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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15. 2020

무시와 숭배를 넘어

취투북 - <주자학과 양명학> #3

취투북 - <주자학과 양명학>에서 나눌 내용입니다.

https://zziraci.com/qutubook


단순히 인기만 생각하면 아무래도 주희는 대중적으로 그리 인기 있는 인물은 아니다. 그것은 이른바 '주자학'에 씌워진 인상 때문일 테다. 그러나 정반대의 입장도 있다. 한쪽에서는 어리석고 답답한 유학자의 전형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성인이자 위대한 철학자로 숭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그를 가리키는 호칭에도 드러나는데, 한쪽에서는 주희朱熹라고 그의 이름을 그냥 부르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꼬박꼬박 주자朱子라는 존칭을 부른다. 


무시도 문제지만 숭배도 문제다. 과연 그를 조금 다른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은 없을까? 펑유란의 관점을 빌리면 우리는 포스트 경학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겠다. 과거의 경전은 더 이상 경전의 지위를 갖지 못했다. 성인 주희도 마찬가지 아닐까. 따라서 비록 저자는 주자라고 부르지만, 여기서는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해보자는 차원에서 그의 주희라고 표기할 것이다. 


그리하여 주자(1130~1200)가 나타나서 그 도학은 수미일관된 체계를 갖추게 되어 이른바 주자학이 완성된다. 주자의 출현은 주자학이 영향을 미치는 곳이 단순히 중국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동아시아 세계에서 세계사적인 사건이었다. (132쪽)


철학사는 해석의 영역이기에 얼마든지 저자와 다른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철학사를 서술하든 그의 막대한 영향력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아마도 이는 그가 번쇄한 경전 대신 보다 단출한 <사서>를 제시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주희 이전이 오경五經, 폭넓게는 십삼경十三經의 시대였다면 주희 이후로는 <사서>의 시대가 되었다. 이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중국철학을 공부한다면 어쨌든 <사서>로부터 시작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사서>의 편집자 혹은 주석가로서의 모습보다 주희가 체계화한 철학적 개념에 주목한다. 저자는 주희의 학술을 크게 다섯으로 나눈다. 존재론(理/氣), 윤리학 혹은 인간학(性即理), 방법론(居敬/窮理), 고전주석학, 구체적인 정책론이 그것이다.(135쪽) 이 가운데 네 번째와 다섯 번째에 대한 서술은 생략하고 있다. 아무래도 좁은 의미의 철학에서 주자학을 논하기 때문일 테다. 


주돈이의 <태극도설>에서 보았듯 주희 역시 모든 존재는 음양, 오행 등으로 구성된다고 이야기한다. 이처럼 사물을 이루는 물질적인 것을 아울러 기氣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주희는 이 음양, 오행의 개념을 선명히 구분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음양 조차도 음과 양이 따로 별도로 있는 게 아니라 기의 어떤 상태를 일컫는 말에 불과하다. 오행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어쨌든 일기一氣 —> 음양, 음양 —> 오행 사이에는 아무런 차원의 차이도 인정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오행을 특히 '질質'로 불러서 기와 구별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기와 질 사이에는 원리적으로 어떤 질적인 차이는 없다. (139쪽) 


<태극도설>을 태극에서 음양, 오행을 거쳐 만물에 이르는 사물의 발생 순서로도 볼 수 있지만 주희는 의도적으로 이 구분을 부정하고 기氣의 움직임(動靜)으로 설명한다. 무엇에서 무엇이 나왔다는 식의 해석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의 모든 사물은 기의 움직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며, 죽음이란 커다란 기의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다. 


헌데 문제가 있다. 조상 제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구체적으로는 조상의 귀신은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장재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태허太虛로 돌아갈 텐데, 그렇다면 조상의 귀신도 결국엔 흩어져버리지 않겠는가. 주희는 이에 대해 뚜렷한 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는 철학적 한계라기보다는 시대적 한계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주희는 '기'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보았다. 기의 움직임에 원리를 부여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리理'이다. 


"천하의 사물은 반드시 각각 그런 까닭과 그 당연히 그러해야 할 법칙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이른바 리인 것이다." … 총체적으로 말한다면 우주, 만물의 근거이며 우주로 하여금 있어야 할 모습을 부여해주고 있는 원리, 개별적으로 말한다면 개개의 사물을 개개의 사물로 만들어주고 있는 원리, 그것이 리이다. (147쪽)


'리'는 사물의 구성 원리이자 그것의 규범 법칙이라 할 수 있다. 주희는 이를 '그런 까닭(所以然之故)과 '그러해야 할 법칙(所當然之則)'이라 하였다. 다만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게 중요하다. 주희가 '리/기'를 통해 사물의 존재를 설명한 이후 '리'와 '기'의 순서와 관계에 대해 숱한 논의가 벌어졌다. 이원론이냐 일원론이냐를 두고도 논란이 많은데, 저자는 주희의 철학이 리기이원론이나 결과적으로는 리일원론에 이르는 경향까지 있다고 말한다.(152쪽) 이는 주희가 '리'에 우월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존재로서의 있음 이상으로 우월한 있음이 아니면 안 된다. 주렴계가 말하는 "무극이면서 태극"은 바로 그런 "없으면서도 있고 있으면서도 없는" 의미라고 주자는 주장하는 것이다. (150쪽)


다만 이 우월성이라는 것도 모호한 것이, 주희에게 '리理'는 어떠한 구체적 사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스다 지로의 말을 빌리면 '존재로서는 없는 것이며, 의미로서는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거꾸로 말해, 존재로서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리'에 심오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주희가 '리'에 의도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리'는 본래 옥의 표현에 있는 결을 의미했으며, 나아가 '다스린다(治)'는 의미를 갖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이후 송대에 이르러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응축하게 되었는데,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다만 저자는 이미 송대에 일상 구어체로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154) 즉, 기원이 어떻든 당대 사람들은 전혀 문제없이 '리'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었다.


주희의 윤리학 혹은 인간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성즉리性即理라 할 수 있다. 주희는 장재의 주장을 따라 "마음은 성과 정의 통일체(마음은 성과 정을 통괄한다)"고 본다.(155쪽) 이때 '성'은 체용론의 관점에서 '체'의 자리에 놓이고 '정'은 '용'의 자리에 놓인다. 즉, 본성의 덕목이 다양한 감정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보아 감정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감정이 움직여(已發) 표현될 때 중정中正을 잃고 치우치면 문제가 된다. 치우친 것, 이것을 주희는 악惡이라 보았다. 저자는 이런 주희의 관점을 '덤덤하다'고 평가한다.


성이란 물이 맑을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정이란 그 물이 흐르고 있는 상태를 말하며, 욕심이란 물에 파도가 범람하고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라 한다.(157쪽)


그러나 물이 맑으려면 가만히 있는 것이 제일이다. 결과적으로는 감정을 배제하는 것을 추구하게 된다. 조그만 생각의 움직임도 인욕人欲으로 보아 억누르려고 하는 엄격주의(159쪽)가 여기서 나타난다. 훗날 루쉰이 <광인일기>에서 비판하는 사람을 잡아먹는 전통의 근원은 결국 주희에 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저자는 사대부들이 두 가지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자식으로서 효孝, 신하로서 충忠의 의무가 있다. 주희의 철학에서 이 둘 가운데 무엇에 더 중점을 두었을까. 흥미로운 질문이기는 한데, 저자는 그보다는 일본의 상황에서 군주와 신하 관계에 대한 주희의 입장을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일찍이 요시다 쇼인은 공자와 맹자까지 비판하며 군주에 대한 충심이 부족하다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비판이 있었다면 주희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이는 맹자에 대한 입장에서 볼 수 있는데, 주희는 '시의의 타당성'(167쪽)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다. 즉 특정 군주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것보다는 '의리가 서로 맞음'이라는 기준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의로운 군주를 따라야 한다는 말씀.


이른바 공부론이라고 할 수 있는 학문의 방법으로 주희는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를 강조했다. 이 둘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다시 말해서 도덕성을 길러서 연마하는 것과 지적인 학문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다. 주관적인 방법과 객관적인 방법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171쪽)


주관과 객관이라는 구도로 이 둘을 나누어 생각할 것은 아니다. 리理 개념을 통해 주희는 이 둘의 통일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내면의 공부와 외부 사물의 탐구가 서로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주희의 중요한 주장이었다. 이는 <대학>의 <격물보전>(격물치지보망장)에 잘 드러나 있다. 


다시 말해서 리理는 인간의 내부에 있는 리(성性)임과 동시에 인간의 외부에 있는 천지자연의 리이기도 하다. 인간의 리, 인간사의 리와 자연의 리는 연속되어 있다. 또 도덕지와 지식지가 불화하지 않고 접합되어 있다. 아니, 모든 사물의 리도 곧 도덕지의 대상이 되며, 그만큼 객관적인 것이었다. (175쪽) 


이렇게 안에 있는 내면의 리理와 밖에 있는 사물의 리理가 합일된다. 그러나 사물의 이치를 탐구한다는 주제가 객관적, 과학적 탐구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주희에게 궁리窮理의 방법이란 궁극적으로 성인의 가르침을 기록한 경서를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주희의 철학은 언제까지나 독서인의 철학이었다. 이 '독서인'이라는 것이 문사文士, 즉 사대부 계층을 폭넓게 포괄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여기에는 책만 읽는 서생의 이미지가 깊이 새겨져 있다.


이런 면에서 그의 논적 육상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육상산은 심즉리, 즉 마음이 곧 이치라는 주장을 펼쳤다. 


주자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성'과 '정'으로 분석되어야 할 '심心(마음)'을 어디까지나 분석하지 않고 혼연한 일체로 파악하며, 그것이 그대로 이치라는 것이다. (183쪽)


이러한 구분은 이미 정호와 정이 형제가 주창한 천리天理 개념의 차이에서 볼 수 있었다. 정호는 우주의 생성 그 자체를 포괄하는 말로 천리를 사용했다면, 이천은 인간의 욕망(人欲), 즉 사욕私欲과 구분되는 규범적인 원리로 천리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이 둘은 서로 치열하게 다투기도 했는데, 특히 무극과 태극의 관계에 대해 깊은 논쟁을 벌였다. 주희는 음양 그 자체가 아니라 '음양하는 까닭'이 '도'라고 하였지만 육상산은 그렇게 나눌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저자는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역사적으로도 옳으며 아마도 중국에서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었을 것(196쪽)이라 본다. 이렇게 보면 주희는 거꾸로 전통을 변형, 나아가 파괴하고 재창조했다고 까지 할 수도 있다. 


서로 존중하면서도 상대방의 학설을 인정하지 않아서, 상산은 주자를 가리켜 '지리支離'하다고 비판했으며 주자는 상산 일파를 가리켜 '광선狂禪'이라 비판하여, 격렬하게 대립했다. (199쪽) 


결국 이 둘의 대립은 이후 주희와 양명(왕수인)이라는 두 인물의 구도로 새롭게 정립된다. 주희와 양명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서술 방식도 매우 다양하다. 대립, 계승, 발전, 나아가 두 극단으로 보는 관점도 있는데 저자의 관점은 어떨지 지켜보도록 하자. 


https://youtu.be/bdMYcxMtL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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