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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an 15. 2019

_____기질과 음식궁합

성격이 급한 자들의 주관적 입맛

우리 가족은 다들 일하는 속도가 빠르고 자기주장이 분명하다. 말이 떨어지면 무섭게 실행하는 구성원들이라 외출할 때 누구때문에 현관 앞에서 기다려 본 적이 없다. 준비 된 자들은 각자 튀어나가 승차를 하는게 문화기 때문이다. 출발시간이 지나면 얕짤없이 차가 먼저 출발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처음에 내가 아이들을 잘 길들였다 생각했지만 아이들이 크고 나서 아이들조차 속도가 빠른 것을 알게 되었다.


빠른 속도의 장점은 일 앞에서 주도적으로 나서 성취를 빨리 해낸다는 것과 타인들을 들쑤셔 함께 하도록 분위기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그 외 단점도 있겠지만, 오늘 은 장점만 말하고 싶다. 그런 성격 덕에 회색지대 음식에비위가 상해 숟가락을 놓는 예가 많다. 새로운 메뉴를 식탁에 진열할 때는 그 음식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게 통과의례다. 국인지 찌개인지 이름을 고하는 게 식사 이전 선행과정이다.


가족원 모두식감이 선명한 음식을 즐긴다. 저작작용을 할때 소리와 질감의 분명하지 않는 물컹거림은 사양한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그 흔한 바나나도 사놓고 많이 버렸다. 아이들의 식성이 바나나에도 영향을 미치는 줄 그때는 몰랐다. 바나나의 효용성을 알면 알수록 먹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버려지는 비싼 바나나가 아까웠다. 엄마가 먹지 않았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딸들에 그 엄마라고 나도 바나나를 즐기지 않는다. 나도 밍기적 거리는 음식을 최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나나의 물컹함을 싫어하는데 죽을 좋아할 리가 없다. 아이들이 아파도 죽은 잘 먹지 않는다. 장염으로 식음을 전폐할 때나 그 입에서 죽 끓여 달라고 말한다. 그러다 병세가 옅어지면 바로 밥, 밥, 밥으로 회귀한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자주 볼 수 없는 메뉴는 죽이다. 아이들이 미음부터 시작하는 이유식을 잘 먹을 리가 없었다. 둘 다 미워 죽을 만큼 안 먹었다는 일화를 말하기 시작하면 눈물 없이 못들을 일이 많았다.


남편은 축구를 사랑한다. 축구 때문에 운동 후 입는 선수용 롱 패딩을 최근 장착했다. 어김없이 간지나는 롱 패팅을 입고 저녁도 먹지 않고 나가 축구경기를 하고 늦은 밤 들어왔다. 출출함이 몰려오는 시간이라 매콤한 라면이 당긴다는 것즘은 나도 알았다. 하지만 빈번하게 먹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라 끓여주지 않았다. 방학을 맞아 라면 끓이기를 전수받은 딸이 자신의 기능을 자랑하기 위해 콩나물을 넣은 라면을 아빠 앞에 차려 놓았다. 꼬들꼬들한 면발이 내가 끓인 것보다 낫다면 청출어람이 청어람이라는 소리가 식탁에서 울려 퍼졌다. 어휴 라면~!


과하게 밥까지 말아먹고 자리에 누워 행복감에 젖어 잠들었던 남편은 새벽같이 일어났다. 다시 롱패딩을 입고아침도 거르고 급한 일을 보러 나갔다.(급한 일이란, 쉬는 날을 맞은 구미 원정 축구 친선경기였다. 어제 저녁에 만난 팀과 다른 팀이다. 나는 축구과부이다. 남편이 젊은 편이라 불참하면 팀에 무리가 간다고 여차저차 참석했다) 그 급한일을 마무리할 때 즈음 아침 겸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배에 탈이 났단다. 그래서 쫄쫄 굶고 집으로 와 뜨겁게 몸을 데우며 누워있었다. 나는 그 현장을 저녁이 되어서야 발견했고, 지금껏 뭘 좀 먹었냐 물으니 빈속이고 설사 기운에 감기까지 동반했다고 했다. 고소했다.


어릴 때부터 마을에 장군이라는 별명을 들으며 기골이 장대했던 남편은 최근까지도 돌이라도 씹어 먹을 체력으로 살아왔다. 소화불량이라는 것을 걸려 본 적이 없다. 몇 끼니를 넘겨도 위염이나 속 쓰림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늘 체기를 달고 사는 나를 이해하지 못해 등을 두드려 줄 때도 영혼이 탈출한 사람처럼 두드려준다. 체기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두드려 주는 손길이 제일 정성스럽지 않다. 종합병원인 내가 앓는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운동을 안하니 그렇다고 면박을 주기도 하는 사람이라 끙끙 앓는 소리가 고소했다.


평소 자신의 건강을 자랑하며 뭘 먹어도 신경 쓰지 말라던 그의 입에서 죽을 끓여달라는 말을 들었다. 반가웠다. 미미한 병이지만 신체적 한계를 느끼고 몸을 아끼는 지점에 온 것 같았다. 너무 자신의 건강을 자신하던 호기가 겸허해 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죽을 끓였다. 감기 기운으로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하다가 억지로 수저를 들더니 2그릇이나 먹었다. 이번에 제대로 며칠 아팠으면 했다. 며칠 후 중요한 강의가 있어 그 전까지만 누워 인간의 한계, 체력의 고갈, 늙어가는 신체를 어떻게 다스릴지 고민하길 바랐다.

이렇게 차려주면 감기는 싹 사라지지요. 체력이 좋은건가요, 내조가 좋은 건가요?

건강이야기를 잔소리 콘셉트로 달고 사는 나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는 태도가 고쳐지길 바랐다. 건강을 염려하는 나보다 신경안써도 병이라곤 모르는 자신을 두둔하는 게 마음에 안들었다. 복수할 기회가 온 것이다. 무리하더니 남아날 몸이 어딨냐고 호되게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함께 느끼고 함께 준비하길 바랐다. 지금까지 써먹은 신체를 잘 보살피겠다 마음먹길 기대했다.


아침이 되어 뿌연 죽을 다시 끓였다. 참기름을 넣어 온 집에 고소한 냄새로 채워졌다. 남편이 몸을 지지던 방에 들어가 열을 쟀다. 웬걸, 그나마 나던 미열이 쑥 하고 자취를 감추었다. 벌써 깨서 뉴스를 보고 있던 남편이 말했다. "다 나았다. 내 몸은 내가 안다고 했지" 몇 년 전 심하게 한 번 감기를 하더니 몇 년 만에 누웠는데, 다시 펄펄 살아나려고 하고 있다.나의 간절한 기대는 하루가 채우기 전에 끝이나는 것인가. 올해 처음이자 마지막 끓인 죽을 오늘 아침에는 버려야 할 것 같다. 에잇, 밥을 다시 해야 하나 고민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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