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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Dec 08. 2020

오늘 마감. 내일 마감. 겹경사인지 재앙인지

마감과 다가오는 마감 사이에 있는 기분은 어떨까? 집필이든 업무든 공부든 끝나지 않은 것들 사이에 있는 기분 말이다. 정답은 '사람마다 다르다'이다. 작가들마다 신날 수도 있고 계속 우울하기도 하고 불안으로 키보드를 두들기곤 한다. 최근 마감의 연속으로 밤마다 눈꺼풀이 무겁다. 나이가 들어 자정을 넘기는 것은 죽자고 덤비는 행위일까? 갑자기 겁이 나니 건강검진을 언제 했는지 생각해본다. 오래전에 해봤다. 아직 체력으로의 위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임을 고백한다.



집에 돌아와 일주일 밀린 청소를 하느라 또 자정이 되어 자리에 앉았다. 그러니 닥치는 매일의 마감. 콘셉트 진 100일 프로젝트로 글 쓰는데, 오늘 38일차다. 매일 목을 죄는 마감이 있는 것을 알면서 왜 프로젝트에 동참했을까? 그 이유가 바로 글을 쌓기 위해서다. 초고가 될 글이지만 모아놓으면 나중에 다 쓸모가 있다.



오늘 마감을 해서 파일을 넘겼다. 그런데 3주 후 다가오는 마감에 멍 때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오늘 마감을 위해 어제와 오늘 이틀을 허비했다. 사실 마감을 위해 48시간을 사용한다는 건 아니다. 그저 하루에 글 쓸 수 있는 짧은 시간 때문에 이틀은 걸린 것이다. 그 사이 사람을 만나고 카페를 들르고 일을 하고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아이를 픽업하는 일을 하느라 흐름이 하나로 집중되지 못하 비효율적 상황이 계속 거슬렸다.



누군가 물었다. 잘 쉬고 있나요? 휴식하고 있나요? 질적으로 높은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질문에 생각이 많아졌다. 보통 사람들은 휴식이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릴까?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정지한 상태, 뇌가 정지하고 입력되는 영상에 눈을 고정하고 몸도 멈춘 모습, 음악이 흐르고 맛난 음식이 차려진 휴양지 등을 떠올린다.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런 휴식을 누린 적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치면 아이를 키우는 주부의 휴식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멈추고 즐기는 그 순간에도 아이들을 돌보고 그릇을 옮기고 흘린 주스를 닦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 작품을 쓰는데 몰두한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오늘의 마감에 손을 댔다. 그러면 앞에 쓰고 있던 내용에서 해방된다. 더 이상 그 주제로 나를 쬐이던 밧줄이 느슨해진다. 정보를 풀어내려고 애쓰던 뇌가 잠시 운행을 중단한다. 그리고 살면서 경험한 에세이를 교정하니 다른 쪽 뇌가 가동된다. 내가 나의 글을 읽으며 쉰다니. 물론 교정을 위해 문장을 다듬고 오타를 수정하는 데 좌뇌를 사용하긴 하지만 내용은 우뇌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사실 에세이 글을 마감하는 것으로 나는 휴식했다고 말할 수 없다. 아이들이 많이 자라 스스로 시간을 분배하고 공부와 놀이를 병행한다. 어제와 오늘은 아이들이 주말 겸 보고 싶은 영화를 실컷 보겠노라 나를 보내주었다. 그래서 공방에서 혼자 시간을 많이 보냈다. 메인 잡으러 만나는 아이들은 다 돌아갔고,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삶을 누리고 나는 매이지 않은 몸으로 글을 고친다. 설원 위에 누워있는 적막과 해야 할 일이 나를 누르지 않는 상태. 그저 읽고 쓰는 것만 하는 상태. 그것이 나에게 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혼자 오래 머물 수 있는 이런 쉼이 매일이면 좋겠다. 삶이라는 얇은 귤의 껍질을 하나씩 까지 않으면 속살의 단맛을 볼 수 없다. 작고 얇은 귤껍질을 까는 것처럼 하나하나 손가락 끝에 힘을 주고 조금씩 까야 한다. 굵은 귤처럼 한꺼번에 쉽게 까지지 않는다. 인생은 작고 얇은 귤같이 번거롭고 사소한 것들의 연속이다. 그 흐름 속에 짧은 여유와 적은 자유와 미미한 기회를 허송세월하지 않는 것이 잘 쉬는 것이고 잘 사는 것 아닐까.



내가 잘 쉬었다 느끼는 게 늘 해오던 읽고 쓰는 것에서였다. 어떤 일이나 사람의 요구를 받지 않아도 되는 적막 가운데의 읽고 쓸 때 개운해지는 것이다. 마감 원고를 보냈다. 그리고 수강 중이던 마지막 화상강의도 끝났다. 귀하고 유익한 강의라도 정해진 마감이 있는데, 수강을 마무리하니 또 시원했다. 그 시간이 11시. 오늘은 잠들기 전까지 몇 시간 자유롭고 싶다. 적막 가운데, 요구받지 않는 시간이길.

내일의 업무, 미리 준비해둘 강의, 만날 사람들, 해치울 일이 쓰나미처럼 높다란 벽을 만들지만 말이다.



급하고 바쁜 일에 치여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의 삶에도 휴식이 필요하다. 몸과 머리를 정지시키는 휴식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휴식으로 채울지는 스스로의 성향에 맞춰야 할 문제다. 어떤 휴식이 자신을 가장 여유롭게 만들면서 속 시원하게 하는지 알고 싶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참 쉼의 형태를 상상해본다. 먼저 가족들에게 물어봐야겠다. 나의 예상과 얼추 비슷할지 아니면 전혀 다른 방식을 선호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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