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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Feb 20. 2022

주부로 산다는 것.

우리 가족의 구성원은 아내와 나 둘뿐이다. 집도 그리 크지 않고 자가용도 없다. 아이도 없어서 가구나 생활용품들도 단출하다. 그래서 집안일이 많지도 않고 그리 힘들지도 않다. 그래서 뇌출혈 환자인 나의 재활활동으로 딱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가 전담하고 있다. 대충 큼직한 일들을 나열해 본다.

 

먼저 청소!!

청소는 일주일에 두 번 한다. 수요일에는 간단히 청소기로 바닥의 먼지만 제거한다. 원래는 수요일에도 물걸레질을 했었지만 뇌출혈 환자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힘들었다. 열정만으로 다 할 순 없다.  타협이 필수다. 일요일에는 청소기와 물걸레질, 먼지떨이, 화장실 청소, 주방 청소, 등등…… 거의 준대청소를 한다. 다리가 후덜덜이다.

 

닭가슴살 정리!!

우리 부부가 다이어트 식단으로 먹는 닭가슴살을 냉동고에 소분하는 일을 한다. 사실 다이어트를 위한 식단은 아니고 평소에 마음껏 먹고 가끔 한 끼 정도 죄책감에 먹는 회개의 식단 느낌이다. ㅎㅎㅎㅎ

 

빨래

식구가 아내와 나 둘 뿐이라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하면 된다. 물론 버튼만 누르면 되니 빨래가 힘들진 않다. 건조기가 빨래를 말려주니 따로 빨래를 널어둘 필요도 없다. 가끔 나의 바지 주머니가 덜 마를 때가 있는데 그땐 건조대에 좀 더 널어둔다. 잘 마른빨래들은 잘 개어놓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가끔씩 여름철의 내 티셔츠에서 걸레 썩은 쉰내가 나면 삶아주어야 한다. ㅎㅎㅎ

 

설거지 

집안일을 전담하기 전에는 몰랐다. 두 명이 먹을 요리에 설거지할 것들이 많아야 얼마나 많을까? 했지만, 설거지거리는 요리의 양과 크게 상관이 없다. 양이 작을 뿐이지 사용하는 주방도구나 용기들은 같으니까. 그래서 되도록 카페 휴무일에는 배달음식을 먹으려 한다. 드라마에서 남편이 늦게 들어와서 저녁 차려달라고 하면 성화를 내던 주부들의 모습들이 이제야 공감이 된다. 

 

보리차 끓이기

신혼초에는 아내가 항상 보리차를 끓여 차갑게 해 두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보리차는 뭔가 따뜻한 정감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보리차를 끓인다. 적어도 2일에 한 번씩은 끓여두어야 끊기지 않는다. 

 

문제는 집안일을 하다 보면 일들이 한꺼번에 겹치는 경우가 있다.

무슨 말이냐~ 하루에 한 가지의 집안일만 하면 힘들지 않지만, 일정한 주기로 일들이 겹치는 날이 있다. 마치 태양과 달과 지구가 주기적으로 일자로 되는 것처럼… 지난 일요일이 그런 날이었다. 빨래가 밀려 입을 속옷이 없고, 마룻바닥은 먼지가 나뒹굴고 설거지거리는 쌓여있다. 닭가슴살도 떨어지고 보리차도 떨어지고……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먼저 나의 쉰내 나는 세균 티셔츠들을 삶는다. 다 삶은 티셔츠들과 나머지 빨래들을 돌리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아……설거지 더럽게 많네…… 전날에 쿠키를 굽고 나서 정리를 하지 않았더니 난리도 아니다…..ㅠㅠ 설거지를 끝내고 보리차를 끓이면서 닭가슴살 손질을 시작했다. 펄펄 끓는 보리차를 식혀두니 어느새 세탁기가 띠리리~~ 하며 임무가 끝났다고 나를 재촉한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빨래를 꺼내서 건조기에 말릴 것과 햇빛에 말릴 것들을 구분한다. 건조기를 가동하고 나머지 빨래는 건조대를 펼쳐 널어둔다. 

 

얼른 돌아와 닭가슴살 정리를 마저 한다. 둘이서 15번 정도 먹을 양이니 약 30덩어리 정도 되는 것 같다. 근막이나 지방 등 잔여물들을 아주 꼼꼼히 제거하고 세척하고 한입사이즈로 자른다. 그리고 우유에 1시간 정도 담가 둔다. 그 사이 보리차가 완전히 식었으니 유리병에 옮겨 담고 냉장고에 넣어둔다. 보리차를 끓인 큰 냄비를 설거지하고 수챗구멍에 끼여있는 닭가슴살 잔여물들을 제거한다. 아……벌써 지친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가니 아내가 일어난다. 이제 청소기를 돌려도 되겠다. 쉴 틈 없이 청소를 시작한다. 일요일이니 화장실 청소도 해야 한다. 일단 거실과 침실 청소만 먼저 끝내고 다시 냉장고로 향했다. 

아내가 내 눈치를 보더니 알아서 점심을 먹겠다고 한다. 감사합니다~

 

우유에 담가 둔 닭가슴살을 꺼내서 다시 세척하고 체에 걸러 물기를 제거한다. 이제 후추, 바질, 간 마늘, 대파, 청양고추를 함께 버무린다. 골고루 버무려졌으면 제일 작은 비닐에 2인분씩 소분하고 냉동실에 저장한다. 

음…… 설거지거리가 또 쌓여있다. 설거지를 하려는 찰나!! 건조기가 띠리리~ 하며 임무를 마쳤다고 알린다.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서 일단 바닥에 던져두었다. 후다닥 설거지를 먼저 마친다. 

건조기에서 말린 빨래들 중에도 약간 습습한 애들이 있다. 역시나 나의 바지 주머니가 아직 습습하다. 덜 마른 바지들을 건조대에 다시 널어두고 나머지 빨래들을 개어서 정리한다. 

이제 대충 끝났나?? 아!! 화장실 청소……

이것만 내일로 미루자……

 

오후 5시쯤 되어간다. 저녁을 해야… 오늘은 진심 배달시키자. 척추염에 걸린 뇌출혈 환자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노동의 연속이다. 몸이 슬라임이 된 듯하다. 몸을 누이면 계속 흘러내린다. 몸이 지하 500층까지 가라앉은 느낌이다. 시야가 점점 점이 되어간다.

이런 날은 자고 일어나면 누가 두들겨 팬 듯이 아프다… 내일 시름시름 앓아눕겠군……

벌써부터 오만 대 두들겨 맞은 느낌이다.

아이를 키우는 주부들은 이런 집안일 플러스 육아까지 해야 하겠지. 이 시대의 아이를 키우는 가정주부님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회사와 주부의 일을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집안일을 하는 사람은 바깥일 하는 사람에게

바깥일을 하는 사람은 집안일하는 사람에게

서로에게 고생했다 고맙다 따뜻한 말과 존경심을 표시합시다. 

근데 집안일에 육아까지 더하면 훨씬 더 힘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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