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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l 22. 2019

느리고 헤매도 찌질하지 않은

상대적 시간

오랜만에 지인과 토요일 저녁 약속을 잡았다. 추억의 음식 먹으며 못다 한 이야기를 할 계획이었다. 철저한 홀가분 계획과 달리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다. 미혼의 친구에게 객이 많아진 상황이었다. 아이들의 관심사와 우리의 관심사가 범벅이 되어 이야기는 맥락을 잃었다. 게다가 음식은 몇 년 전 어려운 상황속을 시원케 해주던 맛이 아니었다. 소울푸드의 목록에서 하나 지우고 식당을 나섰다.


산책하려던 계획을 카페행으로 변경했다. 숙한 동네라 자신 있게 길을 인도하던 친구는 생각보다 먼 가게 위치 때문에 되려 미안해했다. 차로 다닐 때 가깝던 거리로 착각했다. 한참 걸었고 아이들 동선이 꼬여 이야기를 못했다.


한참 후(한참으로 느꼈지만 실제 멀지 않은 거리) 커피숍에 도착했다. 음료만 들고 나오려다 두런두런 이야기가 길어졌다. 시간이 많이 지나 다시 돌아올 길을 예상했다. 주말의 흥이 콧노래로 나오는 아이들을 조금 떨어져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가며 걸었다. 반 정도 왔겠지 하고 고개를 드니 벌써 몇 보폭 앞이 주차해 놓은 차가 있었다. 상대성 이론이 이상하게 적용되었다. 목적지를 모르고 걸을 때와 목적지를 알고 걸을 때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원리.


"우리가 갔던 길 맞지? 무작정 걸을 때와 달리 오는 길은 금방이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누구나 인생의 목적지를 알 수 없다. 어디쯤인지 몰라 시간을 예측하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 그런데 삶은 이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목적지와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 다반사, 목적지를 안다고 했는데 잘못 설정한 목표일 때도 많다. 사람들은 이렇게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을 두려워한다.


어쩌면 우리는 목적지를 잘못 정하거나, 목적지를 몰라 헤매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느끼는 것 아닐까. 뒤로 돌아보면 외길이거나 단순했는데 헤매며 따라 걸을 때는 왜 그렇게 모든 것이 느리고 복잡하다 느겼던지.


누구나 목적지를 알길 원한다. 목적지까지 쉼 없이 달려 차질 없는 계획 실현을 바란다. 헤매지 않길 원하고 직진이 효율적이라고 평가한다. 카페에 도착하려는 목표만 아니었다면 지인과 대화에 집중했겠지. 가는 길 보이는 들풀을 보았겠지, 아이에게 강아지 풀 하나 뽑아 간지럽혔겠지. 모르는 길이라 그랬던 것이다. 예측불가의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한 마음. 내 마음이 그랬다.


알고 보니 멀지도 않는 길,
도착하면 뻔한 것들을 위해 아등바등거리느라
풍경을 눈에 담지 못한다면 그게 어리석은 것 아닐까.
우리는 무엇을 위해 효율성을 따지며
누구를 위해 목적을 이루어야 하는 것일까?


길을 모를 땐 길만 쳐다보면 안 된다. 길 옆에 뒤에 존재하는 풍경 전체를 바라봐야 한다. 그러면 내가 어디쯤 인지 알고 불안을 넘어설 수 있다. 어디쯤 인지 가늠할 수 없다 해도  헤매는 것을 조금 즐기는 것도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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