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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Mar 27. 2021

장자익 : 제물론 2

번역해보자

큰 앎은 넉넉하지만 작은 앎은 쩨쩨하지. 큰 말은 담담하나 작은 말은 재잘거려. 잠을 자면 혼이 뒤섞이나 깨어나면 감각이 열려. 사물을 만나 얽히면 날마다 마음이 다투지. 태연한 척, 괜찮은 척, 아무것도 아닌 척. 작은 두려움은 쩔쩔매나 큰 두려움은 느긋하지. 마치 화살을 쏘아대듯 시비를 따지지. 묵묵히 맹세를 지키듯 상대를 제압하려 하기도 하고. 그러나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듯 날마다 조금씩 쇠락하기 마련이야. 그렇게 흘러가 버린 것은 다시 되돌릴 수가 없지. 늙어버리면 꽉 눌러 입구를 닫아버린 듯해. 죽음에 가까워진 마음은 다시 일으킬 수가 없어.


희로애락, 근심걱정 갖가지 마음들이 생겨나지. 텅 빈 곳에서 음악이 나오듯, 습지에서 버섯이 피어나듯 그렇게 매일 우리 앞에 여러 생각이 오가는데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어. 그만두자 그만두어. 아침저녁으로 마음이 오가는데, 이유가 있어서 그럴 테지.


대상이 없으면 내가 없어. 내가 없으면 생각도 없겠지. 이건 당연한 이야기인데, 그렇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아마도 참된 주인이 있겠지만 그 자취를 좇을 수 없어. 믿을 만 하지만 그 형체는 보이지 않아. 실재하지만 형체는 없는 거야. 


백여 개의 뼈마디, 몸에 뚫린 아홉 개의 구멍, 여섯 개의 장기를 모두 갖추고 있지만 무엇을 특별히 아낄까? 너는 모든 것을 다 아끼고 있어? 아마 특별히 마음 가는 게 있겠지. 그렇다면 다른 것은 모두 신하나 노비처럼 부수적인 걸까? 신하나 노비 같은 것이 서로를 다스릴 수는 없을까? 서로 번갈아 임금 노릇을 하고 신하 노릇을 하고 그러는 걸까 아마도 참된 임금이 있을 거야. 그 실체를 찾던 찾지 못하던 그 참된 것에 더하는 것도 덜어내는 것도 없어. 


한번 이 몸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바로 죽지 말고 수명이 다하기를 기다리자. 그러나 다른 사물들과 서로 부대끼고 치이며,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날랜 말이 달리듯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는데 도무지 멈출 수가 없어. 애닯지 않아? 죽을 때까지 힘써 일하지만, 뭔가 이루어 냈다는 것을 내세을 수 없어. 고달프고 힘들지만 어디로 가는 지를 알지 못하지. 슬프지 않아? 죽지 않는다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무슨 이로운 게 있겠어. 몸이 늙어가면 마음도 똑같이 늙어가는 걸. 이게 가장 슬픈 일이지. 


大知閑閑。小知閒閒。大言炎炎。小言詹詹。其寐也魂交。其覺也形開。與接為構。日以心鬭。縵者。窖者。密者。小恐惴惴。大恐縵縵。其發若機栝。其司是非之謂也。其留如詛盟。其守勝之謂也。其殺如秋冬。以言其日消也。其溺之所為之。不可使復之也。其厭也如緘。以言其老洫也。近死之心。莫使復陽也。

喜怒哀樂。慮歎變慹。姚佚啓態。樂出虚。蒸成菌。日夜相代乎前。而莫知其所萌。已乎已乎。旦暮得此其所由以生乎。

非彼無我。非我無所取。是亦近矣。而莫知其所為使。若有真宰。而特不得其朕。可行已信。而不見其形。有情而無形。

百骸。九竅。六藏賅而存焉。吾誰與為親。汝皆說之乎。其有私焉。如是皆有為臣妾乎。其臣妾不足以相治乎。其遞相為君臣乎。其有真君存焉。如求得其情與不得。無益損乎其真。

一受其成形。不忘以待盡。與物相刃相靡。其行盡如馳。而莫之能止。不亦悲乎。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苶然疲役。而不知其所歸。可不哀邪。人謂之不死奚益。其形化。其心與之然。可不謂大哀乎。

* 構(구) : 얽다

* 窖(교) : 감추다


閑閑 : 넓은 모양
閒閒 : 구분한다는 뜻
炎炎 : 아름답고 풍성한 모양
詹詹 : 마음이 좁은 모양
縵 : 느긋한 마음
窖 : 깊은 마음
惴惴 : 소심하다.
縵縵 : 죽음과 삶을 같게 여기는 모양.
慹 : 움직이지 않는 모양
朕 : 조짐
賅 : 갖춤

閑閑廣博貌。閒閒有别也。炎炎美盛貌。詹詹小褊貌。縵寛心也。窖深心也。惴惴小心也。縵縵齊死生貌。慹不動貌。朕兆也。賅備也。



사람의 삶이 이처럼 허망할까? 나만 홀로 허망하고 다른 사람들은 허망하지 않을까? 통념을 따라 그것을 본보기로 삼고자 한다면 누구인들 본보기가 되지 못할까. 어째서 꼭 변화를 알고 마음으로 마음으로 그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사람이어야 할까. 어리석은 사람도 본보기 삼을 것이 있겠지. 아직 마음에 통념이 없는데도 옳고 그름을 따진다면 그건 오늘 월나라로 갔는데 어제 도착했다는 말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야. 이것은 없는 것을 있다고 하는 것이지. 없는 것을 있다고 한다면 옛날 신묘한 능력을 가진 우임금도 알 수 없을 거야. 나라고 어떻게 알겠어. 


말이란 공기를 내뱉는 것이 아니야. 말은 말하고자 하는 게 있기 마련이지. 그런데 말하고자 하는 것을 확실히 특정되지 않았다면 말을 한 것일까? 말을 하지 않은 것일까? 아마도 새소리와는 다르겠지만 구별할 수 있을까. 구별할 수 없을까. '도'는 어디 숨어 있기에 참 거짓이 있고, 참된 말은 어디에 숨어 있어서 옳고 그름을 따지게 된 걸까? '도'는 어디로 사라졌기에 참된 말이 없고, 참된 말은 어디에 있기에 논쟁이 끊이지 않을까. '도'는 보잘 것 없는 통념에 가리어지고, 참된 말은 화려한 수사에 가리어진다. 그렇게 유가와 묵가가 시비를 까지는 거야. 한쪽에서 틀린 것이 다른 쪽에서는 옳고, 한쪽에서 옳은 것이 다른 쪽에서는 틀려. 다른 쪽에서 틀렸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우기고, 다른 쪽에서 틀렸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우기지. 이런 우격다짐 보다 참된 지혜가 낫지.


모든 것을 '저것이다'라고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이것이다'라고도 할 수 있어. '저것이다'라고 하면 알 수 없던 것도 '이것이다'라면 알 수 있지. 그래서 이런 말이 있어. "'저것이다'는 '이것이다'에서 나오고, '이것이다'도 '저것이다'에서 시작한다." '저것이다'와 '이것이다'가 함께 생겨난다는 말이야. 그런데 함께 생겨난다는 것은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고, 함께 사라진다는 것은 함께 생겨난다는 것이지. 옳다고 하면 그르다고 하는 것이 있고, 그르다고 하면 옳다고 하는 것이 있어. '옳다'에서 시작하는 것은 '틀리다'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고, '틀리다'에서 시작하는 것은 '옳다'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아. 그래서 성인은 그렇게 하지 않아. 다만 하늘에 비춰볼 뿐이야. 그렇게 하는 것도 '옳다'에서 시작하는 것이겠지만 '이것이다'가 '저것이다'가 되고, '저것이다'가 '이것이다'가 되지. 저것 역시 하나의 옳음과 틀림이고 이것 역시 하나의 옳음과 틀림이야. 그럼 '저것이다'와 '이것이다'의 구분이 있는 걸까. '저것이다'와 '이것이다'의 구분이 없는 걸까? '저것이다'와 '이것이다'가 서로 대립하지 않는 것, 이것을 도추道樞, '도'의 회전축이라 할 수 있어. 회전축은 중심에 있어서 끝없이 변화에 대응할 수 있지. 옳음도 끝이 없고 틀림도 끝이 없어. 그러므로 '참된 지혜가 낫다'라고 말했던 거야. 


人之生也固若是芒乎。其我獨芒而人亦有不芒者乎。夫隨其成心而師之誰獨且無師乎。奚必知代而心自取者有之。愚者與有焉。

未成乎心。而有是非。是今日適越而昔至也。是以無有為有。無有為有。雖有神禹。且不能知。吾獨且奈何哉。

夫言非吹也。言者有言。其所言者特未定也。果有言邪。其未嘗有言邪。其以為異于鷇音。亦有辯乎。其無辯乎。道惡乎隱而有真偽。言惡乎隱而有是非。道惡乎往而不存。言惡乎存而不可。道隱於小成。言隱語榮華。故有儒墨之是非。以是其所非。而非其所是。欲是其所非。而非其所是。則莫若以明。

物無非彼。物無非是。自彼則不見。自知則知之。故曰。彼出於是。是亦因彼。彼是方生之說也。雖然方生方死。方死方生。方可方不可。方不可方可。因是因非。因非因是。是以聖人不由。而照之于天。亦因是也。是亦彼也。彼亦是也。彼亦一是非。此亦一是非矣。且有彼是乎哉。果且無彼是乎哉。彼是莫得其偶。謂之道樞。樞始得其環中。以應無窮。是亦一無窮。非亦一無窮也。故曰。莫若以明。




역시나 역량미달이다. 제물론 앞의 복잡한 논의를 우리 말로 옮기는 것이 영 쉽지 않다. 사실 텍스트마다 장절 구분도 달라 의미 단위를 어떻게 끊어야 할까 고민이다. 개인적으로는 <장자익>의 구분과 달리 나누고 싶은데, 일단 <장자익>의 구분에 따라 나누고 그 안에서도 의미에 따라 구분을 두었다.

곽상 주석까지 번역하는 것은 무리이다. 나중에 시간을 내어 곽상 주석을 번역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彼是'를 '저것이다'와 '이것이다'로 풀이했다. 그레이엄의 번역을 참고한 것인데, 그레이엄의 논의를 다시 잘 살펴보고 정리해야겠다. 늘 그렇듯 일단 거칠게 옮겨놓고 나중에 수정해야지. 브런치는 발행후 본문을 수정하지는 않으려 한다. 나중에 새로 글을 발행하는 방법으로 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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