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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an 21. 2019

부부에게도 추억이 필요하다

애들 빼고 추억 만들기

다양한 형태의 부부가 존재한다.

사귀고 결혼하고 알아온 시간만 해도 20년이 넘는 우리는 제각각 독립적인 부부로 살아왔다. 우리의 결혼기념일 선물은 '묻지 마 용돈'이거나 '묻지 마 자유시간'이었다. 그마저도 첫아이를 낳고 키우는 10년 미만에 챙기던 행사지, 요즈음은 서로 결혼기념일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친숙하고 편한 관계성을 맺고 살아간다.


터울이 있는 큰아이와 둘째로 인해, 육아의 끈을 일찍 놓지 못했다. 시어른과 친정 어른 모두 가까이 계셔도 아이를 맡기기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래서 애들을 데리고 늦은 시간 막창이라도 구워 먹으러 나가려면 용기를 내야 했다. 가끔 배달 오는 치킨이 우리가 누리던 추억의 전부였다. 장거리 여행은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원가족보다 더 편한 사이로 지내던 우리였다.


관계의 다이내믹이나 밀당, 혹은 부부싸움을 할 정도의 갈등 유발도 별로 없고 서로를 너무 잘 알아 레드 버튼을 건드리지 않는 사이다. 서로를 어떻게 움직이게 하는 지도 노련해서 애를 많이 써야 하지도 않다. 심심한 부부라는 말이다. 애들은 엄마 아빠는 왜 안 싸운다고 자주 말한다. "이 정도 살고 싸울 거 예전에 다 싸웠다"라고 웃는다.


아이들이 많이 자랐고, 부모님의 데이트를 오히려 반기는 나이가 되었다. 둘이 짜고 고스톱을 치는지 언니 방에 들어가 나오지도 않았다. 아이들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 잠깐 나갔다 와도 되겠니?" "응 갔다 와. 그런데 어디가?" 또 발목이 잡히는 건 아닌가 노심초사 진땀을 흘렸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산책,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이야기 좀 하게""응 우리 둘이 같이 자고 있을게"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우리의 자유시간을 허락받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시간은 고유하며 누구에게 허락으로 받아내야 할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늘 꼬리표처럼 붙어 동행하는 부산스러움이 싫어 둘만의 데이트는 시도조차 못했었다. "갔다 와. 너무 늦지 마" 아이들의 의외의 대답에 놀랐고 이 기회를 놓치기 싫어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부리나케 뒤를 안 돌아보고 현관 밖으로 도망가듯 나왔다.


취미로 축구를 즐기는 남편이 축구경기에 골을 넣고 들어와 기분이 좋아 라면도 일 인분 먹고 싶었던 터였다. 기름진 막창을 먹으며 축구를 볼 수 있는 가게로 향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둘만의 야식 행보에 두근거렸다.


생막창을 대자로 시켰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기름이 뚝뚝 떨어지며 참숯에 지글지글 익는 것을 쉴 새 없이 먹었다. 우리는 일 년 만에 막창으로 폭주를 했다. 술을 먹지 않으니 사이다를 옆에 두고 콩나물 국을 함께 먹으며 고소함을 음미했다. 늘 아이를 먹이느라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던 이전 기억들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막창의 상태를 논했다. 축구경기를 보다가 잘 구워진 막창을 집어 주었다. 아이 없이 서로에게만 집중된 이 상황이 어색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당장 달려가 아이들을 데려오고 싶다가도 병이라 생각하고 참았다.


고소함이 입안에 퍼지면서, 우리에게 부재했던 추억의 시간이 아쉬웠다. 애들 키운다고 자신을 돌보지 못한 시간의 주름살이 서로의 얼굴에 자세히도 묻어있었다.


우리가 없으면 아이들이 어떻게 될까 너무 애를 섰고, 매사에 전전긍긍하며 아이 스스로 하도록  맡기지 못하던 옛날이 생각났다. 그 시간을 통과해서 여기라는 사실이 새삼 대견했다. 대견한 서로에게 노릇노릇한 막창을 건네주었다. 아이를 의식하지 않는 가벼운 젓가락질에 흥이 돋았다.


늦지 않았겠지.
우리의 추억을 쌓을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앞으로 걸어갈 시간표를
재조정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들은 각자 자신의 인생의 길을 찾아 문을 열고 그리로 걸어갈 것이다.
그 과정을 뒤에서 응원하며
지그시 바라볼 시간이 다가온다.


함께 응원할 사람은 우리 두 사람이다. 서로를 격려하고 보듬는 추억으로 끈끈해져야 한다. 하나 된 우리가 아이들을 견고하게 응원하며 바라볼 것 아닌가 생각하니 세월이 유수 같다는 고전적인 말이 생각났다. 너무 전형적인 표현이지만.


(그리 지긋한 나이가 아닌데, 성급하게 노후를 말하는 글의 분위기를 지울 수 없지만, 오늘만 예스러워 보려고요.)


지금 살고 있는 여기, 우리의  사소한 추억으로 가끔 벌어진 틈을 채워본다. 자주 둘만의 추억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남편의 생각은 어떤지 모르지만,  막창을 씹으며 혼자 세상 진지해져 본다.

2016.12-영남문학 겨울 시 부문 신인상

2018.12- [당신 곁의 사랑을 확인하세요] 공저시집  출간

2019.1-서울시인협회 청년 시인상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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