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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l 18. 2021

남편 상한 음식 먹이기

제목을 읽으니 소름이 끼치네요. 무엇이든 상상 그 이하이거나 이상일 겁니다. 남편에게 상한 음식을 먹이는 도발을 제가 했을까봐서요. 브런치를 탐독하시는 남편님들이라면 경악할 제목에 진위를 밝힙니다.


때는 바야흐로 1주 반 전입니다. 아침에 두부김치를 꺼내 두고 큰 아이더러 챙겨 먹으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어젯밤 거의 밤을 새운 탓에 아침에 일어나지 못했고 식탁 위에 있던 볶음김치와 새하얀 두부는 제 형체를 그대로 간직한 채 제가 퇴근한 9시까지 식탁 위에 있었습니다. 저는 안방으로 급히 들어가 줌 수업을 해야 해서 그 접시를 치우지 못했죠. 식탁을 스치는데 살짝 시큼한 냄새가 났어요.

출처 핀터레스트-마이코리언키친

줌 수업을 진행하느라 정신없는 틈에 남편이 귀가했습니다. 저녁을 패스하려던 남편은 식탁 위에 반들반들한 김치볶음에 아마 눈이 돌아갔나 봅니다.(남편은 김치 덕후죠) 그리고 김치의 새콤함과 다른 쉰내를 눈치채지 못했나 봅니다. 새벽에 나가야 하는 남편이 작은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한 후에야 수업이 마친 저는 주방을 치우러 갔습니다. 접시에 봉긋하게 디스플레이되어있던 두부며 김치가 형체를 잃고 사라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각각 자신의 일에 몰두하느라 못 보았다고 했습니다. 수업 중 주방에서 들려오던 쩝쩝하던 소리의 실체는 남편임에 분명했지요. 다음날 남편에게 두부김치에 대한 것을 물으려던 저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잊어버렸습니다. 남편은 워낙 건강체질인 데다 축구를 몇 년째 선수급 스케줄로 소화하고 있습니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심혈관이 본인의 나이보다 10년은 젊게 나온 사람이며 각종 지방간이며 콜레스테롤 수치 등이 정상 이상이었습니다. 분명 축구를 하기 전 각종 질병 재검을 요구받던 남편이었음을 기억하니 놀라운 변화지요. 그래서 저는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건강한 체질의 남편이 얌체처럼 느끼곤 했습니다. 소화불량으로 며칠 고생하면 이럽니다. "도대체 체하는 게 어떤 느낌이야? 도대체 상상이 안돼" 그렇게 웃으며 제 어깨를 10여 초 주물러주고 물러갑니다. 10분을 주물러도 쳇기는 잘 풀리지 않는 것을 겪은 사람은 잘 아시겠지요. 어지럽다고 하면 그게 뭐냐고 하고 무릎 연골에 문제가 생겼다고 하면 다리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날 때 손목과 손가락 관절이 뻐근해 잘 못 움직인다고 하면 억지로 제 손을 당깁니다. 마음의 문제니가 마음을 똑바로 먹으랍니다. 아파보지 않아 공감할 수 없는 남편의 유일한 몇 가지 단점 중 하나입니다.


일주일이 훅하고 지난 엊그제 남편이 좋아하던 빵을 마다했습니다. "왜? 빵 좋아하는데 왜 안 먹지?" "요즘 속이 안 좋아. 며칠 전부터 설사를 하고 속이 안 좋아" 그제야 저는 남편에게 이실직고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몇 초간 고민했습니다. 이실직고를 하면 내가 너무 속 시원하고 고소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불쾌할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셋이서 웃었습니다. "건강한 아빠라도 별수 없구먼" 아이들과 키득거리는 장면을 목격한 남편은 그 이유를 물어왔습니다.


"여보, 미안한데, 일주일 전에 당신 식탁 위에 두부김치 먹었어?" "응, 다 먹었지. 맛나던데?" "여보, 그거 정말 상한 거야. 지나가는데도 쉰내가 나던데 몰랐어?" "윽, 진짜? 정말 몰랐어"


저는 절대로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14시간 남편 하나 골탕 먹이려고 모든 전략을 세웠을까 봐요. 큰아이더러 두부김치에 손을 대지 말라고 전략을 구상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당신이라서 설사 몇 번으로 끝이지 다른 사람이면 식중독으로 4박 5일 입원했어. 정말 대단해. 당신이 축구하길 잘했어. 매일 경기를 뛰고 햇빛에 그을리니 이리도 건강하지. 최고 건강 쟁이"

어느덧 화제는 두부김치의 식중독균에서 축구에 대한 예찬으로 이동했습니다. 역시 모든 대화의 끝을 축구로 귀결할 때 문제 해결이 쉬워집니다. 내가 미안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남편의 며칠 설사병에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저는 남편의 축구 편향적 성향을 극진히 지지하는 바입니다. 뭔들 먹어도 소화하는 능력의 최대치를 매일 누리시길. 남편이 건강쟁이여서 때론 야속하지만 항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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