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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31. 2018

성장과 만남을 기념하며

2018 청소년 글쓰기 교실 후기

1.


어릴 적 어떤 강연에서 한 강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자기가 쓴 책을 차곡차곡 쌓아서 자기 키만큼 되는 게 꿈이라고. 어린 나이에 나도 저렇게 되어야겠다 생각해보곤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이야기인지 확인하게 됩니다. 이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꿈이예요. 


한 3년 되었나? 매년 책을 써야지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 년째 마음만 먹고 있어요. 그래도 내년에는 기필코 책을 써낼 생각입니다. 그렇게 꾸역꾸역 책을 써내면 책장 한 칸 정도를 차지할 수는 있겠지요. 


책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제가 쓴 책 보다 제 손을 거쳐간 책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손꼽아보니 제법 많은 수의 문집을 엮었어요. 이렇게 문집을 엮은 것이 한 10년은 되니 다 모아 보면 십 수 권은 되겠습니다. 두께도 판형도 내용도 각각 다르지만 그렇게 많은 책이 제 손을 거쳐갔다니 뿌듯하기도 합니다.


이번 글쓰기 교실 문집은 제가 많은 공을 들이지 못했어요. 원고 선별, 제목, 편집 등 거의 모두 청소년들이 담당했습니다. 연말에 제가 바쁜 까닭도 있지만 원고를 정리하고 책을 엮는 작업을 한번 경험하도록 하고 싶었어요. 좋은 경험이었기를 바랍니다.


2018년 문집! 전면 컬러는 처음입니다. ㅎㅎ

2.


헤아려보니 작년에도 문집을 엮어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때는 몇몇 친구들의 개인 문집을 엮었어요. 시간이 더 있었다면 개인 문집도 엮어 볼 수 있었을 텐데 살짝 아쉽기는 합니다. 뭐, 기왕 책도 만들었으니 아쉬움은 뒤로 미룹시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했듯 어쨌든 마침표를 찍은 이상 부끄러움과 후회보다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을 가슴에 품었으면 좋겠어요.


글쓰기의 장점이 여럿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자기 재산이 된다는 점을 꼽고 싶어요. 물론 아무리 글을 잘 써도 그 글이 바로 돈이 되지는 않습니다. 천금 같은 글을 가져가도 은행에서 받아줄 리 만무하죠. 그래도 이를 재산이라 하는 이유는 든든함과 넉넉함을 선물해주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힘들고 지친 시간이 있으면 책장에 꼽아둔 문집을 한번 보세요. 적잖이 위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개인적으로 고민도 많았습니다.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름 글쓰기가 몸에 익은 사람이기는 하나, 어떤 스킬을 배우지도, 어떤 과정을 수료하지도 못했습니다. 공부하면서, 강의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면서 익힌 글쓰기일 뿐입니다. 


그래도 글쓰기 강좌를 열고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글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라도 써야 좋은 글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지론입니다. 직접 쓰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글을 읽어도 스스로 좋은 글을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도 쓰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습니다. 꾸준히 쓰기.


평범한 글도 고치고 고치면 좋은 글이 됩니다. 생각을 다듬고, 문장을 고치고, 표현을 바꾸면 점점 글이 모양을 갖춰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어디까지 고치고 마침표를 찍어야 할까 늘 고민이었어요. 


솔직한 글, 자기 목소리가 묻어 나오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거짓을 가장한 글, 남의 이야기를 빌린 글, 뻔한 글 등등은 좋은 글이 아니예요. 그런 글은 어딘가 쓸모는 있겠지만 자기 생각을 키우지도, 자기감정을 정리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가능한 각자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글을 쓰도록, 가능한 솔직한 마음으로 글을 쓰도록 했습니다.

 

문집으로 엮어보니 그래도 목표한 바를 이룬 것 같습니다. 각자가 쓸 수 있는 좋은 글을 썼다고 생각해요. 그간 글쓰기를 하면서 여러분도 알게 모르게 성장한 부분이 있을 거예요. 성장을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나를 알고 나를 만나는 것도 성장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는 훌륭한 성장의 발판이 됩니다.




3.


토요일 저녁 전화받은 이야기를 했지요? A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솔직히 전화를 받으며 의아하기는 했어요. 몇 년 전에 함께 공부하고 소식도 잘 모르고 지냈는데 갑자기 무슨 일일까 해서. 그러나 좋은 소식을 전해주어 반갑고 기뻤습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 연락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니 그것도 고마운 일입니다.


소식을 전하면서 그때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나른 흥미로운 일이었습니다. 다른 친구도 많았을 텐데 어째 그 친구들과 함께 자리를 했을까. 함께 글을 읽고, 쓰고, 이야기하던 친구들이 오래간다는 점이 재미있었어요.


문득 무엇이 그 관계를 지탱하는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청소년의 삶이 워낙 단순하니 좀 특별한 관계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학교 밖에서 친구를 사귀기가 쉽지는 않으니까요. 학교에서와는 좀 다른 모습으로 사람을 사귀고 만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솔직함이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고 이야기하는 관계가 좀처럼 없잖아요. 다른 사람이 자기 글을 읽어주는 일도, 자기 글에 대해 어떤 말을 덧붙여 주는 경험도 쉬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그렇게 서로의 글을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또 다른 관계를 맺는 좋은 디딤돌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10년 넘게 청소년들을 만나다 보니 이제는 각각의 소식을 듣는 재미가 있습니다. 몇 년 간 소식이 없다가도 문득 소식을 만나보면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고 있다니 다행입니다. 그래도 가끔은 소식이 없는 친구들이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학교 밖이기 때문일지, 아니면 어쩌다 보니 그런 친구들을 만났는지 모르겠지만 속이 깊은 친구들, 뭔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을 주로 만나게 됩니다.


아니, 어쩌면 글을 쓰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그런 부분이 더 잘 보이는 걸 수도 있어요. 속 마음이 문득 묻어 나오기도 하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 문득 비치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이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친구들이 여럿 있어요. 일일이 소식을 전하지 못해도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 관계가 재산이라는데 그렇다면 그 시간 여러분이 함께 만난 친구들도 든든한 재산이 될 것입니다. 서로 연락하고 안부도 묻고 그리 지내도록 해요. 혹시 아나요 그 사람이 내 삶의 귀인 일지, 은인 일지, 위인 일지... 



4. 


한 해를 마무리하며 돌아보니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또 한해를 정신없이 보냈어요. 마음먹은 일을 다 하지 못한 것도 많고…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남겨두려 합니다. 이야기했던 대로 온지곤지 공간을 곧 이사하게 되겠어요. 형식도 협동조합 형식으로 바꿀 예정입니다. 아직 모든 과정이 다 마무리되지 않아서 진행 중인데 아마 차차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나름 변곡점이 되는 한 해가 아닌가 싶어요. 몇 년간 끙끙 앓았던 마음 앓이도 좀 나아졌고, 무언가를 좀 적극적으로 해보겠다는 의욕도 생기고 있습니다. 글쓰기와 더불어 이야기하면, 최근 제 스스로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꽤 많은 양을 써냈는데 얼마나 좋은 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가끔 이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고 있냐 생각이 들 땐, 연습이라 생각하며 꾸역꾸역 쓰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의 브런치를 구독해 주세요^^/!! https://brunch.co.kr/@zziraci


내년에도 청소년들과의 만남은 이어갈 생각입니다. 가능한 글쓰기 강좌는 지속하려 하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1월 글쓰기 강좌를 부랴부랴 기획해서 올렸으니 함께 공부할 친구는 어서 신청을!!(https://cafe.naver.com/ozgz/1680) 너무 신청자가 적으면 폐강할 수도 있습니다. ;; 예전 같으면 어떻게든 해려 했는데, 지금은 조금 마음의 여유도 있습니다. 폐강되면 밀린 번역 원고나 열심히 손봐야지요. ㅎㅎ 뭐, 다른 식으로 청소년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도 좋을 일입니다.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내년 글쓰기 강좌에 대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내년 첫 강좌는 읽기를 좀 강조할까 합니다. 우선은 고병권의 <생각한다는 것>을 읽고 글쓰기를 해보려 해요. 두 가지 연습이 있을 거예요. 읽은 글을 요약하는 법, '생각해서 글 쓰는 법' 중간에는 생각의 폭을 틔워줄 공동체를 탐방하려 합니다. 아직 인원이 정확하지 않아 분명히 날짜와 시간은 정하지 못했어요.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인연이란 길고도 짧은 것이겠지요. 어떤 친구는 또 몇 개월을, 또 몇 년을 못 볼 수도 있습니다. 바로 다음 주에 얼굴을 보고 새해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어떤 경우든 각자의 자리에서 건강한 삶을 살기를 응원합니다. 가끔 욕심내기로는 몇 년이 지나도 여러분과 만났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고 싶은 마음입니다. 언제든 찾아오기 편하게. 


그럼, 새해에도 다들 용맹정진 하기를!


내년에는 더 풍성한 문집 발표회를 열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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