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만나는 장자 2
공자와 장자는 역사적 인물이다. 이 둘이 살았던 시대를 '춘추전국'이라 하는데, 이는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를 합친 말이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을 기준으로 시대를 나눈 것이 아니기에 정확한 연도를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보통 기원전 8세기~5세기를 춘추시대로, 기원전 5세기에서 진나라의 통일(BCE 221)까지를 전국시대라 부른다.
주周나라가 천자국으로 지배력을 잃자 제후국들이 저마다 세력을 두고 다투게 되었다. 이렇게 어지러이 여러 나라가 다투며 춘추시대가 시작한다. 전국시대는 이 들의 다툼이 더욱 치열해진다. 이전까지는 단순한 세력다툼이었다면 이제는 말 그대로의 약육강식,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집어삼키는 시대가 된다. 결국 진秦에 의해 통일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둘 모두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언급되지만, 공자는 춘추시대를, 장자는 전국시대를 살았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외에도 공자의 생몰연대는 매우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남아있는 반면, 장자의 경우 언제 태어나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공자孔子는 기원전 551년에 태어나 기원전 47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곳은 오늘날 산둥성山東省 취푸시曲阜市이다. 사마천은 그의 출생에 대해 늙은 아버지와 젊은 어머니가 야합野合해서 낳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많은 말이 있지만 출신 배경이 좋지 않았다는 점은 확실하다.
현존하는 공자의 행적 가운데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그의 말년, 약 50대 이후부터이다. 그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없다. 50대에 이르러 고향 노나라에서 관직을 맡았던 것으로 보이나, 얼마 지나지 않아 관직에서 쫓겨나 여러 나라를 돌아다닌다. 그 유명한 주유천하周遊天下의 시작이다. 그렇게 방랑하기를 약 14년, 70이 다 되어 고향에 돌아와 몇 년 뒤 세상을 떠난다. 말년에 <시詩>, <서書>를 정리하고, <춘추春秋>를 썼으며, <역易>에 풀이를 달았다고 하나 정확하지는 않다.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말과 행적을 책으로 남겼는데 바로 <논어論語>이다.
한편 장자의 경우엔 역사적 기록이라고 할만한 것이 거의 없다. 그나마 <사기>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 짧은 기록이 남아 있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 이 편의 주인공은 노자와 한비자이다. 이렇게라도 조연으로나마 짧게 남아있는 것이 다행이다. 아래 전문을 싣는다.
장자는 몽蒙 지역 사람으로 이름은 주周이다. 장주는 한때 몽 지역의 옻나무 동산의 관리였다. 양혜왕, 제선왕과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의 학문은 두루 여러 방면을 다루었으나 핵심은 노자의 가르침을 따른다. 그러므로 십여 만 자의 글을 남겼는데 대체로 우화이다. <어부漁父>, <도척盜跖>, <거협胠篋>편을 지어 공자의 무리를 비판하고 노자의 학술을 주장했다. <외루허畏累虛>, <항상자亢桑子> 따위는 모두 사실과 무관한 헛소리이다.
그는 글과 이야기를 지어 세상일을 논하는 것을 잘하였다. 이를 가지고 유가와 묵가를 공격하였다. 당시 빼어난 학자라 하더라도 그의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터무니없고 제멋대로여서 제후나 대부에게 등용될 수 없었다.
초위왕이 장주가 빼어난 인물이라는 소식을 듣고는 사신과 많은 재물을 보내 그를 재상으로 삼으려 했다. 장주가 웃으며 초나라 사신에게 말했다. "귀한 재물을 가져왔고, 높은 재상 자리를 제안하는 구려. 헌데 교제郊祭에 바치는 희생 소를 보지 못했소? 여러 해 동안 잘 먹이고, 비단옷을 입혀서 태묘로 끌고 갑니다. 그때 혼자 나뒹구는 돼지를 바란들 어찌 그럴 수 있겠소? 나를 더럽히지 말고 썩 꺼지시오. 나는 이 지저분한 곳에서 멋대로 즐기며 살지언정, 나라를 가진 자에게 끌려다니지 않겠소.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오."
<사기: 노자한비열전>
이것이 장자에 관해 남아 있는 역사적 기록의 전부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객관적 정보라고는 고향과 본명 정도뿐이다. 그의 이름은 장주莊周, 그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 어떤 행적을 펼쳤는지 알 수 없다. 구체적인 생몰연대도 알 수 없다. 다만 양혜왕, 제선왕과 동시대라는 기록에 근거하여 맹자와 동시대 인물로 추정한다. 공자보다 약 150년 뒤를 살았던 셈이다.
한편 여기에 언급된 ‘그의 책’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장자>와 차이가 있다. 우선 분량이 훨씬 많다. 사마천은 십여 만 자라고 말하나 오늘날 남아 있는 <장자>는 그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외루허>, <항상자>와 같은 편은 오늘날 <장자>에는 보이지 않는다. 사마천 시대의 <장자> 가운데 일부가 오늘날 <장자>로 전해졌다고 추정할 수 있다.
<논어>가 거의 대부분 공자의 행적을 기록한 책인 반면, <장자>에는 장자가 별로 등장하지 않는다. 태반이 우화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나마도 역사적 인물로 장자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얼마 되지도 않는다. 사실여부를 떠나 단순히 분량만 이야기하면 <장자>에서조차 장자보다 공자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
과연 장자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파편적으로 남아있는 내용을 종합하면 이렇다. 그는 매우 가난한 삶을 살았고, 아내가 있었으나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혜시라는 친구가 있었지만 그 역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몇 명의 제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장자는 이들에게 자신의 장례를 소박하게 치르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당시의 제왕 가운데 장자를 초빙하려 한 사람도 있었고, 실제로 군주를 만나 보기도 했다. 그러나 장자는 정치에 뛰어들기는커녕 도리어 한적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다.
사마천은 자신을 찾아온 초위왕의 신하에게 던진 장자의 말을 기록하고 있다. 천금과 재상의 자리로 장자를 초빙하려 하지만 장자는 단칼에 거절한다. 제사에 바쳐지는 소처럼 될 수는 없다면서. 사마천의 기록 이외에도 <장자 외편: 추수秋水>에도 비슷한 기록이 남아 있다.
“내가 듣기에 초楚나라에는 신구神龜가 있는데 죽은 지 3천 년이나 되었다더군요. 왕께선 그것을 헝겊에 싸서 상자에 넣고 묘당廟堂 위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지만, 이 거북은 차라리 죽어서 뼈를 남긴 채 소중하게 받들어지기를 바랐을까요, 아니면 오히려 살아서 진흙 속을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까요?” 두 대부는 대답했다. “그야 오히려 살아서 진흙 속을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 테죠.”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어서) 돌아가시오. 나도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닐 테니까!”
– 안동림 역, 현암사. 441쪽. <추수>
‘진흙탕 속에서 꼬리를 끌며 멋대로 살아야지(吾將曳尾於塗中)’ 그를 모시러 온 이들은 빈 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공자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공자는 쉽게 흔들리는 사람이었다. 부름에 응답해야 할까. 이런 공자의 태도에 버럭 성을 내는 제자도 있었다. 공자를 부른 사람은 한 나라의 군주도 아닐뿐더러, 반란을 일으킨 인물이었던 까닭이다.
공산불요가 비읍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공자를 초빙하자, 공자가 가려고 하였다. 자로가 화난 얼굴로 말하였다.
“가실 곳이 없으면 그만두시지, 하필 공산씨 같은 자에게 가신단 말씀입니까?”
“나를 부른 사람이라면 어찌 공연히 그랬겠느냐? 나를 써 주는 사람만 있다면, 나는 동쪽에 주나라의 도를 부흥시킬 것이다.”
– 박성규 역, 소나무. 679쪽. <양화 5>
필힐이 초빙하자, 공자가 가려고 하였다. 자로가 말하였다.
“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몸소 앞장서서 악을 행한 자에게 군자는 들어가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필힐이 중모에서 반란을 일으켰거늘, 선생님께서 가려고 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물론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갈아도 닳지 않음이 견고함 아니겠는가?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음이 흼 아니겠는가? 내 어찌 그저 매달려만 있고 아무도 따먹지 않는 박과 같을 수 있겠는가?”
–박성규 역, 소나무. 683쪽. <양화 7>
공자는 가고 싶었다. 천금을 가지고 온 것도 아니고, 재상의 자리를 보장해 준 것도 아닌데도 가고 싶었다. 왜 그랬을까? 가까운 제자마저 대놓고 반대할 일을. 그것은 그만큼 공자가 절박한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공자는 어떻게든 등용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장자는 그런 태도야 말로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종묘 안으로 스스로 성큼성큼 발을 옮기는 소 마냥 어리석다며 손가락질을 했을 것이다. 장자는 접여라는 인물을 통해 공자의 태도를 비판한다. 미치광이 접여의 노래를 들어보도록 하자.
* 고덕평생학습관 강의 : 장자를 만나러 가는 길(5강)의 강의안 초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