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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an 14. 2019

______ 동상이몽

설거지하다 잠시만요~

큰아이가 내가 할 설거지를 도와주고 있었다. 다시 말해보면 큰애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설거지를 하는데 내가 마무리를 한다고 합류했다. 딸은 자기를 못 믿냐는 듯 엉덩이로 나를 밀었다. 아이는 나에게 눈짓을 하며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저는 나를 돕는다고 시작했고 나는 그게 고마워서 내식대로 도우려고 옆에 다가갔다. 일을 나눠주면 편할까 해서 그녀의 이타적 마음에 훼방을 놓았다. 사는 게 늘 이렇게 어긋나는 걸까. 그래도 끝까지 알콩달콩 엉덩이로 싸우며 설거지를 끝낼 때쯤이었다.


아이보다 수천번은 더 했을 동작이 어색했다. 나의 어눌한 몸짓으로 오히려 설거지는 지연되었다. 물을 개수대 밖으로 다 흘렸다. 수저를 헹구고 다시 떨어트리곤 했다. 큰아이가 어이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왜 그래?"라고 했다.  내가 저를 십여 년 이상 훌쩍 잔소리로 키웠는데 이제 내가 저의 잔소리를 들는 현실이라니 묘한 기분이었다. 사는 건 이렇게 역전의 연속인가 오묘한 감정이 움트려고 했다. 오늘 딸 인생은, 산다는 게 어떻다고 말하는 멜랑꼴리 감성 꼰대처럼 행동했다.


"내가 늙어가니 그렇지. 네가 어른이 되면 어눌해지는 나를 아기 다루듯 돌봐줘야 할지도 몰라" 잠시 숙연해졌다. 나는 이 말이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대수롭잖게 말한 것이다. 그런데 큰아이는 조금 달랐나 보다 말이 없어지고 묵묵히 있다가 "안돼, 그러면 안돼" 고개를 흔들며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자기 방으로 갔다. 가는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뭐 그리 세상 진지해?"


너와 나의 온도차를 좁힐 방법이 없었다. 화가  많이 날 때(세상 일로 혹은 큰 아이 때문에) 과격한 말호 혼을 냈던 기억이 난다. "아이고, 이러다 치매 오겠다. 혹은 주어진 공부를 등한히 한다 싶으면 뒷목을 주무르며 아이 방 옆을 지나며 아이고 고혈압, 쓰러진다, 넘어간다. 이러다 내가 이러다 죽겠지 등의 말을 했었던 기억이다. 그렇게 언성을 높여 말할 때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손이 어눌해져서 떨어트리고 흘리고 깨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 같지 않은 엄마에 대해 생각이 바뀌었나 보다.


아이는 오랫동안 소리도 없이 자기 방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둔한 나는 아이가 왜 시큰둥하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설거지를 도와줄 때는 그렇게 고맙다가 방구석에 처박혀 오래도록 기척도 없으니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했다.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려 그냥 두었다.

밤이 되자 어슬렁거리며 나타난 아이는 뜬금없이 건강뉴스에 대해 읊었다. 어느 대학교에서 치매 치료제가 개발이 완성됐다며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치매에 대해 백과사전처럼 읊는 모습이 아이 같지 않았다. 그제사 알았다 아이 마음에 무겁게 한 나의 가벼운 말의 힘을.

엄마는 누구보다 오래 살 거고 아직 할 일이 많아서 오던 병도 놀라 도망갈 거라고 강력하게 말해주었다. 아프단 말은 그만큼 아프지 않고 싶다는 반어법이라고 하니 끄덕거렸다. 자신의 두려움이 자기 해석으로 인한 결과임을 받아들였다. 또한 엄마가 절대로 의욕상실로 생을 과감히 끝낼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격하게 이해했다.

비로소 아이에게 안심하는 눈빛을 찾더니 잠시 친절해진 목소리가 다시 냉랭해졌다. 아이에게 설거지뿐 아니라 엄마의 건강을 염려해준 것에 대해 무척 고맙다고 말했다. 엄마의 말을 자기 식으로 생각해 걱정 백만 개를 경험하던 아이, 아이에게 겁을 주려 과한 말을 하던 나, 같은 말을 다르게 이해하는 우리의 동상이몽은 하나로 통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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