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와 만나는 장자 1
배우고 늘 읽히니 즐겁지 아니한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 학이>
우리 삶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나, 앎에는 끝이 없어. 한계가 있는 삶으로 한계가 없는 앎을 좇아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일 뿐이야.
吾生也有涯。而知也無涯。以有涯隨無涯。殆已。
<장자: 양생주>
중국 사상사의 특징으로 삼교일치三敎一致를 든다. 세 가지 교파가 한데 묶여 ‘중국의 사상’이라 부를만한 것이 탄생했다는 말이다. 이때 셋은 유불도儒佛道를 말한다. 이 말처럼 유가儒家, 불가佛家, 도가道家는 중국 사상을 대표하는 학파로 서로 영향을 주면서 발전해왔다. 이 가운데 불가는 서역에서 수입되어 중국에 정착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대漢代에 전해졌으나 위진시대魏晉時代를 거쳐 당대唐代에 이르러 크게 융성한다. 반면 유가와 도가는 춘추전국시대부터 발전한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유가를 일컬어 공맹학孔孟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공자孔子는 유가를 개창했고, 맹자孟子는 공자를 이어 이를 발전시켰다. 공자와 맹자가 끼친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에, 공맹학이라는 말은 유가 자체를 일컫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헛된 공리공담을 일삼는 유학자들의 말을 ‘공자왈 맹자왈’이라 비꼬지 않았나.
이와 비슷하게 춘추전국시대의 도가를 일컬어 노장학老莊學이라 부르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노장老莊은 도가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공자와 맹자가 그랬던 것처럼, 노자老子와 장자莊子가 도가의 기틀을 닦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라는 뜻이다. 공맹학과 노장학이라는 말을 보면, 공자와 노자가 짝을 이루고 맹자와 장자가 짝을 이룬다. 그러나 여기서는 장자와 공자를 이어보려 한다.
장자와 공자를 견주어 본다면 몇 가지 차이가 쉬이 떠오를 것이다. 이를 도가와 유가의 차이라 해도 무방 할 텐데, 예를 들어 이런 것들이다. 장자가 자유를 추구했다면 공자는 세속을 추구했다. 장자가 형이상학적 사유, 이상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공자는 형이하학적 사유, 현실적인 측면을 말했다. 장자가 정치로부터 떠나려 했다면 공자는 정치로 뛰어들려 했다. 장자가 자연을 추구한 반면 공자는 문명을 추구했다. 이 이외에도 더 많은 대립항을 만들 수 있다.
이런 상식적인 관점에 의문을 던져보자. 우선은 도가와 유가의 대립이라는 도식에서 벗어나 장자와 공자를 읽어보자. 장자나 공자의 시대에는 도가니 유가니 하는 분류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를 가르는 것은 후대 사람들의 임의적인 구분 때문이다. 춘추전국이라는 시대적 배경 위에 이 둘의 차이에 주목해보자. 상식과는 조금 다른 장자와 공자의 면모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장자가 현실적인 반면 공자는 이상적이라고.
배움(學)과 앎(知)이 이 둘을 이해하는 열쇳말이 될 수 있다. 즉, 공자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말했던 인물인 반면 장자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질문을 던지는 인물이었다. 배움과 앎, 언뜻 보면 비슷한 이 둘에서 공자와 장자의 서로 다른 삶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 고덕평생학습관 강의 : 장자를 만나러 가는 길(5강)의 강의안 초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