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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ug 13. 2022

48년 만에 찾은 식욕

음식 찐사랑을 공개합니다.

(메인 사진과 아래 첨부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40줄을 넘어선 후 세월을 헤아리지 않았다. 줄곳 40대 초반에 머물고 싶었다. 세월을 거스를 수 없고 비껴갈 수도 없으니 낡아가는 몸에 한숨이 자주 나온다. 안경을 벗어야 폰 화면을 읽을 수 있다. 벗고 폰을 가까이하고 미간을 찌푸리는 동작을 동시에 해야 한다. 자고 일어나 바닥에 발을 딛고 설 때, 급하게 해서는 안된다. 부릉부릉 시동을 걸듯 발목을 십여 차례 돌려 예열을 해야 한다. 손가락 마디마디 욱신거려 쭉쭉 펴는 운동을 수시로 한다. 카페에서 한 자세로 있다가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몇 번 삐그덕 거리며 움직이고 일어선다.


식생활에서도 차이를 느낀다. 저작 작용을 하는 턱관절과 혀가 마음과 다르게 움직여 사래가 잘 걸리거나 목이 말라 국물류가 필요할 때가 있다. 딱딱한 음식은 자제해야 하고 단 음식은 마치 쓴 약 먹듯 많이 먹지 못하고 밀어낸다. "왜 물에 말아먹을까, 국물을 왜 찾을까, 맛난 단 과자를 별로 안 즐길까, 교양 없이 자꾸 음식을 흘릴까'라는 생각을 어르신들을 보면서 했었다. 이제 아주 사소한 몇 가지를 겪으면서 점점 몸이 마음과 달라지는 현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밀어 두기에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자식들을 위해 손주들을 위해 농사를 짓고 음식을 만들어주시는 행위가 얼마나 고된 노동이며 보통 마음으로 하기 어려운지 알기 시작했다.


길게 40줄을 넘어 50줄에 가까워지면서 변화를 운운하는 것은 신체의 다양한 변화와 달리 음식 취향은 변함이 없던 내가 인생 메뉴를 찾은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해 호들갑을 떨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음식을 도전하지 않는다. 부러 찾아 먹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해주지 않는다. 이제 아이들이 내 키를 훌쩍 넘어서고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친구들과 사 먹거나 스스로 재료를 구입해 만들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옥이야 금이야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것이 마냥 좋아 생소한 이름의 소스를 겨우 구해 만들어줄 때가 많았다. 새로운 조리법으로 맛에 변화를 주거나, 하찮은 재료로 근사한 요리로 둔갑시키는 마술도 부리곤 했었다. 요리 실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린 자식들에게 다양한 것, 몸에 유익한 것을 먹이겠다는 목표가 강렬했기 때문이다. 이제 엄마요리를 지적질하는 저들도 취향이 있는 터라 마구잡이로 먹기를 요구할 수 없다. 가끔 "엄마, 안동식 찜닭 해줘"라고 하면 반가운 마음에 대령하지만 그것도 귀찮아서 시켜먹을 때도 많다.


만사 귀찮고, 워낙 먹는 것에 별스런 취향이 없는 나는 알약 하나로 하루를 버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손꼽기도 했다. 물론 좋아하는 라테는 여전히 존재하는 그런 세상 말이다. 그런데 이다지 스펙트럼이 좁아터진 나를 자극하는 메뉴 만났으니 바로바로 마라마라 '마라탕'이다. 작은 아이가 수시로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먹는다는 마라탕. 큰 아이와 작은아이 서로 마라탕 전도사인 양 말을 하는데 소외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우리 것도 아니고 너무 매워 위장에 부담이 될 것 같아 과하게 먹지 말라고 잔소리하던 메뉴다.


일전에 방학을 맞은 작은 아이와 마라탕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 갖은 재료를 골라 무게를 재고 계산한 후 끓여주는 마라탕을 집에 들고 왔다.  아삭이는 숙주와 젤리 같은 식감의 분모자(이 식재료를 지금 알았다니 분하기도 하다), 냉동 두부와 다양한 면(옥수수 면, 쌀국수면, 당면)에 각종 떡(고구마 치즈떡, 쌀떡, 밀떡)도 넣고 비엔나소시지도 넣었다. 청경채도 듬뿍, 목이버섯과 팽이버섯도 넣는다. 국물은 곰국 국물인 듯하고 샤브용 돼지고기나 소고기도 추가할 수 있다. 모두 넣어 끓인 국물을 큰 팬에 옮기고 이렇게 말했다. "잡탕이네"

매운맛은 도전하지 못해 순한 맛으로 골랐지만 내 입에는 매웠다. 아니 입술이 아팠다. 원래 마라탕이 때리듯 아픈 통감을 준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알 듯했다. 그리고 특유의 구리면서 시큼한 냄새에 정신이 아득했다. 이내 나는 아삭한 숙주에 반하고 분모자의 쫄깃함에 혹했다. 야채도 건져먹고 떡도 한입 먹었더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대한민국에 50년 동안 된장찌개를 즐기지 않는 사람으로 고집스레 살아왔다. 그리고 된장찌개를 싫어하니 잘 끓이지 않고 주부 경력 21년 차가 넘어가고 있다. 그런 내가 "캬, 구수한 된장찌개 맛이네"라고 외치고야 말았다는 사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도 마라 소스 작은 스푼 넣고 국물용 치킨스톡을 한알 넣고 냉장고를 털었다. 잡탕이라고 음식을 규정하니, 마라 소스의 독특한 향에 뭐든 넣으면 맛이 나고야 마는 매력. 만사 귀찮은 주부에게 만들기도 쉽고 냉장고도 비울수있어 일석이조, 게다가 이국적 향과 맛에 취하는 기쁨까지 주는 마라마라 마라탕. 아이들에게 너무 매우니 먹지 말라고 말렸던 것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다. '먹지 마라 마라탕'이 아니라 '다 넣어 말아' 마라탕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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