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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테리 김작가 Jul 25. 2022

울렁울렁 울렁대는 내 가슴

아리랑 라디오에 출현 제의를 받았다. 단골손님 중 한 분이 방송작가님인데 특이한 직업을 소개하는 순서에 클레이 아티스트로 섭외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아내와 나는 재미있겠다며 즐거운 마음으로 수락을 했고 너무 신기해했다. 방송 출연이라니~~ 아리랑 TV 라디오는 청취자 대부분이 케이팝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이다. DJ분이 바로 영어로 통역을 하기 때문에 영어로 말할 필요는 없었지만 뭔가 한국을 대표하는 느낌이 들면서 잘하고 싶다는 의욕이 활활 타올랐다.


한편으로는 조금 불편한 마음이 있다. 재출혈 전에는 정말 수업과 주문제작을 열심히 했는데 지금은 재출혈이 두려워서 수업은 코로나 핑계로 못하고 주문제작도 거의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내가 나가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언제 해볼 수 있겠는가! 출연해서 이야기를 잘하면 되지~. 잘할 수 있다!! 아자차차!!


방송 이틀 전에 질문 대본이 도착했다. 편하게 이야기하듯이 하면 된다는 생각에 다음날에 질문지를 보고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다음날 공방에서 아내가 질문지에 있는 질문을 하는데 갑자기 그분이 오셨다. 울렁울렁울렁울렁증!! 이게 뭐지?? 갑자기 머리에 열이 오르더니 어지러운 기분이 들면서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릿속이 하얘진다는 말이 이거구나! 머리에서 단어는 맴도는데 입 밖으로 나오질 못한다. 이래서 방송인들이 공황장애에 빠지는 것인가~


아내가 긴장을 풀고 친구랑 대화하듯이 해라, 그렇게 아무 말 안 하면 안 된다, 오디오 비면 방송사고다, 등등의 이야기를 하는데 미칠 것 같았다. 아내가 계속 우쭈쭈 해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도 아는데 안되는 걸 어쩌라고~~~~~~~~~~~!!”


화를 내버렸다. 


아내는 이대로는 안된다고 느꼈는지 작가님께 자기가 같이 들어갈 수 있냐고 카톡으로 물어보았다. 지금은 바꿀 수 없다는 대답과 DJ분이 정말 잘하는 분이니 걱정하지 말라는 답이 왔다.


물러설 곳이 없었다. 연습만이 살길이다. 아내는 1:1 과외를 하듯이 하루 종일 코치를 해주었다. 나는 벼락치기하듯이 답변을 외우고 외우고 외우다가 짜증내고 화내며 불 같은 하루를 보냈다. 머리에서 계속해서 열이 났다. 그제야 괜히 한다고 했나 보다 하며 아내에게 하소연했지만 이미 엎질러 버린 물…… 잠도 잘 오지 않았고 차라리 전쟁이라도 나서 취소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날이 밝았다. 거의 포기상태가 돼버려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될 대로 돼라~ 모르겠다…… 라디오지만 유튜브에는 영상이 나오기 때문에 소개할 작품 몇 가지와 선물로 만든 DJ 캐릭터를 챙겨서 방송국으로 향했다. 


작가님께서 우리의 상태를 보시더니 다들 그런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난 거짓 웃음을 지으며 온통 걱정뿐이었다. 간단히 설명을 듣고 대기하고 있었다. 분명 지상에 있는 건물에 있는데 배를 타고 있는 느낌이었다. 파도가 엄청 높았고 곧 뒤집어 질 것 같았다. 


아…… 나와는 상관없이 시간은 간다. 어색하게 자리에 앉아 DJ에게 인사를 했다. 시작과 동시에 서프라이즈로 DJ에게 공들여 만든 DJ 캐릭터 선물을 드렸다. 굉장히 좋아하셨다. 유튜브 영상에도 보여주며 약간 호들갑스럽게 좋아하셨다. 댓글창에 실시간으로 긍정의 반응이 올라왔다. 누군가 내가 만든 작품을 칭찬해주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시작이 좋다. 다행이다. 긴장이 좀 풀리며 높았던 파도도 잦아드는 느낌이다.  


역시 DJ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청취자분들이 한글을 못 알아들어서 다행이다. DJ가 쓸데없는 말은 잘라내고 영어로 이쁘게 포장해서 통역을 해주시니 나는 걱정할 일이 없었다. 질문 대본대로 하는 게 아니라 대화를 나누듯이 DJ가 잘 이끌어 나갔다. 국민 MC라 불리는 이들이 출연료를 왜 그렇게 많이 받는지 단박에 이해가 된다. 


생각보다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방송이 끝이 났다. 그제야 아내가 눈에 들어왔다. 잘했다고 엉덩이를 토닥토닥해주는데 미안함이 갑자기 올라왔다. 전날의 나의 짜증과 화를 고스란히 받아준 것이 영화 필름처럼 휘리릭 머리를 훑고 지나갔다. 끝인사에서 공개적으로 아내에게 사과를 했지만 이제야 마음에서 진정성이 생겼다. 연신 머리를 조아리지만 항상 이런 식이다. 애초에 미안할 짓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다.


두 가지를 느꼈다. 하나는 별생각 없이 웃고 떠들며 보던 방송에 대한 경외심과 아내의 인내심과 사랑에 대한 경외심이다. 티브이를 볼 때마다 그들의 능력과 노력에 감사함을 느낄 것이며 아내가 이 사건을 상기할 때마다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할 것이다. 당신의 도움으로 그나마 인간으로 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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