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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ug 10. 2019

언니네 휴가#2

아직 목요일이어라.

나에게 3일이라는 휴가기간이 남아있다. 일주일이라고 말할 때의 설렘이 반만 감하는 게 수치로 정상이다. 그런데 6일중 3일이 지나니 반에 반까지 흥이 감소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리 부정적인 사람이 아닌데. 남은 3일을 또 어떻게 느릿하고 일상적인 것들로 즐길까 머리를 굴렸다. 나의 무계획 휴가는 매 순간 흥미진진하다.


부산행은 진즉 포기하고 친정행을 선택했다. 순 나의 추억 소환을 위한 행로다. 유년에 떠난 그곳이 궁금했다. 부모님은 학교를 입학하기 전 전답을 다 팔고 도시로 터전을 옮기셨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한다지만 부모님이 그리 교육에 불타오르신 기억은 없다. 나중에 듣기로 아버지는 잦은 태풍으로 망한 농사에 한탄을 몇번 하셨다고 한다. 자녀들이 땅을 일구어 먹고사는 게 싫으셨던 모양이다.


두 분이 도시로 올라와 밥벌이 일을 그만두시자 빈 둥지 증상을 심하게 앓으셨다. 자식이 떠난 빈 둥지 증후군이 아니라 일에 매진하던 사람이 더 이상 할 일이 없어 겪는 황망함이었다. 두 분은 뭘 해도 재미가 없고 무료해하셨고 그것은 커져서 사는 이유에 까지 다달았다. 존재 이유를 못 찾으니 하루하루가 연명하는 것으로 해석하시던 부모님은 결국 귀촌을 결정하셨다. 결코 귀농이 아닌 이유는 두 분이 비슷한 시기에 디스크 수술과 목디스크 수술을 나란히 하신 것 때문이다. 절대로 일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 앞에 3남매는 고를 끄덕였다. 고향 동네에는 친인척과 지인들이 많이 계셨다. 그런 곳이 아니라면 귀촌은 권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친정에 간다고 연락을 한 후 물가에서 놀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다슬기나 재첩을 잡을 수 있다는 설렘에 수요일 밤을 설쳤다. 목요일 아침 일찍 길을 나섰고 휴가 초기라 다소 교통체증이 있었다. 아침에 문자로 출발해요~라고 말했더니 출발도 안 했는데 도착했냐는 전화를 받았다. 이제 출발이라니까 아버지는 역정을 내신다. "새벽에 일어나서 움직여야지 지금 해가 중천에 떴는데" 아버지의 역정이 다정하게 들렸다. 많이 보고 싶은가 보다 하면서 서둘렀다. 초록 초록한 산세를 감상하다 곧 정신을 차렸다. 마을 근처였다. 부모님을 모시고 근처 냉면 맛집을 찾았다. 코다리냉면이라는 것을 먹고 가장 싫어하던 냉면이 최애 음식으로 바뀌었다. 휴가라서 맛난 건지 맛집이라 그런지, 내가 맛본 일반 냉면은 음식이 아니었다.


친정집 마당에 돌아오자 엄마는 따놓은 복숭아 무른 부분을 도려내며 할 일이 많다고 말씀하셨다. 물가에 가기로 했잖냐며 얼른 가자고 재촉하는데도 따놓은 고추 포대를 두 개나 풀어헤치셨다. 눈치가 있다면 옆에 앉아 고추를 닦고 선별하던지 복숭아를 도려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어릴 때 잡아본 다슬기를 다시 잡고야 말리란 목표의식과 내 딸에게 엄마가 자란 냇가에서 다슬기를 잡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부모님께 효도는 나중에 하고 지금은 나중심! "나는 또랑에 꼭 갈 건데"


남편도 꼼짝 하지 않고 큰아이도 티브이 앞에 붙어버렸다. 작은아이는 또랑(작은 실개천)에서 물놀이를 해 본 적이 없어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었다. 나의 계획이 틀어지기 직전, 한 시간만 하고 오자는 기지를 발휘했다. 부모님은 밝아진 얼굴로 모자를 쓰고 다슬기 채집통을 꺼내셨다.


또랑은 가까웠고 생각보다 물이 더 많았다. 강의 폭은 줄어들어 어릴 때 기억하는 건너길까지 먼 그런 강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또랑 정도였다. 물은 적당히 시원했고 정오를 지나 공기는 뜨거웠다. 물속에 몸을 푹 담그니 세상 신선이 따로 없었다. 농사일이 바쁘니(분명 귀촌이라 했지만, 자두밭도 사시고 안 쓰는 밭을 이리저리 얻어 결국 귀농하신 거에 가까웠다.) 더워도 냇가에 몸을 담글 여유가 없었는지 무척 시원해하셨다. 올해 여름 들어서서 처음 오신 얼굴로 채집통을 쳐다보았다. 다슬기가 많은 곳이라던데 재첩과 피조개가 더 많았다.

빌려온 무료 이미지:사진찍을 생각도 못했어요


모래바닥을 손으로 쓰윽 긁으면 맨눈으로도 물아래 있는 재첩이 보인다. 내가 사 먹던 재첩국의 재첩과 차원이 다른 사이즈였다. 널려있어도 주워갈 사람이 없어 살이 많이 찐 거 아닐까. 다슬기가 적은 까닭을 물으니 타지 사람들이 새벽에 와서 많이 주워간다는 말씀에 지천에 깔린 보약 재료를 정작 동네 사람들은 챙길 수 없는 하루하루가 더 고달프게 다가왔다.


부모님은 신나셨다. 한 시간만 줍다 가자는 약속에 시간을 의식하며 재첩을 끌어모으니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다. 고개 숙이고 잠시인가 했더니 한 시간이 지났다. 정말 아쉬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슬기 줍기 일정을 늦춘 이유는 저녁까지 먹고 아이들을 3박 4일 있도록 할  셈이었다. 원고를 쓰려던 느슨한 계획이 있고 혼자 있어보려는 욕심에서였다.


아이들은 3박 4일 있겠다고 큰소리를 쳤고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남편과 돌아왔다. 아들이 없는 거실이 생경했다. 아이들이 커서 독립하면 이런 기분일 것인지 이야기 나누며 영화를 봤다. 팝콘과 콜라가 없었지만 영화관보다 몇 배 더 영화가 재미있었다. 가상현실에 대한 영화인데 무척 다양한 재미를 주어 흥이 났다.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본 하루였다. 오늘은 다소 느슨하지 않게 움직였다. 아이들을 위한다 하고 나의 추억을 소환했다. 작은 아이는 생애 첫 또랑 체험에 급 흥분을 해서 내가 없는 내일 외할머니랑 다시 가겠다고 자랑을 했다.


아이들의 요구에 맞춰 일정을 짜던 여행은 참 좋다. 내가 싫어하던 것이 좋아졌고 추억이 소환되었으며 아이에게 엄마 어린 시절 추억의 장소에서 재첩 잡기를 경험시켰으니 뿌듯했다. 내가 즐거워 흥분하니 아이들도 덩달아 기뻐했다. 많은 부모는 아이들을 위한 체험중심의 휴가를  짠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 데리고 다닌다. 나도 십여 년 이상 그렇게 아이들을 수발하는 휴가를 보냈다.


나의 무계획 묻지 마 휴가는 가족의 각 사람의 원하는 바를 존중하자는 것이었고(말이 거창하지 서로 간섭하지 않기였다.) 오늘은 내가 하고 싶은 것에 가족과 부모님마저 맞춰준 날이다.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는가? 왜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을 이기적이라고만 지레 생각했을까.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선택을 양보해야 할까. 아이들이 좋아해 줘서 고맙지만 안 좋았던들 어떡하리, 따라오는 수밖에.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양보한다고 아이들이 다 기억하진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의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


때론 부모 중심, 엄마 중심의 휴가를 즐겨야 한다. 아이들도 부모가 하고 싶고 먹고 싶고 놀고 싶은 방식이 있음을 일찍부터 알도록 하는 것이 뭐 어떤가.


* (언니네 휴가는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의 휴가 방식을 반대하지 않아요. 애들이 자라면 이런 휴가도 보낼 수 있다는 일례를 말해보는 거죠. 가 워터파크, 물놀이장, 과학관에 좀 질렸나 봐요. 이해하시죠?)


--이전 이야기 궁금하시니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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