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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pr 24. 2022

책 밖의 어른이 책 속으로<서평>

-책 밖의 어른 책 속의 아이-서평

이 책은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만들고 번역하며 독서교육을 오래해온 저자의 평론이나 칼럼이 많이 담겨있다. 그래서 말랑한 에세이를 원하는 독자라면 그녀의 분명한 주장이나 뚜렷한 가치관과 방향이 곳곳에 노출되어 있음을 미리 알고 책장을 펼치면 좋겠다.


책을 읽는 내내 '아이들이 책에서 얻을 것들을 어른이 지레 추측하고 책을 선택 자유, 책을 읽을 자유, 책을 거부할 자유를 앗아갔다'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그림책을 선별하고 가르치고 권하는 일을 해보았고 지금도 그 선상에 있지만 의아할 때가 많았다. 어른의 눈을 만족케 하는 책이 아이들에게도 과연 닿을지 의문이었다. 출판시장에서 반짝이는 베스트셀러나 저명한 전문가의 추천을 받는 그 책이 과연 아이들의 의사를 반영한 것일지에 대한 의문이다. 나의 의아함을 씻어주기라도 하듯 이 책은 그런 면을 지적한다. 어른들이 짐짓 '아이들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출판과 독서교육을 장악한 것에 대한 지적은 새겨들어야 할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자주 반복되는 '책을 읽는 이들은 아이들인데 책을 고르고 구매하는 이들은 부모라'라는 말이 요즘의 그림책이나 어린이 동화, 청소년 소설 시장의 흐름을 유추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이를 위해 책을 선택하기 훨씬 전부터 아이들의 책을 메인텍스트로 수업 교재를 만드는 일을 했었다. 당시 아동을 위한 문학이라는 영역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좋은 그림책인지 판단하는 이론이나 기준이 부재했다. 작가는 아동을 위한 출판시장이 활성화되기 전부터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연령으로나 활동 이력을 볼 때, 아동문학 평론이나, 출판과 번역 등에 유익을 많이 준 것 같다. 작가의 존재를 알지는 못했지만 작가가 제기하는 많은 논점을 '수업 교재 집필'이라는 작업을 할 때 다양한 루트로 접했었다. 그런 문제제기 덕에 어른의 눈으로 아이들의 책을 재단하지 않으려 많이 노력했다. 그리고 어른들이 좋다는 책 보다 아이들이 반응하는 책을 찾느라 고심했다. 이런 본질을 잃지 않는 어르신이 존재하고 유익한 책이 개정되어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것이 반갑기도 하다.



"우리가 감지하기 어려운 우리 아이들의 내면, 그리고 우리가 망각한 우리 안의 아이 마음에는 이처럼 묘하고도 거친 감정의 드라마가 숨어있다. 아슬아슬하게 그 드라마를 버텨내면서 인간은 아이 시대를 떠나온다." (본문 27p) 저자는 오랜 시간을 아이들을 관찰한 덕인지 '아이들의 발달이나 심리'를 제대로 간파한다. 부모에게 밀착된 아이는 어른이 되면서 부모와 분리를 경험한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겪는 것만큼 아프고, 슬프고, 두려운 마음들을 버텨내야 한다. 그 어려운 일을 조금 쉽게 만들어 주는 대상을 위니컷은 '중간 대상'이라고 불렀다."(본문 중) 작가는 위니컷의 말을 빌려 중간 대상이라는 개념을 전하며, 아이란 존재는 중간 세계(분리 과정)를 건너가면서 중간 대상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나는 이 말에 공감을 했다. 중간 대상은 바로 중간 시기의 마음으로 사는 어른들이며 이들이 일군 예술세계로 아이들은 중간 시기를 위로받을 수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아직 건너지 못한 아이 마음을 가진 어른들에게도 이들이 만들어낸 예술은 큰 위로를 준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어린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어른이 만든 서사는 아이들에게 정체성을 세우며 부모와 분리될 수 있게 한다. 더불어 아이 시대를 제대로 떠나보내지 못한 어른에게도 큰 위로를 준다. 작가의 의도에 부합할는지 모르지만, 이런 주관적 공감을 하면서 지금까지 아이들 책을 교육적 텍스트로만 보지 않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는 매개로 경험했던 이유가 더 분명해졌다.


청소년 문학에 대한 지적 부분도 느리게 읽으며 나의 경험을 반추해보았다. 최근에 청소년 소설이 발전하고 보편화되는 경향에 숨은 이면이 떠올랐다. 더 많은 청소년 소설이 출간되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책애소 더더더 멀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읽기 거부를 위한 대처로 요즘 인기가 많은 청소년 소설을 권하지만 아이들은 책 저자의 묘한 억압적 주제의식에 거부감을 드러내거나 현실에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 이상적 결말에 콧방귀를 뀌는 것을 지켜봐왔다. 그 이유가 작가가 지적한 것과 연관된 것임을 직감했다.



청소년 문학은 어른과 아이의 경계에 어정쩡한 청소년들에게 묘약이다. 부모와 친구로도 해소되지 않는 감정의 찌꺼기를 소화하기 위해, 서사를 관통하며 자기 나름의 사유를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자신이 경험하기 어려운 처지의 타자의 입장을 이해하기도 하고 자신의 숨은 의도가 들춰져 낯 붉어지면서도 옳은 방향을 그려볼 수 있게 만든다. 그런데 이런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책을 꺼리는 이유에 '어른들의 압력'이 도사리는게 아닐까? 아이들이 책을 거부하는 현상에 입시라는 서열화 중심의 교육환경이 큰 걸림돌이다. 독서가 성장이 아닌 성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 분위기를 아닌 척 물리칠 수 없다.



"자기 흉터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키우지 못하고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 리 없건만 오늘날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최소한의 상처도 없이 키우려고 전전긍긍한다"라는 김혜진 작가의 말을 인용한 것은 잘한 것이다. 청소년 시기,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느리게 읽기'를 통해 스스로의 흉터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길 간절히 바란다. 아이들은 이미 정답을 강요하는 독서교육에 너무 질린 탓에 좋은 청소년 소설이든 비추할만한 소설이든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이르니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책은 어린이를 겨냥한 출판시장의 어두운 면을 꼬집고 독서교육 방향의 재조정을 바라는 목소리가 가득하다. 아이들의 성적이 아닌 성장을 바라는 어른이 가져야 할 마음을 강조한다. 강요나 강압, 어른의 시선이 주도하는 출판시장의 흐름이나 독서교육에 대한 도구적 시선이 개선되기 위한 저자의 애씀이 그대로 반영된 이 책을, 독서로 고민하는 어른이라면, 아이를 '잘' 키우려는 부모라면 읽기를 권하고 싶다.

*나나시스터 모임에서 '꼬독단'으로 함께 활동합니다. 책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으며 내용은 매우 주관적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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