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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pr 19. 2019

어깨 통증과 고난주간

무거운 짐을 맡기는 새벽

기독교는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부활절 전 일주일을 고난주간으로 보낸다. 모든 교인들은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시려던 높은 뜻을 숭앙하기 위해 그 의미를 묵상한다. 나는 오랜 세월 이 기간을 반복해서 매우 익숙하다. 그런데 고난주간을 마음으로만 기념해도 되는데, 몸으로 기념하게 생겼다. 올해 고난주간이 이전과 다른점이 있어 글로 옮겨본다.


며칠 전부터 뻐근하던 어깨에 강한 이상신호가 왔다. 공방 사무공간에 앉아, 오늘 나를 방해하는 아이가 없어 밀린 서류를 정리하고 강의를 준비하는 중, 어깨에 심각한 통증을 느꼈다. 이대로 공방에서 혼자 쓰러져 아침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 얼른 열쇠와 폰만 챙겨 집으로 향했다. 덜컥 겁이 났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지금 어깨 인대 파열이라도 되었다면 이 크나큰 일을 어찌 감당할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도 너무 바빠 사소한 책이며 공방 짐을 옮겨달라기 귀찮아서 여러 날 무거운 책이며 짐을 혼자 옮겼다. 아직도 옮기지 못한 몇백 권의 책이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기다리는 상황이라 마음이 급했다. 왜소한 체격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는 씩씩함이 화근이 된 것이다. (용달서비스라도 부르지 않는 미련을 용기라고 해야 하나, 무식함이라고 탓해야 하나?) 누가 나에게 요구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나를 몰아세운 탓이리라.


아파서 밤새 한숨도 잠을 못 잤다는 지인들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사람은 결코 경험 없이 완전한 공감을 하기 어렵다. 갑자기 수많은 고통 가운데 지나갔던 지인들의 말이 실체가 되었다. 그 고통의 정도와 힘든 감정이 살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늙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무릎이 약한 친정엄마의 호소에 얼마나 하찮은 위로의 말로 건넸던가 반성을 했다. 디스크로 한 발짝도 걷지 못하던 남편 옆에서 장난스레 웃었던 기억에 얼굴이 붉어졌다. 아이의 열띈 얼굴과 초점을 잃은 눈을 보며 괜찮다고 밥 먹으라고 억지를 쓰기도 했었다. 나는 경험하지 않은 병세에 공감을 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이다.


최근 지인이 첫아이를 낳았다. 심장에 이상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갓 태어난 아이를 정밀하게 검사하니 더 복잡한 수술절차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한다. 아기는 인공호흡기를 끼고 있고 개흉 한 상태로 수술 결과를 지켜보기도 했다. 코로 분유를 주입해주고 있으며 심정지가 오지 않고 폐호흡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매 순간 긴급상황이다. 아이 낳은 산모에게 몸조리를 생각할 여유도 없다. 대학병원 차가운 복도에서 퉁퉁부은 다리로 앉지도 못하고 서성일 그들의 마음이 오버랩되어 견디기 어려웠다. 나의 어깨 통증과 예수의 수난과 갓난아기의 고통이 연결되는 새벽이 깊어갔다.



누워도 서도 앉아도 아팠다. 숨을 쉴 때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려도 아팠다. 밤새 눈물이 났다. 아파서 울었고 사람에게 존재하는 피할 수 없는 질병이라는 것의 실체 때문에 그랬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 46분이었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분. 아침이 되려면, 병원을 가려면 몇 시간을 더 고통 가운데 버텨야 된다는 사실 앞에 혼자 울었다. 아이가 생각나 울었다. 지인들의 혼자 울며 버텼을 새벽녘이 떠올라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사람이 진 짐을 홀로 지기 위해 예수가 걸어간 길이 떠올랐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금요일 받았다면, 전날 목요일은 심한 채찍으로 맞았다. 대제국 로마에 반역했다는 혐의가 이유이다. 그 고통 수준은 상상 이상이다. 학자에 의해 당시 로마의 형벌 중 쇠갈고리 채찍에 살이 뜯겨나가는 고통을 겪었다고 고증되기도 했다(<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영화에 잘 나타난다)  비교할 수 없이 미미한 나의 고통만으로도  이리 무거운데, 예수는 얼마나 무거웠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시간이 혼자 흘러가지 않았다. 나의 사유를 끌어당기며 일으켜 세웠다. 조금씩 마음이 고쳐졌다. 내일이면 규정되고 여러 처방으로 치료될 가벼운 병증에 혼자 호들갑을 떠는 내 모습이 거울에 비치고 부끄러워졌다. 이 정도 고통이라도 겪어 타자를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 달라 보였다. 두려움과 아픔이 감사할 내용으로  재해석되었다. 예수가 걸어간 수난으로 "내가 다 겪었고 다 안다"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거실 가득 파동이 없는 투명한 소리로 가득 찼다. 마음의 무릎을 꿇고 기도가 절로 나왔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인공호흡기에 의탁한 갓난쟁이의 고통이 예수의 대신 짐을 지심으로 줄어들길, 건강이 더해지기를 빌고 또 빌었다.


내 어깨 하나에 울다가 예수의 골고다 언덕을 떠올리고, 가녀린 몸에 고통을 안고 있는 아기를 생각하는 아침, 미명이 밝아왔다. 내 어깨 치료보다 더 시급한 아기의 치료와, 뭍 병상에서 고통을 통과하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기도를 보낸다.




*신기하게도 팔을 전혀 못쓰는데 팔을 책상 위에 걸쳐 올려두고 키보드를 두드릴 때 통증이 약해서 이 글을 쓸 수 있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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