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며

들어가는 말

by 기픈옹달
들로 소풍을 떠나는 사람은 세 끼를 먹고 돌아와도 여전히 배가 부르지. 백 리 길을 떠나는 사람은 밤새워 곡식을 찧어야 해. 천 리 길을 가는 사람은 어떨까. 석 달간 양식을 모아야 하지.
適莽蒼者。三飡而反。腹猶果然。適百里者。宿舂糧。適千里者。三月聚糧。
<장자 소요유>


어느 날 아무런 예고도 없이 세상이 멈추었다. 하늘길이 끊겼고,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줄었다. 판데믹 상황은 여행의 소중함을 다시 환기시키고 있다. 여행이란 건강한 자극이다. 요즘처럼 여행의 충동을 느끼는 시절이 또 있었을까.


<장자>는 떠남의 책이다. 장자는 까마득히 먼 곳으로 떠나자고 권한다. 멀고도 아득한 곳. 쉬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를 여행이라 불러도 좋고, 모험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철학자란 '진리 탐구자'라고도 할 수 있다. 참된 것, 불변의 것, 완벽한 것을 찾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그러나 중국 고대의 철인哲人은 '도道'에 관심이 있었다. 과연 '도'란 무엇일까. 우리의 주인공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도'란 다녀서 생기는 것이다.


장자에게 '도'란 말 그대로 길이다.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다면 결코 길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골방에서 진리를 탐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앉아서 길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길은 떠나야 보이는 법이다. 길은 떠나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소중하다.


그렇다고 장자의 '도', 장자가 보여주는 길이 지도에 그려진 그런 길이라 생각하지는 말자. 어디부터 어디까지 가는, 점과 점을 잇는 선이 아니다. 장자는 우리를 드넓은 대지에 내려놓는다. 그곳에서 멋대로 걸어가보라 말한다. 그것이 바로 길이 아니겠는가.


<장자>는 지금도 해석이 분분한 책이다. 이는 오래도록 '경전經典'으로 숭상받지 못했던 까닭이다. 물론 역사 속에 <장자>를 사랑한 사람은 많았다. 그러나 <장자>는 주류 학술과 늘 떨어져 있었다. 이는 근본적으로 체계성과 거리가 먼 <장자>의 특징 때문이리라. 따라서 <장자>는 이른바 '열려있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그것도 매우 활짝.


<장자>를 읽는 것은 매우 곤혹스러운 경험이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나는 <장자> 읽기가 미꾸라지 잡기와도 같고 롤러코스터 타기와도 같다고 말한다. 잡았다 하는 순간 스윽 도망가 버린다. 미끄덩거리며 도무지 잡히지 않는다. 진흙뻘 속에 숨어버리는 미꾸라지처럼 <장자>는 쉬운 이해를 허락하지 않는다. 남은 것은 지저분한 손뿐이다. 아찔함과 당혹스러움도 있다. 구만리 창천으로 높이 띄웠다가 보잘것 없이 지저분한 삶으로 내동댕이치곤 한다. 바람을 타고 구름에 올라 떠돌아다니게 하다가도 일상의 구질구질함을 들이민다. 멍하니 말문이 막히게 만드는 책이다.


오롯이 장자를 소개하지 않고 그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네 명의 인물을 끌어들인 것은 바로 이런 까닭 때문이다. 장자와 비슷한 혹은 다른 인물을 곁에 두면 장자를 보다 또렷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빛으로 비추어 대상을 밝히는 방법도 있지만, 주변과의 대비를 통해 더 잘 살필 수 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공자, 맹자, 노자 그리고 사마천과 함께 장자를 만날 예정이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장자를 만난다. 그러나 마지막 만날 장자 역시 장자의 여러 얼굴 가운데 하나이다. 장자와 다른 장자라 할까. 이렇게 장자의 다양한 면모를 살펴보려 한다.


철학 역시 역사의 산물이라 생각한다. 역사적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누군가의 철학을 말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따라서 장자 철학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도 함께 소개하려 했다. 춘추전국과 진한 교체기라는 중국 고대사의 흐름을 따라 장자 철학의 특징을 살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하나 염려되는 것은 장자를 깊이 만나기 원하는 청자/독자에게는 변죽만 울리는 기획으로 비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본격적인 장자 독해를 위해서는 장자 본문에 직접 부딪히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 시간은 잠시 뒤로 미루도록 하자. 부디 본 강의가 장자와의 깊은 만남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유랑하는 사상가, 허풍선이 이야기꾼, 혼돈의 철학자, 냉소적 현실주의자. 그럼 이제 장자를 만나러 가는 길을 떠나보도록 하자.



* 고덕평생학습관 강의 : 장자를 만나러 가는 길(5강)의 강의안 초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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