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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08. 2020

주자학을 예비하며

취투북 - <주자학과 양명학> #2

취투북 - <주자학과 양명학>에서 나눌 내용입니다.

https://zziraci.com/qutubook


주자에 의하면, 맹자 이후 1,400년 동안 매장되어 있던 도통道統을 다시 잇고, 성인의 학문을 다시 명확하게 내세운 사람이 바로 주렴계라고 한다. 즉, 1400년의 암흑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다시 광명의 세계를 소생시킨 사람, 그가 바로 주렴계였다. (54쪽)


주희는 남송 시대의 인물이다. 그러나 주자학을 송학宋學이라 일컫는 것은, 주희가 북송 시대의 학술을 계승•종합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때 소개되는 인물이 '북송의 다섯 사람(북송 오자北宋五子)'(129쪽)이다. 저자 시마다 겐지의 서술 순서를 따르면 북송오자는 다음과 같다. 주렴계, 정명도, 정이천, 장횡거, 소강절. 하나 언급할 점은 이 다섯 명 모두 호號로 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름을 소개하면 이렇다.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소옹. 책마다 표기가 다르니 참고하도록 하자. 앞서 언급한 한유를 비롯해 다른 사람은 대체로 이름으로 표기하는 반면, 북송의 다섯 학자 이름은 표기하지 않은 것은 이들을 존숭하는 전통을 따른 까닭이리라.


따라서 주목해야 할 것은 '주자에 의하면'이라는 표현이다. 철학사는 해석의 영역이며,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기술될 수 있다. 저자는 주희의 관점을 따라 서술하고 있다. 주희 스스로도 이들의 계승자를 자처했다. 저자는 주희의 주장을 따라 주렴계를 '송학의 창시자(54쪽)'로 소개한다. 그러나 얼마든지 다른 해석도 가능할 것이다. 일부 연구자는 주정수수설周程授受說, 즉 주돈이가 정호, 정이 형제의 스승이라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며, 주희의 주장에 불과할 뿐이라고 보기도 한다. 일단은 저자 시마다 겐지의 서술, 주희의 관점을 따라가 보기로 하자.


주돈이(주렴계)의 사상적 의의는 넷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태극도설太極圖說>, 둘째 배워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 셋째 '정靜'의 강조, 넷째 이상적 사대부의 이미지 제시.

 

<태극도>는 단약의 정련 과정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그림으로 도사들에 의해 전해져 왔다. 이것을 주돈이가 조금 수정하였다. 또한 이전과는 아래에서 위로 읽었던 이전의 해석과는 달리 위에서 아래로 읽고 있다.(57쪽) 주돈이의 <태극도설>은 무극無極, 태극太極, 음양, 오행 등의 관계를 총괄하였으며, 다양한 텍스트를 통일적으로 해석하는 관점을 제공해주었다.


<태극도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태극도설>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성인은 배워서 이를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송학 전체의 근본적인 모티브이고 대전제이기 때문이며, 더구나 또 '무욕', 즉 욕망의 부정이라는 것도 그것을 둘러싸고서 이후의 사상사가 전개되어가는 기축을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이다.(60쪽)


주희의 <근사록>은 이 <태극도설>로 시작한다. 이를 상세히 분석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다른 부분에 더 중점을 둔다. 저자는 주돈이가 제시한 성인에 대한 관점이 주자학에 더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본다. 성인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주자학 나아가 그 이후의 중국철학의 중요한 주제인 까닭이다.


또한 주돈이는 '정靜'을 중요시 여겼는데, 이때의 '정'은 동動을 배제한 정이 아니라 동을 안으로 포괄하고 있는 것(至靜)'으로 주희는 이를 계승하여 다양한 논의를 정교하게 구성하였다.(66쪽) 이윤과 안연을 모델로 하여 이전과는 다른 사대부의 정체성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제 사대부는 천하의 모든 일을 책임지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삼는다.


이런 관점에서 정호(정명도)는 주돈이의 관점을 계승하여 이를 '만물일체의 인'으로 확장시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만물일체萬物一體는 정호 이전 이미 장자, 승조 등이 언급했던 개념이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이 만물일체, 그리고 인仁이라는 관점을 통해 사대부로서의 책임과 행동을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명도의 만물일체는 만물일체의 '인'이다. 장자와 승조의 만물일체는 사람을 책임과 행동에로 달려가게 하기보다는 명상과 체념으로 후퇴시킨다. 이것은 유가의 태도는 아니다.(80쪽)


정호의 만물일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역경易經>에서 이야기하는 생생生生에 주목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생生은 생명을 의미하는 '산다', 생산을 의미하는 '낳다'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다.(71쪽) 이 개념을 바탕으로 만물이 공유하는 '생명의 연대'(82쪽)를 지각하고 실현하는 것이 인仁이라 할 수 있다. 


정호는 천리天理라는 두 글자를 스스로 체득했다고 주장한다. 다만 정호의 천리가 이후 정이, 주희 등이 이야기하는 인욕과 대비되는 천리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87쪽) 이런 면에서 저자는 정호의 사상이 주자에 가깝기보다는 양명에 가깝다고 본다.(90쪽) 즉, 부정보다는 긍정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그 특징을 볼 수 있다.


이토 진사이가 일찍이 "정명도, 범중엄은 인을 좋아하고 정이천, 주자는 불인을 싫어한다"고 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였다. 도덕의 원리는 불인을 싫어하고 불인을 하지 않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을 좋아하고 인을 이루는 것이다.(88쪽)


정호와 정이(정이천)는 형제임에도 서로 다른 성품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이 둘의 성품 차이는 철학의 전개 방향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정호가 포용, 전체를 중시했다면 정이는 개념의 의미를 분석하고 체계화하는데 주목했다. 


예를 들어 '애愛'와 '인仁'을 구분하거나, 성性, 정情을 체體와 용用으로 구분하는 것, 음양과 도를 나누는 것 따위가 그렇다. 


형인 명도의 학문적•사상적인 태도가 혼일적이며 직각적인데 대하여 동생인 이천은 분석적이며 사변적•논리적이라는 것이 이미 정해진 평가라하겠다.(100쪽)


'성리학性理學'이라는 표현이 성즉리性即理에서 나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이에게서 성즉리의 개념이 시작되었다. 나아가 그는 이 개념을 바탕으로 도덕적 규범을 강하게 주장했다. 결국에는 굶어 죽더라도 절개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에까지 이른다.(107쪽) 갑갑한 도학자의 모습의 뿌리를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비록 접근 방식은 다르나, 정호나 정이가 리理를 중시했다면 장재(장횡거)는 기氣를 중시했다. '리'만큼 '기'도 까다로운 개념인데, 저자의 서술을 옮겨둔다.


… 그러면 '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기는 그저 단순히 물질은 아니며, 오히려 생명적인 원리, 생명원체性命原體라고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와 같은 생기론生氣論적인 것도 포함하는 의미로서 물질 원리라고 해두자. 기의 철학이 유물론이라는 것이 결코 이치에 맞지 않는 단정은 아니라고 하겠다.(113쪽)


'리' 대신 '기氣'를 중시 여겼다는 점에서 장재의 철학은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그가 유물론을 주창한 사람으로 해석하기도 했다.(112쪽) 오늘날 보면 좀 황당한 주장이기는 하나 저자의 말처럼 아주 근거가 없는 건 아니기도 하다. 


장재는 '기'를 중심 개념으로 삼아 생사를 자연스런 변화의 하나로 설명했다. 또한 천지와 함께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 '우주적 가족주의'(118쪽)을 주장하기도 했다. 가족주의라니 가부장주의의 한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저자는 이를 수평주의적인 유토피아주의, 즉 평등주의적•인도주의적 가치를 지닌 주장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실제로 이후 장재의 주장은 그렇게 해석되어 쓰이기도 했다.(120쪽-121쪽) 


소옹(소강절) 역시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는 '도서선천상수圖書先天象數의 학문'을 배웠다. 하도河圖, 낙서洛書와 같은 형이상학적 다이아그램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는데 수학적 방식을 차용하였다.(122쪽) 그는 우주가 수학적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원元, 회會, 운運, 세世의 학설을 보면 '우주시간의 사이클'을 계산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시간 측면에서 본 우주철학이거나 우주시간의 사이클이라 할 수 있겠다. 원, 회, 운, 세란 1세가 30년, 12세가 1운(360년), 30운이 1회, 12회가 1원, 즉 계산으로는 30X12X30X12이며, 말하자면 1원은 12만 9,600년으로 그만큼 지나면 천지는 다시 새로워진다.(125쪽)


이 사이클은 다시 커다란 사이클로 반복, 확장될 수 있다. 원의 세, 원의 운 등등으로 확장되어 나중에는 '원의 원' 더 나아가 '원의 원의 원'도 가능하다. 다만 이 우주적 시간의 상승과 하강을 어떻게 해석할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소옹이 명확히 이야기하지 않아 무엇이 옳은지 현재 우리는 알 수 없다.(127쪽)


소옹은 수학 이외에도 '사물을 본다(관물觀物)'는 것을 주장했다. 이는 '나를 가지고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가지고 사물을 보는 것'(128쪽)으로 일종의 상대주의적 태도를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앞에서 이야기한 송학의 범신론적 세계관의 반영이라 하겠다.


이렇게 북송오자의 철학을 간단히 훑어보았다. 이렇게 예비된 철학의 요소들은 주희에 이르러 하나의 커다란 체계를 이룬다. 거꾸로 얄궂게 말하면 이들이 중요하게 언급된 것은 주희의 철학을 예비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왕양명이나, 왕부지와 같은 이들의 새로운 철학의 시발점이 되었다고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역시 주자학의 대안으로 해석되는 면이 크다는 점에서 주희의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주희가 주장한 것과 다른 송학의 그림을 그리려면 이 책에서 스치듯 넘어간 이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범중엄, 왕안석, 사마광, 소식(소동파) 등이 주요 인물이겠는데 이들을 치밀하게 보는 것은 이 책의 범위를 뛰어넘어 아득한 일이기도 하다. 


* 12월 8일 저녁 7시 30분부터 취투부 채널을 통해 위 내용을 나눕니다. 

https://youtu.be/vAT1WiTEJ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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