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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pr 19. 2024

'비스킷'에도 단계가 있다고?

[비스킷] 짧은 후기

[비스킷]이라는 제목을 보고 뇌리에 계속 남았다. 간식을 떠올릴 제목을 보자마자, 담긴 의미가 궁금했다. 아이들 글쓰기 대회 지정도서라서 읽은 이 작품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운 전개였다.


"세상에는 자신을 지키는 힘을 잃어 눈에 잘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존재감이 사라지며 모두에게서 소외된 사람. 나는 그들을 '비스킷'이라고 부른다."(출처: 책의 서두)


주인공은 존재감을 잃어 타인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을 소리로 인지한다. 주인공은 비스킷을 3단계로 구분하는데, 1단계는 반으로 쪼개진 단계: 존재감이 없어 "어, 너 여기 있었어?"라는 말을 듣는다. 2단계는 조각난 상태: 이 사람이 같이 있을 때, 50%의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는 단계. 3단계는 부스러기 상태: 존재감이 없고 세상에서 사라지기 직전인 상태.


청각 질환을 앓는 주인공은 어릴 때부터 남들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들어왔다. 실제 미세한 비스킷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주인공. 그는 아버지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비스킷을 구하려 행동해 왔다. 위험천만에 놓인 비스킷을 구하려 몸을 던지는 분투와 친구들의 협동작전은 보는 이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이들의 무모한 작전이 걱정스러웠지만, 이야기 막바지에서 희원이라는 3단계 비스킷 상태의 아이를 구출하는 등장인물들의 행보에 탄성과 박수를 쏟고야 말았다.



뚜렷한 등장인물들의 성격. 서로 기대는 모습에서 대견함과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명의 인물도 허투루 등장하지 않는 짜임새에서 작가의 노련함을 읽을 수 있었다. 사건의 흐름이 독자로 하여금 한 눈 팔지 않게 만들었고, 결국 예측가능한 결말임에도 막힌 속을 뚫어주었다.



존재감을 잃는 것은 당사자의 잘못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의 태도로 벌어질 수 있는 결과이다. 누구나 자신을 둘러싼 관계를 통해 비스킷의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누군가에게 짓밟히고 존재가 거부당한다면 1, 2단계로, 그 상처가 누적되고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면 보이지 않는 3단계가 된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을 반영한다. 작가는 우리가 경험하는 관계에서 누군가에게 투명인간 취급받을 때, 타인에게 주목받지 못하거나 존재감이 없을 때의 작용을 면밀하게 살펴 옮겼다.


나의 매일의 몸짓과 눈빛, 말과 시선에서 누군가를 제외해오진 않았는지. 어디선가 툭 하고 부딪칠 때, 넘어진 상대의 마음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어두워진 채 살아가는 건 아닌지. 평소 사소하게 흘려보낸 말과 행동 속에, 모르는 척 덮어둔 감정이 들킨 기분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새벽을 맞았고, 옅은 조명을 끄지 못했다. 살면서 손 내밀고 싶다가도 뒷걸음질 쳐왔던 '비겁함의 잔재'가 일렁거렸고, 책 속 주인공과 친구들의' 무모하지만 빛나는 용기'에 기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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