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투북 - <주자학과 양명학> #4
취투북 - <주자학과 양명학>에서 나눌 내용입니다.
드디어 이 책의 두 번째 주인공 왕양명을 만날 때가 되었다. 주희와 왕양명 이 둘은 각각 송과 명을 대표하는 학자로 손꼽힌다. 이 둘 모두 리理를 중시한 까닭에 이를 아울러 송명리학宋明理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하나를 빠뜨린 말이다. 송宋-원元-명明으로 이어지거늘, 원나라는 철학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대표할만한 인물이 없었기 때문 아닐까? 한편 이는 문사文士, 즉 관료 지식인 계층이라는 중국 철학자의 배경을 떠올리게도 한다. 한족 출신이 사회의 지배층이 아니었던 역사적 상황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닐지.
원나라 시대에 비록 내세울만한 인물은 없으나,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주희가 정리한 <사서>를 과거 시험을 시행했다는 점이다. 이제 과거에 합격하려면 주희의 주석을 읽어야만 했다. 주자학이 관학官學, 즉 '지배적인 학문'이 되었다.
왕양명王陽明의 본래 이름은 수인守仁으로 양명은 그의 호이다. '수인'이나 '양명'이라는 말에는 유가적 이상이 짙게 새겨져 있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도학자의 면모와는 좀 차이가 있었다. 어려서 전쟁놀이에 열중했다는 점이나, 이후에 혁혁한 무공을 세운 일(207쪽) 등은 그의 독특한 면모를 잘 보여준다.
그는 환관 유근을 비판하다 귀주성 용장역의 역승에 임명된다. 이는 사실상 유배나 마찬가지였는데, 말도 채 통하지 않는 소수민족 지역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집도 없어 스스로 집을 지어야 했으며, 시종이 병에 걸려 양명이 직접 밥을 짓고 땔감을 마련하며 시종의 수발을 들기도 했다. 이 용장에서 그는 커다란 깨달음을 얻는데, 이를 용장대오龍場大悟라 부른다.
"성인의 도는 자신의 성정性情만으로 족하다. 지금까지 리理를 여러 사물에서 구하려고 한 것은 잘못이다." (210쪽)
그는 어려서 주희가 주장한 '격물格物'을 직접 해보았다. 대나무를 격물했는데, 친구는 3일 만에 양명은 7일 만에 병이 나고 말았다. 결국 성인의 경지는 되려고 한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탄식하는 수밖에.(213쪽) 주희는 외부 사물의 리를 탐구하면 내면의 리를 온전히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과연 가능키나 한 일일까.
"안과 밖을 합치시킨다"는 것이 송학의 목표였다. 이는 불교나 도교가 이야기한 '안' 대신 유교적인 '안'을 주장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안과 밖의 긴장, 대립이 주자학의 특징이라면 양명학은 철저히 '안'을 중시하는 입장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주자학은 송학이 지향하고 있던 내면주의라는 것이 아직 충분히 자기의 원리를 실현하지 못한 단계이며, 또한 아직 '밖'을 승인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였다. 그런데 이런 내면주의를 철저하게 해서 '밖'의 권위를 '안'에 귀속시킨 이가 바로 양명이었다. (214쪽)
양명은 용장에서 자신의 성정, 즉 마음이 곧 이치(心即理)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에 양명은 주희의 '격물치지' 해석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양명의 격물이란 우리가 상대하고 의식하는 것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지良知를 실현한다. 이렇게 되면 '지知'의 의미도 바뀐다. 주희가 지식을 닦는 것을 말했다면, 양명은 양지를 실현하는 것을 말한 셈이다. "지는 행의 시작이며, 행은 지의 완성"(220쪽)이라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명학을 지행합일知行合一의 학문이라 하는데, 애당초 양명에게 이 둘은 구별되지 않는다.
양명은 인간에게 고유한 도덕적인 직관력, 혹은 직관적인 도덕력이 있고, 이를 양지라고 불렀다. 저자 시마다 겐지는 양지가 이성이나 이지理知가 아닌 루소가 이야기하는 '하트heart'와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양명의 인간은 양지로 충만한 존재이다.
"수십 리나 되는 근원이 없는 호수보다는 몇 길 안 되지만 근원이 있는 샘물이 솟아 올라와 그칠 줄 모르는 편이 더 낫다."(224쪽)
양명은 '만물일체의 인'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점이 그가 내면을 중시했음에도 불교나 도가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양명 역시 <대학大學>에서 제시한 대인大人의 이상을 추구했다. 만물일체의 인과 심즉리의 결합으로 이제 양명의 양지는 생생한 운동력을 갖는다.
아니 그것은 단순한 원리가 아니라 (루소가 말한) 하트heart이며, 그야말로 온전한 충동이다. 온몸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생각 이전의 본능적인 충동인 것과 마찬가지로 만물일체인 양지는 자타 통일에로의 도덕적인 충동이다.(229쪽)
양명의 대인은 천하만민의 문제를 제 일로 여기고 해결하려는 인물이며, 나아가 천하만물을 한 몸으로 여겨 우주적 고통을 해소하려는 인물이다. '심즉리'에서 보이는 낙관주의와는 반대로, 심각한 도덕적 위기의식에서 나오는 절박한 심정(234쪽)을 발견할 수 있다.
<논어>의 공자 말을 빌리면 양명은 광狂의 철학자라 할 수 있다. 관학에 대한 비판정신, 솔직한 태도는 양명의 제자들에게도 계승된다. 결국 광狂이야말로 성인이 될 수 있는 진정한 길이라는 주장에 이른다.(237쪽) 이러한 부분이 결국 일종의 사회적 문제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양명은 대동大同의 유토피아를 그렸는데, 이는 덕의 평등성(242쪽)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라 할 수 있다.
흔히 주자학과 양명학을 상호 대비되는 학문으로 보지만 저자 시마다 겐지는 주자학과 양명학의 연속성에 주목한다. 나아가 주자학에서 양명학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보기까지 한다.
지금까지 나는 송대 이후의 새로운 유학의 동향을 내면주의의 전개로 파악하고 그 내면주의의 절정을 양명학으로 보았다. 송학, 주자학은 필연적으로 양명학으로 전환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244쪽)
그러나 주자학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결론들을 가져왔다. 우선 성인의 개념을 바꾸었다. "평범한 사람 역시 성인"이라는 주장에까지 이른다. 또한 욕망을 긍정하게 되었다. 욕망이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보았다. 양명 좌파라 불리는 이들에게는 이런 점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마음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나아가 '사私'도 적극적으로 긍정하기에 이른다. 적극적인 행동주의, '참다움(真)'을 주장하고 '위선'을 규탄하는 등의 모습도 보인다.
결국 송학풍 유학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양명학에서 유교는 자기 부정,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247쪽)
양명의 후예를 크게 우파와 좌파 둘로 나눈다. 학자들은 주로 좌파에 주목하는 편이다. 이들은 사회적 통념과 권위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으며, 실천에서는 과격주의자(래디컬리스트: 소인처럼 거리낌이 없는 자)였다.(249쪽)
좌우파의 대립은 양명의 사언교四言教(사구교四句教)를 둘러싼 해석에서 시작된다.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이 마음의 본체이며, 선이 있고 악도 있는 것은 의의 움직임이며, 선을 알고 악을 아는 것은 곧 양지이며,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하는 것이 격물"(250쪽)이라는 양명의 말을 두고 해석이 엇갈렸다. 좌파쪽에서는 마음의 본체가 무선무악이니 의意, 지知, 물物 모두 무선무악이어야 한다 보았다. 다만 여기서 무선무악이란 선악의 대립을 넘어선 지선至善을 의미한다.
여기서 "마음의 본체가 무선무악"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의미의 선, 악을 초월한 것이며 성선性善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무선무악이라는 '지선至善'을 의미한다. (252쪽)
양명 좌파는 양명의 이론을 더 발전시켜 양지를 우주적 원리로 확장시킨다. 이제 양지는 "활발하게 생동하는 것"(254쪽)이 된다. 나아가 현성양지現成良知를 주장하며 양지 자체가 스스로 지극히 하는 것(256쪽)이라는 주장에 이른다. 이런 측면에서 양명 좌파에서는 불교나 도교와의 차이가 크게 사라지며, 삼교일치의 측면이 나타난다.
송학의 문제, 내면주의의 방향은 이처럼 주희에서 양명에 이르기까지 계승, 발전한다. 따라서 양명은 주희의 충실한 계승자라 할 수도 있다. 양명의 학설은 주희가 던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였고, 주희가 세운 구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후예들은 양명의 이론을 발전시켜, 사대부의 철학과 규범 자체를 파괴하는 데까지 이른다. 중국 철학의 이단아로 손꼽히는 이탁오(이지)의 출현은 자연스런 귀결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