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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Nov 13. 2021

미모와 부모님을 맞바꾼 사연

미모가 없지만...

2주 전부터 친정 부모님이 오시겠다고 했다. 평생을 정해진 루틴대로 사셨다. 사람과의 약속을 허투루 대하지 않으시더니 딸과의 약속도 철두철미하시다. 오후께 도착하신다고 했다가 더 늦을 수 있다고 연신 전화를 주신다. 그것도 바쁘게 일할 때 말이다.


"거, 오시는 대로 만나면 되는데 신경 쓰지 마쏘. 늦어져도 돼요"


약속한 날이 다가오자 전화는 더 잦아졌다.

"김치는 묵은지, 생김치 다 챙길까?"


"깨 빻았는데 참기름 있어?"


"고구마가 많구나. 필요하니?"


박스와 봉지가 넘칠게 그려져 아득해졌지만 바리바리 챙기실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

"뭔들, 다 가져오이소. 없어 못 먹지"


부모님 도착 1일 전, 다시금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시려는 꼼꼼한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설레기까지 했다.


"야야, 왔는데 왜 없노. 어디갔노?"

딱하게도 나는 미용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그것도 시술 전이 아니라 한참 머리를 말고 있었다. 몇 달째, 머리 손질을 안 해서 컬이 제 멋대로 하늘로 뻗치는 바람에 아침마다 거슬려 일순간 미용실로 운전대를 돌린 게 잘못이었다. <오픈 행사>라고 걸린 현수막이 유난히 빛나던 것도 문제였다. 나는 미모를 얻기 위해 부모님과 미용실을 맞바꾼 딸이 된 것이다. '딸, 보고 싶어'라며 연신 말씀하던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급한 아버지의 높아진 목소리를 어렴풋 들은 미용사가 말했다.

"한 시간은 더 해야 하는데..."


"아버지...... 나 지금 까암~~~ 빡 하고 미용실에 왔는데, 한 시간 걸린다는데 괜찮아요?"

그렇게나 오래전부터 세밀하고 굳세게 약속시간을 정하고 쟁여올 음식을 의논하던 두 분은 흔쾌히 대답하셨다.

"잘 됐네, 고모네 고춧가루랑 고구마 갖다 주는 게 늦어졌는데, 네 동생네가 밥 먹자고 연락 와서 어서 가야 해. 우리도 바쁘다. 어차피 싸온 거만 주고 가려니 그랬는데. 다행이다. 이쁘게 머리 해라."


'와장창' 어제의 설렘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미용실 때문에 불효녀가 될뻔했지만, 동생네 때문에 살았다.

하루가 지나고 딸의 뽀글 머리가 궁금하실까 봐 사진을 보냈다. 그리고 강한 어조로 내 마음을 전했다.

"나는 머리에 미용실 수건을 쓰고라도 달려가려 한 거 알지, 알지, 알지요?"


"야야, 생강 뽑는다. 바쁘데이. 어여 전화 끊어라 "

이렇게 쿨할 수가!

쿨한 부모님 덕에 늘 다행인 인생을 살고 있다. 조만간 친정에 가야겠다. 추석께 복숭아 선별작업으로 큰 공을 세운 '딸, 사위 효력'이 떨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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