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책방 i] 동네책방 추억의 레시피 프로젝트에 작가로 참여한 후 스토리와 시로 재구성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림도 제가......너무초간단 그림이지만
<감자옹심이 수제비>
유난히 큰 키에 슬림한 그녀는 짧은 머리에 시크한 표정이었다. 큰 눈에 시원시원한 말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녀가 찾아낸 추억은 유년시절은 아니었다. 추억의 음식이 굳이 엄마와의 기억으로 엮이지 않아도 된다는 창의적 시각이었다. 당당하게 꺼낸 그녀의 20대의 추억은 깔끔하고 담백했다.
정말 신입생 티를 막 벗었을 때였어요. 남사친에 준하는 가까운 친구가 군대를 갔었죠. 그 친구에게 면회를 간다고 나섰어요. 먼길이라 첫 휴가 나온 친구와 함께 친구 집으로 향했어요. 친구 어머니가 음식 솜씨가 좋다고 그러더라고요. 친구를 만나고 친구 어머니도 뵀어요.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려는데 어머니가 감자 옹심이 수제비를 끓여 주셨어요.
어머니가 아들만 쳐다보고 싶으신 그 마음도 모르고 저희들은 웃고 떠들고 놀았나 봐요. 친구는 자신의 어머니랑 이야기도 많이 못 나눴어요. 그러고 헤어지려는데 어머니가 제 손에 손수 만드신 감자옹심이를 쥐어 주셨어요. 어찌나 정성스레 포장을 해주셨는지 감사하더라고요. 내려오는 길에 어머니가 얼마나 아들과 이야기하고 싶으셨을까 싶어 죄송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친구가 생각이 난다거나 친구의 어머니가 아주 존경스러워서 추억을 꺼낸 것이 아니에요. 그분들에 대한 기억은 너무 희미한데 그때 먹은 옹심이의 맛은 아직도 혀끝에 맴도는 게 신기하더라고요. 감자옹심이를 생애 처음 먹어본 저는 충겨을 많이 받았어요. 좋은 충격이죠.
감자 옹심이가 들어간 수제비 먹어봤어요? 못 봤죠? 저는 감자 전분으로 만들었다는 옹심이가 그렇게 쫄깃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제가 아는 옹심이란 찹쌀로 만든 게 전부였으니까요. 입안에 가득 채워 깨물면 쫀득하며 갈라지는 식감이 상상 이상이었어요. 마치 천국 길을 걷는 기분이었다니까요.
음식이라고는 1도 못하는데 선선하고 마음이 헛헛할 때 마트에 가서 감자를 사서 옹심이를 만들겠다고 낑낑거렸다니까요. 20대 초반 여학생이 혼자 자취하는 원룸 구석에 웅크려 강판에 간 감자를 갈았어요. 꼭 짜면 나오는 물을 앉혀둬요. 시간이 흐르면 물층과 전분층이 나뉘면 그때 물을 따라내요. 걸쭉한 전분을 뭉치고 뭉치면 옹심이가 만들어져요. 똥 손인 제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요. 아무리 맛없는 국물에라도 옹심이만 넣으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맛을 냈답니다.
요리 꽝손 제가 지금도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음식 1이 감자옹심이 수제비랍니다. 없는 요리 솜씨에 한번 해준다니까 남편이 손사래 치는데 먹고는 할 말을 잃었다니까요. 저의 요리 자발성을 불러일으키는 유일한 음식, 감자옹심이 수제비랍니다. 아, 지금도 그때 입안에서 쫀닥하게 씹히던 질감이 기억이 납니다. 저의 20대의 우울을 극복하게 해 주던 비타민 같은 추억이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