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픈옹달 Dec 12. 2020

소박한 뿌듯함을 선물하며

벌써 12월이다. 시간은 또박또박 흘러 한 해의 끝자락에 와 있다. 


도대체 어떻게 시간이 흘렀을까. 정말 올해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한편으로는 순식간에 열두 달이 흘렀고, 한편으로는 불과 몇 달 전인데도 까마득히 아득하기도 하다. 전염병에 표정을 빼앗긴 것처럼, 계절의 변화도, 시간의 흐름도 빼앗긴 듯하다. 


중학교 1학년을 빼앗겼어요. 

A는 제대로 학교 생활을 하지도 못해 아쉽다고 말한다. 막 초등학생 티를 벗어나 중학생이 되었는데, 교복을 입은 날보다 입어보지 못한 날이 더 많다. 동복을 입어보지도 못하고 봄을 보내고 말았다. 시험도 없고, 자유롭게 여러 경험을 하라고 배려해준 자유학년제 1년이 이렇게 훌떡 지나버리고 말았다. 물론 A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저마다 자기 1년을 잃어버렸다고 아우성이다.


처음에는 인연의 끈이라도 마련해놓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시험 삼아 온라인 독서 모임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작년까지 같이 글쓰기 모임을 한 친구, 겨울 방학에 중국 여행에 가기로 한 친구, 같이 책을 읽고 공부하던 친구... 몇몇을 모아 한 주에 한번 책 읽기 모임을 만들었다.


북금북금 어때요? 금요일마다 책을 읽는다고...

처음에는 그냥 '방구석 북토크'라는 식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이름도 지었다. 불금이 아닌 '북금'을 즐기자는 멋진 취지도 생겨버렸다. 그러나 어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마침 때 맞춰 나온 조지 오웰 그래픽 노블을 읽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는데, 쉽지 않더라. 공을 들여 책을 읽기에는 우리 일상이 너무도 요동치고 있었다.


결국 계속 그래픽 노블이나 교양 만화를 기웃거리게 되었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읽었고,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도 읽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도 읽었다. <만화로 보는 민주화 운동 세트>도 반가운 책이었다. 그러나 매번 다른 책을 선정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좋은 책 하나를 고르려면 적어도 두 세배는 훑어보아야 하니 말이다.


따로 클래스를 구성한 게 아니어서 책 선정이 더 어렵기도 했다. 초등 고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있으니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고민이었다. 굽시니스트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가 눈에 들어왔다. 미국 역사를 간단히 훑고 한중일 삼국 역사를 읽기로 했다.


아마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에는 7권까지 나왔을 테다. 그래도 중간에 8권과 9권이 나와서 12월까지 모임을 이끌어갈 수 있었다. 오늘(12월 11일)로 9권을 끝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19세기 역사를 숨 막히게 훑어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치기도 했다. 아편전쟁(1840)부터 신미양요(1871)까지, 한중일 삼국의 역사를 훑어보는데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


사실 올해 오면서 선생질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도무지 학생이 늘지 않기 때문이었다. 같이 공부하는 학생은 계속 같이 공부하는데, 도무지 인원이 새로 늘지 않았다. 만족도가 높다는 면에서는 장점이겠으나, 학생이 모이지 않으니 밥벌이로는 영 꽝이었다. 입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그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 테다. 고등학교에 가고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하면 하나둘 떠나곤 했다.


나름 성행하는 시절도 있었으나 옛이야기. 한두 살 나이 먹으면서 한 두 명씩 떠나가 고작 두 세명만 남은 상황이었다. 내심 코로나가 반갑기도 했다. 수업을 개설하지 않아도 나름 핑계거리가 되니까. 그러나 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학생들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좋은 밥벌이는 못되어도 선생질이 좋은 까닭이며, 고작 둘셋이라 해도 나름 책임감이 발목을 붙잡기 때문이리라.


한 해를 지내며 헤아려보니 제법 많은 책을 읽었다. 따지고 보면 나에게도 좋은 배움이 되었다. 온라인이라는 툴을 이용해 다양한 실험을 해보았고, 읽은 책들이 적잖이 도움이 되었다. 수고롭고 피곤하기도 했으나, 요동치는 일상에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했다. 


선생질을 계속하다 보니 무엇을 가르친다는 게 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엇인가 애써 가르쳐도 실패할 때가 부지기수고, 설사 어떤 지식을 잘 습득했다 하여도 금방 까먹기 마련이다. 결국 함께한 꾸준한 시간이 좋은 추억으로, 같이 읽은 책들이 서가에 남을 뿐이다. 소박한 뿌듯함이라고 하자. 내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작은 경험이 2020년 한 해를 다르게 기억하게 만들지 않을까. 그리고 그 경험이 재산이 되어 또 다른 삶을 일구는 좋은 토양이 되지 않을까.


같이 읽은 책들을 서가에 잘 꽂아 두라고 이야기했다. 다시 읽어도 좋은 책이니 나중에 또 읽어보아도 좋고, 나름 기념하며 스스로의 자랑거리로 만들어 두라고. 그렇게 한 살을 먹고, 언젠가는 함께 했던 시간들을 기억하겠지. 실상 중요한 것은 훗날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도 함께 읽은 책들을 아래 정리해 둔다. 나름 분투의 흔적이라고 기념하도록 하자.


http://aladin.kr/p/VWJRt

http://aladin.kr/p/GFe56

http://aladin.kr/p/aF17v

http://aladin.kr/p/Neu3P

http://aladin.kr/p/ELfow

http://aladin.kr/p/xW2hp

http://aladin.kr/p/eeOA1

http://aladin.kr/p/1KoGH

http://aladin.kr/p/Epai

http://aladin.kr/p/doQJf (+9권)


나름 열심히 살았구나. 내년에는 '북금북금 실록실록'이라는 이름으로 <박시백의 조선왕조 실록>을 읽기로 했다. 반년 계획을 미리 세워두니 나름 편하기도 하다. 내심 조금은 기대되기도 한다. 


https://zziraci.com/bookm/sillok


작가의 이전글 주자학을 예비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