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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May 05. 2022

18년 차, 어린이날 탈출

행복했다. 지긋지긋했다. 날 보내주면 어떻겠니?



"어린이날 뭐하지?"


이 지긋지긋한 질문에서 해방한 2022년 5월 5일. 자유롭게 날 줄 알았더니 아침부터 싱숭생숭하다. 18년간 어린이날 어떻게 잘 보낼까에 골몰하던 에너지를 어디에 쓸 줄 몰라 어리둥절하다. 둘째의 중등 입학과 동시에 나는 어린이를 살뜰히 챙기는 퍼포먼스에서 해방되었다. 아이들도 요구하는 눈치가 아니고 나도 무겁지 않은 마음이지만 한 구석 영 찜찜하기 짝이 없다. 꼬리표처럼 붙는 반성 질문은 아직 유효하다. "좋은 부모인가? 아이들은 잘 자라고 있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무엇을 더 해줄 수 있고 더 할 필요가 없을까?" 놀이공원 따위에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되니 반성 질문이 자꾸 나를 들쑤신다. 상쾌한 기분이 점점 구려진다.



"오늘, 남아도는 시간 뭐하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 뭐할까 고민했다. 아이들의 스케줄을 묻지 않고, 먹거리만 챙겨두고 나갈 양으로 바질 페소토를 듬뿍 넣은 스파게티와 상큼하게 아삭 거리는 오이무침, 가지볶음에 새 밥까지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이 눈을 뜨기 전에 서둘러 나가려고 손발을 빨리 놀린 까닭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도 오전 8시. 그리고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친구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미혼인 친구, 아이들이 훌쩍 큰 비슷한 과정에 친구. 아무도 답이 없다.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길 바라 마음이 급해졌다. 답을 기다리느니 어서 나서야겠다는 필사적인 마음에 푸석한 머리를 다듬었다.



"이전에 어떤 시간을 보냈지?"


코로나 팬데믹이 2종 전염병이 되고 실외 마스크 착용은 제한이 풀렸다. 2년 하고도 몇 달 동안 책 여러 권을 기성 출판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전자책 형태로, 공저를 기획하고 주도해서 출간하기까지 쉼 없이 달렸다. 매일이 마감이었다. 내가 스스로 자청한 마감과 실제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내야 하는 실제 마감에 둘러싸여 살았다. 숨이 턱까지 찬다는 말을 실감했었고 그게 썩 나쁘지 않았다. 나를 위해 열렬하게 쏟는 시간이 간절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22년 백신 접종과 함께 나빠진 몸 상태에 바투 잡았던 줄을 놓고 "휴식"을 선언했다. 목적 없는 글쓰기, 목표 없는 글쓰기는 하되 가시적 결과물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속으로의 결심. 그리고 평생 알뜰한 시간관리를 추구하던 나는 느슨하기 짝이 없는 편함에 몸을 맡겼다. 살이 찌고 관심도 없던 드라마 각종 영상 플랫폼을 넘나들며 섭렵했다. 그러면서도 머리 한쪽은 묵직했다.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방치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오늘, 오롯이 아이와 가족과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생기자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었다. 그간 방치하고 누적한 '나'의 불쾌와 부담감은 건너뛰어서는 안 될 지점이다.



"만족할 만한 일?"

쉬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게 열렬히 살던 때와 비교할 수 없이 편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당장 책을 읽어야 하고 늘 머리에 맴도는 그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의 압박에 매일 쳇기를 느꼈다. 최소한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매진하되 더 변하고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는 방법. 그냥 수동적으로 해야 할 것을 하는 기분. 그리고 더 고민하고 질문하지 않는 법. 이렇게 편해도 되냐는 불안을 느끼면서도 꽤 편했다. 그런데 그 편함이 불편했다. 그리고 이대로 불편을 옆구리에 차고 계속 살고 싶지 않다. 코로나 시기의 루틴대로 살아서는 안된다. 미래의 숨을 끌어다 쉬는 꼴이었다. 지금처럼 느슨하고 목적 없이 보내는 건 더더욱 안 되는 일이다. 절충안으로 나를 '할 수밖에 없는 프레임'에 가두는 것. 그래서 외부적 마감으로 시동을 걸고 서서히 움직여야겠다. 열정적인 여성들이 새벽을 깨우고 강의를 듣고 자기 계발에 열을 올리는 세상이다. 한 걸음이라도 걸으면 나아가게 된다.



"이제, 슬슬 움직여 볼까"


둘째를 낳고 두 돌이 지날 무렵 무릎이 고장 났다. 연골에 물이차고 부었다. 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그러면서 관절을 최대한 아끼기로 했다. 염증이 완화까지 약을 잘 먹고 운동은 자제하되, 호전되면 가벼운 운동을 하라는 의사의 처방에서 운동을 자제하라는 것에 꽂혀 걷는 것이며 운동에 계단도 오르지 않았다. 그러기를 십여 년이 지났다. 무릎 상태가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걸으면 뻐근함에 덜컥 놀라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습관이 관절을 더 나쁘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운동할 때 뻐근함은 당연한 것이며, 근육을 움직이고 운동을 해야 관절 주위에 근육이 강해진다. 나의 남은 여생의 직립보행이 강건하려면 '멈춤'이나 '아끼기'가 아니라 '더 움직이고 제대로운동하기'이다. 그러려면 굳은 근육을 일깨우고 더 두꺼워지기까지의 '뻐근함'과 통증을 넘어서야 한다.



18년 육아, 어린이날에서 탈출하는 오늘이 특별하다. 느슨하게 흐르는 대로 살던 나를 흔들어 깨우는 날. 반년 이상 머뭇거리는 나의 태도 저변 깔린 '불안, 두려움, 실망, 괴리감, 한계, 비하'를 꺼내는 날이다. 들춰내고 쑤시고 발굴하는 '통증'은 마땅한 수순이다. 어디를 가서 셀프 시술을 해볼까나? 아이들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린다. 얼른 덜 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그들에게 엄마가 안 보이는 날, 자유롭고 좋은 날일 테니. 서로 좋으니 그만이지? 엄마는 묵혀둔 것을 발굴하러 가련다. 날 찾지 말거라. (이 악물고) 알.겠.느.냐?



-오늘 하루 어린이날이 공휴일이기만 한 분들 복받으시고,

-어린이날 오롯이 아이들을 돌보시는 분들, 복 더 많이 받으시고...


이 글은 고쳐쓰기 없이 휘리릭 뽕! 발행합니다. 저, 가요~~~~현재 8시 30분. 글은 10시에 발행해요. 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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