다, 하루를 쉬이 넘길 수 없을 때마다 글을 썼다.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도, 누가 보는 것을 염두하지 않고 무작정 썼다. 지워도, 버려도, 아깝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곧 사라질 흔적이지만 뭐라도 끄적거렸다.


주저리주저리 글을 쓰면서 두 가지 욕심이 생겼다. 하나는 어쨌든 글을 써서, 지나간 글이라도 모아서 책으로 묶어내자. 쉼표든 마침표든 그런 식으로 꾹꾹 눌러 찍으며 남은 시간을 보내야겠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해서 한 푼이라도 모아야지.


오늘은 문득 내 글은 얼마나 될까 계산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세로 받은 돈을 다 더하고 거기에 글자 수를 헤아려 나눠보면 내 글의 값을 알 수 있을 테다. 한 글자의 값은 대관절 얼마나 될까. 순수한 궁금증이 아니라 그렇게 헤아려 보면 거기서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누가 읽는지, 어떻게 읽는지 궁금하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른바 조회수를 눈여겨보고 있다. 할 수 있으면 홍보도하고, 물타기도 하고, 물들어 오면 노젓기도 해야지. 나에게도 축적의 염이 생긴 것인가 생각해보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그런 문제는 쌓아둘 만큼 긁어모아본 다음에 생각하도록 하자. 축재란 죽음보다 요원한 말이다.


다만 까마득한 길을 가려면 어쨌든 주머니가 두둑하고 볼 일이다. 맨손으로 맨발로 길을 떠날 수도 있으나, 그건 산책을 떠날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광야를 건너려면, 사막을 지나려면 뭐라도 지녀야 한다. 길에서 굶어 죽고, 야수에게 몸이 뜯기거나, 행여 길을 잃더라도 빈손 빈발로 떠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뭐라도 차곡차곡 쌓자.


밥이 될지 죽이 될지 불쏘시개가 될지 모르지만, 써 내려간 글도 모아야겠다. 무형의 공간에 쟁겨둘 것이 아니라 책으로 묶어 내야지. 인쇄비도 종이값도 안 될지 모르지만 요즘엔 한 두권이라도 싸게 찍어낼 수 있는 방법도 여럿 있더라. 아무렴 이제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내 학위 논문보다는 낫겠지.


루쉰은 그의 글을 묶어 내며 서문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가거라. 들풀이여, 나의 머리말과 함께!"
<들풀: 제목에 부쳐>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닥쳐오기를 바란다. 훌훌 털고 떠내 보내는 시간이, 네 살길을 찾아가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리고 그다음에는 나도 저도 다시 꾸역꾸역 살아가기를. 인연도, 고향도, 자신도, 소망과 절망도 모두 아득함으로 던져버리고 억척스럽게 발을 떼어 나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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