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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21. 2021

책 입양하세요

나도 젊었을 땐 많은 꿈을 꾸었다. 뒤에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그리 애석하진 않다. 추억이란 사람을 즐겁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론 쓸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미 스러져 간 그 쓸쓸한 시간들을 정신의 실오라기로 붙들어 매어 둔들 또 무슨 의미가 있으랴. 나로선 깡그리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이 괴롭다.
- <외침 : 서문>, 루쉰전집 2권


불쑥 생각나는 말이 있다. 책에서 읽은 문장 하나가 계속 말을 거는 거다. 그렇게 내 말이 된다.


장정일은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방대한 그의 독서가 흥미롭기도 했지만, 빌려 보기도 하고, 사 보기도 하고, 버리기도 하는 그의 책 인연이 신기했다. 나는 대체로 책을 빌려보지 않고, 사서 보는 편이며, 그렇게 사 둔 책을 쉬이 버리지 못하는 편이다.


책에 돈 쓰는 게 아깝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는 만족감을 주지만, 책 소비는 좀 다른 만족감을 주는 것 같았다. 지식욕이라고 할까. 앞으로 읽겠다고 다짐하는 책을 마구 사두는 것도 그런 까닭일 테다. 책을 버리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겠다. 무릇 지식은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상실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책을 버리는 것은 망각보다 더 아픈 일처럼 느껴졌다.




말이 길었다. 그간 모아둔 책을 처분해야 할 때가 되었다. 연구실 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을 이제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다. 원남동에서 해방촌으로, 해방촌에서 삼선동으로, 삼선동에서 다시 해방촌으로... 오랜 연구공간과의 인연도 달라질 때가 되었다. 


'반려'라는 말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반려 동물이 있다면 반려 가구도 있단다. 삶의 한켠에서 나와 함께 일상을 공유할 존재. 책장 가까이 꽂아두고 싶은 책을 반려도서라고 불러도 되겠다. 어떻게 보면 이 책들은 반려도서로 내 서가에 들인 책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책 정리를 미적거린 핑계가 여기에 있다. 정리하기가 싫었다. 정리하다 지치기도 했다. 허나 목전에 닥친 상황이 채찍질한다. 대부분의 책은 버리는 수밖에 없다. 폐지로 모아 내다두면 몇 시간도 못되어 사라질 것이다. 이 동네엔 폐지 줍는 이들이 많다. 


그냥 고물상에 넘겨지는 운명을 맞게 하기는 싫어 입양자를 찾으려 한다. 나름 때가 묻은 책이지만 필요한 사람이 있을 테니. 또 다른 입양자를 만나, 다른 이의 반려도서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버려지는 것보다는 더 좋은 운명이라 생각한다. 책에도 생애가 있다면.



이밖에 더 많은 책을 정리중




책을 정리하니 여러 생각이 든다. 처분할 책으로 치워놓았다가 다시 옮기기가 부지기수. 책을 손에 들고 상념에 젖기도 한다. 꼼꼼하게 읽은 책도 있고, 앞에만 읽다 치운 책도 있다. 사놓고 채 읽지도 않고 고스란히 서가에 박제된 책도 있다. 


역시 고전 쪽 책이 많다. 중국 쪽 책이 많고, 역사나 한국 사회에 관련된 책도 많다. 철학이나 사회학 책도 여럿 있다. 절판되어 제본해둔 책도 있고, 어쩌다 서가에 굴러왔는지 기원을 잘 모르는 책도 있다.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저자가 선물해준 책도 있고, 누군가 책을 구해 선물해준 책도 있다. 


그렇지만 한 문장이 계속 귓가에 울린다.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반려도서로 입양하실 분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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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리스트 이외에 수 백 권의 책을 더 정리하면서 리스트에 출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입양 보내기로 하는 책도 있고, 다시 마음을 다잡고 붙드는 책도 있을 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지속적인 인문활동을 할 공간을 찾아보려 합니다. 응원하고 후원해주시고 싶으시다면 아래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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