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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Oct 2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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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心한 페어런팅 #9

스티브 잡스는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한 개인이 하는 서로 연관성 없는 일을 점이라고 할 때, 미래에 이 점들이 어떻게 연결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을 시사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어느 한 점이라 할 때, 미래 어떤 결정이나 도전에 이 점이 크게 사용된다고 생각하면 게을리할 수도 없고 하찮게 여길 수도 없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아주 미미한 하나의 점에서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다. 켈리그라피 자격을 따겠다고 자격과정에 등록한 것이 하나의 점이었다. 자격증은 땄지만 제대로 써먹을 수 없었다. 기존에 있는 글씨체를 따라 쓰면 자격을 주는 방식이라 실력을 갖출 수 없었다. 우연찮게 전문가로 활동 중인 지인에게 제대로 켈리그라피를 배우게 되었다. 자격과정이 아니라 취미과정으로 다시 시작했다. 필압을 조절하며 붓 끝을 배꼽 쪽으로 당기는 훈련을 지속했다. 붓의 결과 방향과 진하기를 이해하고, 붓을 세워 붓끝을 당기면서도 밀며 선을 그을 때, 흔들리지 않고 선이 그어지는 어떤 점을 만났다. 마치 낚시하는 사람이 느낀다는 손맛과 같았다. 예상치 않는 사소한 몰입을 그때 경험했다. 그리고 일관성 있는 서체를 하나 둘 익혔다. 필체가 익혀지니 연습 삼아 좋아하는 시를 필사하기 시작했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두 번째 점은 수제 스탬프 제작이었다. 한낱 싸구려 지우개에 밑그림을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이미지나 글씨를 그리고 음각 양각도 모른 채 도려내며 망중한을 즐겼다. 갈래로 나뉘며 괴롭히는 복잡한 생각은 멈추고 오로지 마지막 드러나는 조각의 결과에 탄성을 질렀다. 남편이 지우개 따위를 조각하는 게 뭐 중요하냐며 핀잔을 줘도 끊을 수 없었다. 나의 초라한 몇 달간의 조각 행보에 큰 몰입의 힘을 경험했다. 스탬프를 필사한 글에 함께 꾸미기 시작했다. 점과 점이 만나기 시작했다. 


켈리그라피로 아름다운 글을 옮기고 수제로 조각한 스탬프를 찍으면서 즐거움을 느끼던 일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대신 남의 글귀를 옮기지 않고 내 글귀를 옮기기로 했다. 그러려면 글을 써야 했다. 유년기의 꿈이던 시인이 되기로 했다. 공적으로 산문을 써본 일이 없는 범인으로 짧은 시가 조금 더 쉽겠다는 무모한 용기로 혼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것과 별세상이 바로 글쓰기였다. 하지만 발을 들였으니 무라도 뽑고 싶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고 높아진 하늘은 밤에도 진한 남빛으로 둥글었다. 사물과 자연과 현상이 뿜어내는 말을 받아 적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글쓰기가 또 다른 하나의 점이었다. 


이후 정말 사소한 매일의 습관의 반복과 몰입을 거듭하면서 어느덧 7년 차를 지나고 있다. 시를 쓰다가 에세이로 일상을 기록하고, 어쭙잖은 출간을 하다가 전문적인 교육 실용서를 쓰기까지 짧은 시간 밀도 있게 살아왔다. 이런 여정을 걸으면서 아이들을 닦달하던 마음, 안달복달하며 남과 비교하고 아이를 들 채근하는 마음이 달라졌다. 취미 수준에 점들이 이어져 결국 여기까지 이른 과정에 남다른 인도함을 느끼면서, 점점이 사소한 것들이 연결되어 꿰어놓은 보배가 되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채근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청소년 학부모로서 아이들의 학습에 대해 잔소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의 경지에 도달했거나 아예 자식을 정말 포기했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나는 아이들이 몰입할 수 있는 점을 쌓고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비록 보편적인 길이 아닐 수 도 있다. 자신이 필요를 느껴야 제대로 몰입할 수 있다고 믿고, 그럴 경우 늦게 시작해도 시간이 단축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생각에 모든 아이들을 묶어 적용할 수 없다. 내 자녀의 고유성과 다름에 적합하게 내 생각을 거시조정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매일 점을 찍고 있다. "하찮게, 쓸데없는 짓하고 있네"라고 말하기 쉽지만 라이트 형제는 자전거 수리를 하다가 최초로 비행기를 띄웠다. 스티브 잡스는 다양한 서체에 매료되어 몰두한 점을 갖고 있다. 천지를 개벽한 스마트폰을 세상에 내놓았다. 에디슨도 2000번이 되는 실험을 실패했지만, 그 모든 실험이 점으로 쌓여 결국 전구가 켜지지 않는 2000번을 알게 되었다는 명언을 남길 수 있었다. 나면서 위대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하찮고 사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시시한 것들을 반복한다. 그 가운데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기, 관심사에 몰두하고 탐구하는 시간은 결코 어리석거나 쓸모없는 행위가 아니다. 내 아이가 지금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생각을 전환하는 게 좋겠다. "지금 점을 찍고 있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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