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신애 May 07. 2020

남편과 고등어찜의 거리

이렇게 먹고 살자요.

아침에 가족 모두 잠든 기운이 무겁다. 내 몸도 무거워 도통 한 번에 일으킬 수가 없다. 갖은 몸사위로 스트레칭을 해야 전신의 세포가 눈을 뜬다. 아침은 매번 돌아오는 숙제같이 코앞에 있다. 숙제 같은 일도 가족을 위한 것이면 가벼워지는 주부의 습관을 깨운다. 요알못 남편과 요리 모방 연구자 딸 둘이 뒤척일 때 밥을 한다. 일어날 때는 무거운데 움직이면 가벼워진다. 


요즘 아침식사 준비에 호사를 누리고 있다. 예전보다 한 시간 늦은 기상으로 아침 식사 준비가 수월하다. 가족의 신체적 안녕이 나의 음식에 조금 기인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아침마다 잠든 열정을 다독여 손을 움직인다.

오늘의 메뉴를 생각한다. 아이들 음식은 간단하나 남편의 메뉴는 신중해진다. 강한 입맛의 소유자며 음식의 비주얼을 보고도 맛을 예측하는 신기한 능력의 사나이다. 아침식사보다 잠을 선택하며 밥을 건너뛰곤 하던 남편이 아침을 먹겠다고 하면 귀가 번쩍인다. 그의 식미에 안성맞춤으로 차리기 힘들지만 반가운 그 소리를 기다린다. 가장이 아침을 안 먹길 바라는 보통의 가정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가끔 먹겠다는 말이 반가울 만큼 아침을 즐기지 않던 그가 근래엔 아침을 안 먹는다는 말을 드물게 한다. 나이가 들었나 보다. 몸뚱이 하나로 어찌어찌 견딜 수 있던 청춘이 조금씩 멀어지는 것을 그도 느끼는 것이리라. 밥을 먹겠다는 말이 떨어지면 남편의 식성을 고려한 메뉴를 고민한다.  오늘 아침 메뉴는 고등어찜. 찌개류를 즐기는 남편을 위한 쵸이스. 그리고 어엿하게 자라 매운 것도 잘 먹는 막내까지 즐길 수 있는 메뉴다.


그런데 고등어 찜은 나에게 어려운 메뉴다. 친정어머니도 자주 하지 않았던 메뉴라 보고 배운 적은 없다. 요리는 눈으로 배우는 게 더 큰데, 레시피를 따라 해도 늘 엉성했다. 주부 년차가 늘자 가능한 요리가 많아졌지만 찌개나 찜 실력은 아직도 물조절에 실패할 때가 있다. 냉동실에 고등어가 있고, 어제 사둔 싱싱한 무가 있기 때문에 실패를 걱정하면서도 무를 썰었다.


고등어 찜은 국물이 자박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해 늘 실패했다. 만들 때마다 국물 양의 편차가 크다. 아주 많거나 아주 적게 조리한다. 꼼꼼한 성격이 아니라 대충 하다 보니 그렇게 되나 보다. 아이들은 국물이 자박하면 건더기를 건져먹고 국물이 많으면 국물을 비벼먹으며 맛있다고 한다. 국물이 많은 고등어찜은 찜도 아닐뿐더러, 남편에게는 난코스다. 전통적 방식, 어머니에게서 내려온 일관성 있는 레시피에 길들여진 남편의 입맛을 내게로 당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남편은 몇 개의 밑반찬과 구운 김으로 한 그릇 순삭 하고 일하러 나갔다. 예민한 입맛에도 잔소리나 핀잔을 하지 않는 성격에 고맙다. 남편이 손도 안 댄 고등어 찜을 실패감으로 다시 데웠다. 한 번 더 뭉근히 끓이니 국물이 되직해졌다. 아이들이 맛나다고 엄지 척을 연달아 발사한다.

더 끓였더라면 맛난 고등어찜 먹고 힘내서 나갔을 것을. 급하게 끓인 것을 탓했다. 내일은 소고기 미역국을 미리 끓여 차려야겠다. 냉동실에 소고기가 있고 어제 무와 함께 장을 본 건미역이 바스락 거리고 있으니 말이다. 내일 아침을 기대해. 그대가 좋아할 미역국을 끓일게. 힘내야 할 중년~당신에게 파이팅을 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모와 부모님을 맞바꾼 사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