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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Nov 18. 2021

장자씨 헛소리도 잘하시네 4

우화로 읽는 장자 - 양생주

우리 삶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나, 앎에는 끝이 없어. 한계가 있는 삶으로 한계가 없는 앎을 좇아간다는 것은 위험한 일일 뿐이야. 그런데도 알겠다고 한다면 더 위험한 일일 뿐이지. 선을 행하더라도 명성을 얻지는 말며, 악을 행하더라도 형벌을 받지는 말자.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해. 그래야 자신을 보살피고, 온전히 삶을 살며, 자신을 보살피고 모시며, 수명을 다할 수 있지. 




포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았어. 손이 닿고, 어깨가 기대고, 발로 밟고, 무릎을 구부리며 휘익 스윽 온몸으로 칼을 놀리며 소를 해체했지. 음악에 딱 들어맞을 뿐만 아니라 무희들의 춤에도 어울리며 리듬을 타는 모습이었어. 문혜군이 포정을 두고 말하더군. "이야! 대단하구나. 기술이 이런 경지에 이르다니!" 


포정이 손에서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지. "제가 지향하는 것은 도道입니다. 기술보다 더 빼어난 것입죠. 제가 처음 소를 잡았을 때는 소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요. 삼 년이 지나자 소를 부분부분 떼어 볼 수 있었습니다. 방금 전에는 감으로 소를 대했습니다. 눈으로 보는 게 아닙죠. 굳이 눈으로 보지 않지만 감으로 알아챕니다.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지요. 큰 틈에 칼을 집어넣어 결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렇게 결을 따라 움직이면 근육이나 힘줄을 상하지 않습니다. 커다란 뼈는 말할 것도 없습죠. 


훌륭한 백정도 해마다 칼을 바꿉니다. 살을 가르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꿔야 하죠.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헌데 지금 저의 칼은 십구 년이나 되었습니다. 수천 마리 소를 잡았지만 방금 숫돌에 갈아낸 듯 날카롭습죠. 벌어진 틈에 두께가 없는 칼을 집어넣습니다. 휙휙 칼을 휘둘러도 칼날을 여유롭게 노닐 수 있습니다. 이러니 십구 년이 되었어도 막 숫돌에 갈아낸 듯 칼날이 날카롭습니다.


그래도 까다로운 데가 있어요. 힘줄이나 근육이 엉킨 데에 이르면 조심해야 합니다. 눈을 의지하지 말고 천천히 칼을 움직여야 해요. 조금씩 칼날을 움직이다 스윽하며 베어내면 흙덩이가 떨어지듯 땅에 툭 살덩이가 떨어지죠. 그러면 칼을 들고 흡족한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곤 합니다. 이윽고 칼날을 씻어 잘 보관해두죠." 문혜군이 말했다. "대단하구나!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삶을 가꾸는 법을 알았다."




공문헌公文軒이 우사右師를 보고 놀라 말했어. "이 어찌 된 일인가! 어쩌다 외발이가 되었는가?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인가? 아니면 네 탓인가?"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지 내 탓이 아니야. 하늘이 나에게 이렇게 외발이의 삶을 주었네.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모두 두 발이 있지 않은가. 그것이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 하늘이 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 내 탓이 아니네. 숲 속의 꿩은 열 걸음 가야 한번 모이를 쪼아 먹고, 백 걸음 가야 한번 목을 축이지. 그러면서도 새장에 들어가기를 바라지는 않아. 몸이 건강하더라도 좋지 않은 거야. 나도 불편해 보이는 이 몸으로 기꺼이 살고 있네."




노담老聃이 죽었지. 진일秦失은 조문하러 가서는 세 번 소리를 내고는 나왔어. 제자가 말했어. "선생님의 친구 아닙니까?" 


"그렇다." 


"그럼 이렇게만 조문해도 괜찮을까요?" 


"그래. 예전에는 괜찮은 인물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니야. 아까 내가 들어가서 조문을 할 때 자식을 잃은 것처럼 곡하는 늙은이도 있고 부모를 잃은 것처럼 곡하는 아이들도 있더라고. 저들이 저렇게 모인 것은 분명 사람들이 말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서 말하도록 하고, 사람들이 곡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면서도 곡하도록 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야.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에서 벗어나 현실을 부정하려고 하는 거지. 제 목숨이 어디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 채 말야. 옛사람들은 이런 걸 억지로 달아나려는 자에게 내려진 형벌이라 했어. 때가 되었으니 태어난 것처럼 순순히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법. 주어진 현실을 편안히 받아들이고 거스르지 않으면 슬픔이니 즐거움이니 하는 것이 일어나지 않아. 이를 일러 옛사람들은 하느님에게 풀려남이라 했어. 노담(노자)은 생명의 불길이 다하더라도 다른 불꽃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삶에 끝이 있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못했단 말야."




* 매주 목요일 메일을 통해 장자 번역을 나눕니다. 메일링을 신청해주세요. https://zziraci.com/mailing


* 번역문은 원문과 함께 편집하여 차후 <장자씨 헛소리도 잘하시네(가제)>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어볼 예정입니다. 우화의 형식을 살려 대화체로 옮겼고, 딱딱한 직역보다는 가능한 의미가 통하도록 옮겼습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사전구매 해주세요. https://zziraci.com/kuangrenzhuang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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