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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Dec 08. 2020

글쓰기 안되는게 아니라 쓰기 싫은거라는


글이 안 써진다고 여러 번 반복하면 나의 뇌는 스스로 안 써지는 몸이 되게 채비한다. 눈이 무거운 것 같고, 허리가 지끈 한 것만 같고 손가락까지 저릿한 듯하다. 늦은 밤 주로 톡을 하는 친구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니 환경도 글을 못쓰게 만들고 내 입도 망발을 하고 신체도 그에 걸맞은 노곤함을 장착한다. 쓰리콤보로 나를 옥죈다. 이럴 때는 당하고 있으면 안 된다. "너희들을 타도할 것이다."



글이 잘 안 써진다고 말하는 입방정 입술씨에게 다른 입술이 말한다. "안 써지는 게 아니라 쓰기 싫겠지. 네가 자신 있는 꼭지 글을 먼저 쓰면 되잖아. 다 알면서 미루기는. 너, 그러는 거 습관 된다." 원래 투정하던 입술이 쑥 목구멍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끈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일어나 스트레칭을 한다. 고정자세로 오래 있었던 것이었다. 디스크는 아닌데 척추협착증을 앓는 사람처럼 굴었다. 손가락이 저릿저릿한 것은 카톡을 키보드로 오래 치고 있으니 혈액순환이 안돼서 그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나는 스스로 안되도록 하는 행동을 하나씩 하고 있었다. 귀를 씻고 입술을 닫고 허리를 펴고 손가락으로 원고를 친다.



남편은 출장, 작은 아이는 꿈나라, 큰아이는 제 할 일 삼매경. 몇 주간 일인 출간과 인스타그램 정리와 블로그 글쓰기에 바빠 미뤘던 주방을 정리했다. 원하는 배치는 아니지만 식탁까지 옮기고 노란 부분 조명 아래 노트북을 켰다. 퇴근하고 글을 쓰는 데까지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게 마땅치 않지만, 주부의 일이 어디 내가 하기 싫다고 미루기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오래 걸려 귀하게 얻은 고즈넉한 시간을 글이 안 써진다는 말로 퉁칠 수 없다. 그래서 다시 원고창을 열었다. 옆에 노랗게 알람을 보내는 카톡도 창을 닫아버렸다. 최대한 나를 방해하고 유혹할 것들을 제거했다.

오늘 1시간만 더 열중하고 잘 것이다. 어제 너무 달려 피골이 상접할 정도다. 조금만 더 이 새벽을 버텨야겠다. A4 1페이지만 더.







안 써지는 게 아니라 안 쓰고 있을 뿐이다. 안되는 게 아니라 안되고 있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 쓰면 써지고 하려면 되는 게 사람이 하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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