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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Dec 21. 2020

지식을 어떻게 팔 것인가

인터넷에 S가 화제다. 그가 모 강연에서 한 이야기를 두고 입을 모아 비판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전공자까지 나서서 말을 보태었다고 한다. 사실 관계가 다 틀렸다나 어쨌다나. 나는 그의 책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다. 아마 앞으로도 읽을 생각은 없을 테다. 방송에서 몇 번을 보았을 뿐이다.


이번에 그가 모 방송에서 이집트 역사를 강의했던 게 문제였나 보다. 이런 상황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그는 <삼국지>를 소재로 책을 내기도 했는데, 여기서 '손찬이 형'이라는 표현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맞다. 백마장군으로 유명한 북방의 강자 공손찬을 '손찬이 형'이라 말한 게 문제였다. 응용하면 나름 재미있는 드립도 가능하다. 죽은 갈량이 산 마의를 놀라게 했다는 식의.


왜 이제사 문제가 되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한국사를 강의하던 그가 어째서 중국사를 나아가 세계사를 이야기하게 된 것일까 궁금해졌다. 쉽게 생각하면 나름 이름을 떨치니, 불러주는 데가 많아 그랬겠지. 하긴 그만큼 대중을 끌어당기는 인물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맛깔나게 역사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따지고 보면 나에게 그는 비난의 대상이기보단 선망의 대상이다. 나 역시 지식을 팔아 생계를 꾸려 나가는 사람인 까닭이다. 제 전공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었다면 좋으련만, 하나도 이룬 건 없이 쓸데없이 나이만 먹었고 이제는 또 다른 일을 하기에도 영 늦어 버렸다. 좋은 지식 소매상, 성공한 지식 매판원이 되는 게 그나마 가져봄직한 꿈이다. 지식 자영업자, 인문 자영업자라 해도 좋다.


헌데 문제는 이쪽 업계에선 전공만으로 발붙이고 살기 힘들다는 점이다. 교수, 이른바 전공자의 공세를 보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전공했느냐 질문해본다. 조선 후기 인물로 논문을 썼으니. 조선 혹은 한국 철학 전공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실상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별로 없다. 조선 철학이니 한국 철학이니 하는 것에 대한 지식은 논문 탈고와 함께 끝이 났다.


나름 <논어>를 사랑하고 열심히 읽었다. 가장 많이 읽은 책이라고 할만하다. <논어>를 주제로 책도 쓰고, 일 년에 몇 번씩 강의도 한다. 그러나 전공자라기에는 까마득히 멀리 떨어져 있다. 함부로 기어오를 수 없는 거대한 산 같아 그럴 테다. 내 스스로도 내가 <논어>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나 생각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까다로운 대중의 입맛을 좇아가기 버겁더라. <논어> 같은 책은 명예 교수나, 석좌 교수 혹은 어디 회장이나 되는 사람에게나 배울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하곤 한다.


결국 <논어> 만으로 밥벌이가 안 되니 <맹자>도 붙잡았고, <대학>과 <중용>도 붙들고 공부했다. <사서>만 달달 읽고 그러면 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노자>, <장자>도 읽었고 <사기>도 읽었다. 나중엔 루쉰 문집도 읽었고 <서유기>와 <삼국지>까지 건드렸다. 이제 내년엔 아이들과 <조선왕조실록>을 볼 생각이다. 무엇하나 깊이 파는 것 없이 이렇게 두런두런 여러 주제를 다루다 시간이 훌쩍 지나고 말았다.


한스럽기도 하다. 무엇 하나 깊이 파지 못하고 이것저것 다 건드려놓은 게. 한편으로는 원망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지식에 대한 선망은 있으면서 제 지갑을 열어 지식에 돈을 쓰기는 꺼려하는 사람들이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어디서 감투라도 가져올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러나 남을 속일 위인은 못 되니 다행이다. 결국은 박리다매, 이것저것 팔아보는 수밖에 없다. 한때 한문 강독 수업을 열면서 스스로 한참이나 고민한 적이 있었다. 한 번도 한문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읽고 풀이하면서도, 누군가 그것이 맞느냐 하면 무어라 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영문학 전공자가 가르치는 수업도 있고, 동네 영어학원도 있는 건데 내가 뭘 그리 연연하고 있는지 억울해서. 지식을 팔 수 있는 자격을 누가 정하는 것이며, 그 지식의 효용과 가치는 또 누가 정하는가 따져 묻고 싶기도 했다. 고급 셰프의 정찬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동네 떡볶이도 먹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팔아야 할까 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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