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신애 Jul 09. 2021

장맛비에 우산이 없다

나는야 간다! 간다!

장마기간임을 잊고 있었다. 어제 하루 후덥지근하고 하늘이 청명하길래 비라는 것이 다시 안 올 것처럼 오늘 아침 빈손이었다. 여름의 날씨가 내 감정보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것을 왜 잊었던지.


강연 준비를 하겠다고 카페로 들어설 때만 해도 비가 오리라 예상을 못했다. 오늘 비는 나에게 좋은 것인지 잠시 생각한다. 우산이 없으니 정수리부터 옷자락까지 축축해질 테다. '이런 나쁜 비야~'라고 하려다가 지금 이 비가 내 예상과 달라 당황스러워도, 시원하게 내리니 마음이 차분해지는 게 나쁘지 않다. 며칠 남편의 휴식에 맞춰 내 일정을 뒤로 미루어 다급해진 마음까지 닿는 빗줄기에 조금 더 머물러 생각해본다.


우산을 준비하지 않고 장마를 보낸다는 것은 얼마나 용감한 일인가. 나에게 장마에 빈 손인 것처럼 아이를 키우는 것이나 글 쓰는 일이나 새로운 일을 계획한다는 것은 버겁고 뒷골이 뻐근해지는 일이다. 여름방학시즌이 되자 아이들이 특강을 하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선생님 가르쳐준 내용이 수업시간에 다 생각이 나요. 우리 반에서 제가 제일 많이 알아요. 미리 한번 훑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이번에 왜 안 해요?"


이번 방학은 오롯이 부모 됨, 사춘기 자녀양육 분야에 매달리고 혼자 공부하고 나를 되돌아보고 싶었다. 이론으로만 아는 게 아니라 나의  일상에 적용하지 못하는 원리와 적용이 안 되는 이유를 파헤치고 싶었다. 문제는 시간이다. 물리적 시간의 한계. 일하며 살림하며 스스로 배움을 추구하며 강연준 비만으로 최고수위에 닿는데 특강을  패스하려고 했다.


중학생이 된 제자들이 더 알고 싶다는 진지한 표정에 답을 해야 했다. 만나는 아이들이 내가 고민하는 분야의 대상일 뿐 아니라, 예쁜 마음으로 더 가르쳐달라는 손짓을 하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 최대한 아이들이 많이 참석할 수 있는 시간을 모색했다. 학부모들과 통화로 2가지 방안을 세웠고 공지 문자를 보냈다. 이런 과정에 많은 에너지가 들지만 하루 저녁 시간을 할애해 아이들과 일정을 짜는 것에 가치를 두기로 했다. 나를 찾는다는데 얼마나 고맙고 기특한지. 중1 아이들에게 이런 열정은 돈을 쥐어 주고도 맛볼 수 없는 귀하고 사랑스러운 것임에 분명하다.


결국 내가 판 무덤, 올여름의 스케줄로 우산 없는 빈손인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작은 그릇인 나를 견주어보면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능력의 부족, 시간과 환경의 마뜩잖음, 새롭게 생긴 일정으로 조율하기 등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구슬마저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위기는 기회, 나의 한계는 다른 기로 나아가는 성장의 첫 발판이기도 하다. 버겁고 부담이 된다는 것은 성장하기 위해 알을 깨고 있다는 것이다. 한 달을 조금 더 나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치고 빼서 가능하게 해야 한다. 건강까지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다행인 것은 이 여름 집필해야 할 원고가 없어 다행이다. 일전에 집필하던 원고를 1차 완성해서 미뤄두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나나책] 프로젝트 투고 성공으로 최종원고수 정본을 보내기 가지 한 달 남짓 매일 퇴고 행진을 해야 하는 것이 있지만, 내 글쓰기를 줄이면 가능할 일이니 가능하기도 하다.


하루의 삶을 꽉 차게 사는 것을 즐기고 늘 마감 압박을 은근히 즐기는 이상한 취향이었는데 이제는 천천히 가능한 선에서만 움직이고 싶다. 손에 우산을 꼭 쥐고 언제 비가 와도 찰방거리며 여유 있는 삶이고 싶다. 7~8월의 일정이 생각지 못하게 진행되어 우산 없이 비를 만난 형국이지만, 어쩌면 조금 비를 맞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맞아도 금세 마르는 계절임을 잊고 있었다. 아니 누군가 옆에서 우산을 씌워줄 수도 있고  없던 시간이란 여유가 찾아올 수도 있다.


인생이 어디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던가. 오늘 아침처럼 쨍하던 하늘에 비가 들이치고, 우산이 없어 비를 맞기도 하거나, 알고 보니 트렁크에 우산이 몇 개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비상한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한 큰 다짐보다 매일 쳐내야 할 그 일에 집중한다면 어느새 8월이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우산을 들고 있든 없든 상관없지 않을까?비야 네 멋대로 와라. 나는 어쨌든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세' 실종 사건. 인세야~인세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