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국가> 읽기 8
* 인용문 번역은 <천병희 역, 숲>을 참고했습니다.
8권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간단히 정리하는 소크라테스의 말로 시작한다.
"좋았어. 그렇다면 글라우콘, 완벽하게 통치될 국가에서는 처자를 공유해야 하며 모든 교육은 물론이고 전쟁과 평화에 관한 업무도 공동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점에 그리고 그들의 왕은 철학과 전쟁에서 가장 우수한 자들이어야 한다는 점에 우리는 의견이 일치했네."(543a)
그러나 사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국가>를 관통하는 대화가 '정의'의 문제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소크라테스는 정의를 이야기하기 위해 국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최선자 정체', 즉 철인이 다스리는 국가 이외에 네 가지 정체가 따로 있으며, 마찬가지로 사람도 이렇게 다섯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중간에 폴레마르코스와 아데이만토스가 끼어들어 한참 동안 철학, 그리고 철학자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이제 끊어졌던 네 가지 정체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정의와 행복의 문제도 다루어야 한다.
네 가지 정체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크레테 또는 스파르테식 정체. 소크라테스는 이를 명예 지상 정체 혹은 명예 지배 정체라고 말하기도 했다. 둘째, 과두제. 셋째, 민주제. 넷째, 참주제. 앞서 소크라테스는 철인, 곧 최선자가 통치하는 정치체제가 최고라 보았다. 당연히 이 넷은 각각 저마다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흥미롭게도 소크라테스는 이 다섯을 하나의 흐름으로 설명한다. 그 시작은 바로 최선자 정체이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구상한 최선자 정체를 하나의 유구한 시원始原처럼 설명한다. 본디 국가는 완벽했으나 모종의 이유로 악덕이 싹트게 되었고 앞에서 언급한 순서대로 국가가 망가져간다는 말씀.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최선자 정체, 이상으로 삼는 정의와 미덕이란 지향해야 할 목표이기도 하나 마땅히 돌아가야 할 시원始原이기도 하다. 마치 모든 인간이 천상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소크라테스는 '생성된 것은 모두 소멸하기 마련'(546a)이라 말한다. 그러나 애써 구상한 최상의 국가가 쉬이 망가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복잡한 숫자 이야기를 들어 이 과정을 설명한다. 우주의 숫자가 있는데 블라블라...
"좋은 출산과 나쁜 출산은 이와 같은 기하학적인 전체수에 의해서 결정돼. 만약 너희 수호자들이 생식에 관한 법칙을 몰라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 신랑과 신부를 결합시키면 거기에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못할 거야.(546d)"
어라! 이는 어디서 많이 보던 세계관인데? 천체의 운행을 숫자로 설명하고, 이를 통해 덕목을 설명하는 방법. 사주팔자四柱八字가 그렇다. 10간 12지, 즉 60 갑자로 우주의 운행을 설명한다. 이를 통해 사람의 타고나는 덕목, 능력, 건강 상태, 가족 관계는 물론 직업 및 사회적 성공 등을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오행과 음양을 섞어 완성된 상태를 고정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완전수니 하르모니아니 하는 따위가 없다는 게 중요한 차이점이다.
소크라테스는 아마 이 점을 가장 기이하게 여겼을 테다. 시원始原도 없고, 귀결도 없는 무한 반복의 세계. 끊임없이 돌아가는 환갑자還甲子의 우주관을 그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인간은 하나의 체계에 갇힌 존재일 테니. 그러나 거꾸로 이는 또 중요한 사유의 차이를 보여준다. 소크라테스에게 현재는 늘 불완전한 시간으로 존재한다. 반대로 이 세계, 바로 지금 밖에 없는 세계관이 있다. 이 세계관에 따르면 치우침, 경향만이 있을 뿐이다. 흥망성쇠 역시 하나의 사태일 뿐이다. 요컨대, 늘 변화만 있을 뿐. 발전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저 사회적, 역사적 기울기에 불과하다. 진보조차 그렇게 상대적이다.
하나 짚어야 할 게 있다. 소크라테스가 상상한 최상의 국가가 평등한 나라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는 인간이 각기 다른 덕목, 즉 적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그에 따라 저마다 다른 사회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제화공은 제화공의 일을, 수호자는 수호자의 일을. 그러나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 조화로운 세계에 틈이 벌어지고 마는데, 그 결과 사람들이 마구 뒤섞여 버린다. "철이 은과 섞이고, 청동이 금과 섞이게 되어 동질성과 조화가 사라지고, 이것이 언제 어디서나 전쟁과 증오의 원인이 돼"(547a)
앞서 소크라테스는 덕목을 넷, 철과 청동, 은과 금으로 나누기도 했다. 당연히 가장 고귀한 것은 황금의 족속이다. 각기 제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이 균형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 악덕이 싹텄을 뿐, 국가 전체가 어지러워지지는 않았다.
"일단 내분이 일어나면 두 종족이 국가를 상반된 방향으로 이끌어가. 철의 종족과 청동족은 돈벌이와 토지와 주택과 황금과 은의 소유를 향해 이끌어가고, 황금족과 은족은 세속적인 재산은 많지 않지만 혼의 부는 넉넉히 타고났기에 미덕과 옛 질서를 향해 이끌어가. 그들은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다가 마침내 타협하고 토지와 주택을 분배해서 사유재산으로 만들어. 또한 그들은 여태까지 자유민으로서 그리고 친구이자 부양자로서 자신들의 보호를 받던 자들을 노예로 삼아 농노나 하인으로 소유하고, 그들 자신은 전쟁을 수행하며 이들을 감시하는 일을 맡게 돼."(547b)
소유와 계급의 탄생. 이 악덕이 탄생하여 '순수하고 엄격한 현자賢者'(547e)가 사라진다. 그렇게 지혜를 사랑하는 자 대신 기개를 사랑하는 자들이 통치자의 자리에 앉는다. 승리와 명예를 사랑하는 자들이. 이들은 그래도 최선자 정체를 모방한다. 다만 문제는 욕망, 돈에 대한 사랑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욕망으로부터 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수호자'(549b), '이성(logos)'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황금으로 가득 찬 금고'(550d)가 명예 지배 정체를 파멸로 이끈다. 이제 과두제 차례.
과두제는 소수의 부자가 권력을 지닌 정치체제이다. 이 나라는 필연적으로 둘로 나뉠 수밖에 없다. '가난한 자들의 국가와 부자들의 국가'(551d) 분열! 소크라테스가 끊임없이 경계한 악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악이 있다. '악 가운데 가장 큰 악'!!
"한 사람은 자기 재산을 다 팔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이를 살 수 있는 자유 말일세. 재산을 다 팔아버린 사람은 그 뒤에도 그 국가에 머무를 수 있지만 그는 이미 그 국가의 구성원이 아니라네. 그는 상인도 수공업자도 기사도 중무장보병도 아니고, 이른바 빈민 또는 무산자無產者로 살아가기 때문일세."(552b)
'무산자'의 탄생! 소크라테스가 이를 가장 큰 악이라 일컬은 이유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다. 빈부격차, 불평등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국가 안에 있으면서도 국가의 구성원이 아닌 존재가 탄생한다는 점이 문제다. 마치 벌통에 사는 벌이지만 꿀벌은 아닌 존재가 있듯. 소크라테스는 이들 무산자를 수벌에 비유한다. 침이 있는 것과 침이 없는 수벌이 있듯, 무산자도 둘로 나뉜다. 하나는 '거지들', 또 하나는 '악당'.(552d)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들, 악당과 거지가 과두제, 소수의 부자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의 필연적 결과물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문제 삼는 것은 불평등이 아니라 무산자라는 기이한 존재가 태어났다는 점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들에서 '악당'이라 부를 수 있는 위험분자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큰 문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소크라테스는 경제적 평등 대신 다른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런 나라에서 그런 자들이 생겨나는 이유는 교육이 부족하고 양육 방법과 국가 제도가 나빴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552e)
교육과 양육이라는 제도. 오늘날에 견주면 복지제도를 이야기하는 것일 테다. 따라서 사회적 안정망은 가난한 이들의 삶이 더 굴러떨어져내리지 않도록 이들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이들이 악당으로 돌변하지 않도록 국가를 보호하기도 한다. 무산자들이 마구마구 늘어나고, 더불어 악당도 늘어나면 국가는 예기치 못한 혼란에 처한다.
"그러면 이들은 더러는 빚을 지고 더러는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또 더러는 두 가지 불행을 다 당했기에 침을 갖추고 완전무장한 채 도시 안에 그대로 눌러앉아, 자신들의 재산을 빼앗아간 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원한을 품고 음모를 꾸밀 것이며 혁명을 열망하게 될 것이네."(555e)
혁명이란 다수의 무산자가 소수의 부자들, 과두제의 통치자들을 몰아내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그 결과를 민주제라고 말한다. 그렇게 혁명은 민주제를 낳는다.
"빈민들이 승리하여 반대파를 일부는 추방하고 나머지 시민들에게는 시민권과 통치권을 평등하게 분배할 때 생겨나는 것 같네. 그래서 민주제 국가에서는 치자들이 추첨으로 선출된다네."(557a)
누구나 치자가 될 수 있는 국가. 추첨으로 치자를 뽑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강력한 평등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국회위원 추첨제는 상상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왜 그럴까? 예기치 못한 혼란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생각도 비슷한 듯하다.
민주제 국가는 평등한 나라인 동시에 자유로운 나라이다. 소크라테스는 자유란 '각자가 자기 생활을 자기 좋을 때로 하는 것'(557b)이라 말한다. 그 결과 이 국가에는 각양각색의 인간(557c)이 존재한다. 누구나 치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자기 좋을 때로 할 수 있는 나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는 나라. 아아! 아름다운 나라 아닌가? 소크라테스도 이 아름다움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이 정체는 모든 정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같네. 온갖 꽃을 수놓은 다채로운 겉옷처럼, 온갖 성격으로 다채롭게 장식된 이 정체는 가장 아름다워 보일 것이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체가 가장 매력적이라고 판단할 것이네. 마치 아이들과 여자들이 다채로운 것을 보고 그렇게 판단하듯 말일세."(557c)
언뜻 보면 소크라테스가 이 다채로움을 찬양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면 결코 칭찬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들과 여자들이 좋아하는 것. 단편적이고 순간적인 매력에 불과하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민주제에 매력을 느낀다 하더라도 소크라테스는 이를 좋게 보지 않는다. 나아가 그가 내내 이야기한 덕목, 지혜, 기개 따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이를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
민주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무질서. 소크라테스는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민주제를 '무정부 상태'(558c)나 마찬가지라 말한다. 다만 매우 매력적인데, 모든 쾌락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과두제 아래 억눌렸던 쾌락을 맘껏 추구할 수 있는 상태.
언뜻 보면 황금을 탐하는 과두제의 치자들이 더 탐욕스러워 보이지만 소크라테스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그는 욕구를 '필요한 욕구'와 '불필요한 욕구'로 나눈다. 과두제적 인간은 필요한 욕구의 지배만 받을 뿐이다. 그러나 민주제적 인간은 그렇지 않다. 불필요한 욕구의 지배를 받는다.(559c) 하긴,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욕구에만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아니, 부자이기에 필요한 욕구에만 귀를 기울이는지도.
쾌락의 평등. 민주제적 인간은 필요한 욕구와 불필요한 욕구, 아름답고 훌륭한 욕구와 나쁜 욕구를 구분하지 않는다. 특정한 욕구를 억누르고 굴복시키지 않기에 이들은 질서도 필연성도 없는(561d) 인간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보면 그 당시에도 이른바 자유로운 영혼이라 부를 만한 사람들이 있었던 듯하다. 제 마음에 따라 이것저것 해보는 사람.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무산자의 탄생을 '악 가운데 가장 큰 악'이라 말한 이유는 이들로 국가 자체가 무너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가 안에 존재하나 국가의 구성원으로 하는 일이 없다.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 나아가 통치체제를 전복시키는 것은 물론 자유와 평등의 이름으로 국가라는 질서정연한 체계를 무너뜨린다. 무정부 상태.
"그런 상황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이 무서워 비위를 맞추고, 학생들은 교사들과 가정교사들을 무시할 것이네. 젊은이들은 전반적으로 연장자들을 흉내 내며 말과 행동에서 연장자들과 경쟁할 것이며, 노인들은 성미가 까다롭다든가 독재적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젊은이들과 동석해서 젊은이들을 흉내 내어 익살을 부리며 재담을 늘어놓을 것이네."(563b)
소크라테스는 자유가 매우 위험하다 말한다. 마치 전염병과도 같아서 사람들 사이에 스며드는 것은 물론 가축들에게도 스며들 것이라 말한다.(563e) 가축들의 혁명!? 그도 가능할 것이 이 무정부 상태, 무질서는 기존의 규범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나이, 권력, 지혜 따위를 전복시킨다. 인간이라는 특권, 시민과 이방인이라는 구분, 문명과 야만이라는 틀도 비슷한 운명에 처하지 않을까? 따라서 이 혁명의 결과는 누구에게는 두려움을 줄 것이고 누구에게는 희망을 줄 것이다.
이렇게 소크라테스가 상상한 국가는 최선자 정체에서 명예 지배 정체로, 과두제로, 그리고 민주제로 굴러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는 민주제의 토대 위에 참주제가 생겨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좀 자연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앞의 흐름과는 정 반대의 역전이기 때문이다. 민주제로 굴러떨어져내린 국가는 어떻게 참주제로 다시 비약하는 것일까? 소크라테스의 설명은 빈약하다.
"과두제에서 생겨나 과두제를 파멸로 이끈 것과 같은 질병이 민주제에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 때문에 더 창궐하고 더 강해져서 민주제를 노예로 만들어버리네. 실제로 무엇이든 지나치면 정반대 방향으로 역전되기 마련이네. ... 가장 가혹하고 가장 야만적인 예속은 지나친 자유에서 생겨나니 말일세."(564a)
그는 지나친 자유에서 가혹한 예속이 생겨난다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과두제의 질병과 같은 속성의 것일까? 앞서 소크라테스는 과두제가 무산자를 낳고 무산자들의 혁명으로 붕괴된다 말했다. 그렇다면 민주제의 자유민들은 무엇을 낳는가? 그는 그저 짧게 '민중은 언제나 한 사람을 눈에 띄게 앞장세우며 그를 길러주고 키워주는 버릇'(565c)이 있다고 말할 뿐이다. 자유와 평등이 우두머리를 낳는가? 도리어 그것은 그의 말 그대로 버릇일 뿐 아닌가?
앞서 소크라테스는 악덕의 탄생과 함께 소유와 계급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이상적인 국가가 붕괴하면서 노예가 생겨났다. 그런데 여기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자들이 어째서 다시 노예가 될까? 말 그대로 그것은 버릇일 뿐이다. 국가라는 정체, 견고한 틀을 부서뜨리고도 다시 국가로 돌아가는.
소크라테스는 민주제를 마치 괴물처럼 그려놓았다. 그리고 민주제가 참주제라는 '괴물'을 낳았다고 말하기도 했다.(569b) 그러나 거꾸로, 자유와 평등으로부터 민중을 예속으로 돌아오게 하는 버릇. 그리하여 견고히 깨어지지 않는 국가라는 체제야 말로 괴물이 아닐까? 그렇게 소크라테스의 국가는 민중을 먹어치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