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탕엔 곰이 있어요.
우리 동네 INTERVIEW #6
*이 글은 [책방 i] 동네책방 추억의 레시피 프로젝트에 작가로 참여한 후 스토리와 시로 재구성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림도 제가......
<곰탕>
인터뷰 수다파티에 참석하신 분 중 유일한 남성이 계셨다. 풍채가 좋은 남성분은 곰처럼 후덕하셨다. 유난히 반짝이는 눈으로 수줍게 옛날이야기를 꺼내셨다.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둥글둥글한 성격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청일점으로 꿋꿋이 여자 감성을 압도하는 중저음의 목소리와 가볍지 않은 어린 시절의 기억이 공간을 묵직하게 채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병원에 장기입원 치료를 했어요. 원래 음식을 가리지 않아요. 한가지 음식을 한 달 동안 먹어도 질리지 않는 곰같은 성격입니다. 제가 둔했던 건가요?
어머니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는 동안 제일 문제는 식사였어요. 남은 가족들의 식사도 문제였고 병원밥을 힘들어하시던 어머니도 문제였어요. 아버지는 평생 누워서 떠다 드리는 물을 잡수시던 분이셨는데 어머니의 입원과 함께 변하셨어요. 어머니 사고 전에는 부엌은 남자가 드나드는 곳이 아닌 것처럼 가부장적이셨죠. 그랬던 아버지가 부엌일을 하시기 시작하신 거예요. 너무 충격적이었답니다. 그리 살뜰한 성격이 아니셨던 아버지가 어머니 병간호도 다 하셨어요. 그런 아버지의 변화기 저는 싫지 않았었더랬죠.
누구에게 맡길 수 없는 주방일에 대장이 되신 아버지는 아침이면 사골을 넣고 곰탕을 끓여주셨어요. 학교를 다녀와 저녁이면 아버지가 퇴근하셔서 그걸 다시 데워주셨어요. 병원밥에 질려 힘들어하시는 어머니에게 곰탕국물을 유리병에 넣어 병원에 배달하는 것도 아버지와 저의 몫이었죠.
이제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 보니 아내 간병에 줄줄이 딸린 자식들에 얼마나 무거우셨을까요. 아버지가 하실 수 있는 유일하며 쉬웠던 것이 곰탕이었겠죠. 그리고 점차 아버지의 요리실력이 좋아지셔서 카레도 해주시곤 했죠.
저는 어릴 때부터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생각해왔어요. 가만히 돌아보니 같은 음식을 오래 먹어도 질리면 안 되는 어쩔 수 없는 환경에서 자란 탓이기도 하겠네요. 부드러운 마음, 곰같이 후덕한 풍채는 아마 곰탕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에게 곰탕은 어머니의 부재이면서 아버지의 변화를 상징하는 음식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한 달 동안 먹으래도 질리지 않는 저의 최애 음식이랍니다. 취향을 고집할 수 없었던 유년시절이 지금은 감사한 게 더 많은 걸 보니 저도 어른인가 봅니다.
<장*훈님의 이야기를 재구성>
어머니는 병원에서 언제 오시나 문밖을 보다가 한 숟갈 떠먹으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국물, 눈물
대신 손수 뼈를 고아 주신
말없던 아버지의 투박한 손
--------(신애-그의 추억을 시로 재구성)
*동네책방[책방 i] 프로젝트:추억의 음식 인터뷰 후 시를 써주는 작가로 참석했어요.
*현재 [꿈꾸는 글 공방] 대표
*공저시집 출간
*등단 시인
*에세이 출간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