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예쁘기만 하다고?

초보시인의 생활에세이

by 최신애

도로 전면을 향해 투명해진 창 너머 빼곡한 빌라촌 풍광이 펼쳐지고, 실내는 뜨순 히터 바람이 살살 머리털을 날린다. 오전부터 손님이 없어 음악으로 채워진 흥겨운 실내에 오래 앉아있었다. 주인장의 취향대로 복고스러운 노래가 흘러나오면 책을 읽던 눈은 잠시 멍해진다. 사춘기 때 듣던 노래를 만나면 신기하게도 그때 느끼던 감정이나 들뜬마음이 떠올랐다. 과거는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기억으로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그 시절 맡은 냄새, 추위, 하늘빛, 맛, 소리가 웅크리고 있다가 현재 비슷한 배경을 만나면 갑자기 기지개를 켠다. 과거로 돌아가 그 사건을 지켜보는데 1초도 걸리지 않는다.


그렇게 오전 시간이 의식하기도 전에 지나가버렸다. 자리를 일어서려고 가방을 정리하는데 노래 하나가 흘러나왔다. 첫 소절부터 뒤통수를 무엇에 맞은 듯했다. 자리에 얼음처럼 붙어있었다. 1절 모든 가사가 통틀어 예뻐 뿐이다. 그리고 2절로 돌아가니 또 예뻐라는 가사만 계속 나온다. 중간에 우후~가 간혹 나올 뿐이다. 경쾌하고 훈훈한 리듬과 음률에 여러 사람들의 웃고 즐기는 소리가 배경으로 깔린다. 그리고 메인 가수는 계속 예뻐를 난발한다. 마음이 따듯해졌다. 이 노래가 가진 힘이 무엇일까?


노래 저변에 깔린 자신감에 묘한 전투력이 올라와 찾아보았더니 글쎄 제목마저 예뻐란다. 어이상실이다. 어떤 작사가가 예뻐라는 낱말 하나로 4분 8초나 되는 곡을 채울 수 있을까? 작곡가는 누구길래 이런 단순한 가사가 지루할 틈 없이 4분 동안 귀를 기울이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았다. 요즘 노래 가사가 귀에 잘 익지 않는데 비해 이 노래는 귀에 아주 쏙쏙 들어온다. 너무 쉽기 때문이다. 사실, 언제까지 예뻐만 반복하는지 들어나 보자는 심정이었다. "네가 누군데 예뻐만 할 수 있나 보자"라고 비판하고 싶었다. 나는 완패했다. 끝까지 예뻐로 나를 한대 친 것이다.


작사가나 작곡가의 협업 과정을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뻐~라고 가사를 채운 이나, 반복과 지루함에 가락과 음을 옷 입혀 곡을 만든 자, 그리고 누군가를 생각하며 감정선을 잡아 예뻐라고 연발하는 가수 모두 대상을 그리며 작업했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인들이 예쁘다는 말을 좋아한다는 상업적 논리로 생산한 작품이라면 가슴이 너무 퍽퍽해진다. 그냥 그들이 누군가를 생각하며 예뻐라는 말로 충분하다고, 그 이상의 단어는 불필요하다며 작업하지 않았을까? 그냥 그럴 것이라고 추측하고 이 곡을 내 마음속에 저장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신비에 묻어두고 싶은 곡이다.


수업 중 아이들이 말하는 엄마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않다. 괴물, 악마, 마귀, 귀신, 드라큘라, 교장선생님, 호랑이, 사자, 홍콩 할머니 등 셀 수 없이 많다. 요즘 *비 아파트라는 에니 덕에 엄마들의 별명이 별의별 귀신 이름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예뻐만 하루 종일 반복하고 보듬어 줘도 부족한 아이에게 미워, 나가, 보기 싫어, 귀찮아 라며 소리치고 싶은 상황을 만난다. 부모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내적 소리지 않는가? 사실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면 소리치기를 넘어 고성방가로 힘든 심경을 드러내는 부모가 많다(강 건너 불구경할 입장이 아니다.)


아이가 크면 미운 말고 미운 행동을 부모의 통제 이상으로 한다. 부모를 골탕 먹이려는 목표로 하는 행동은 아닐 것이다. 다만 부모의 학업에 대한 과한 요구, 다둥이 집인 경우 편애의 문제, 외동인 경우 외로움이나 부모의 애틋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반작용 때문일 수 있다. 아이는 일정 시기 전까지는 부모의 사랑과 신뢰를 확신하고 싶어 한다.


부모가 고달픈 삶에 무기력해지거나, 부부 사이가 거칠어지거나, 피곤에 절어 날 선 말을 쏟아낼 수 있다. 어릴 때는 꽃으로도 때리지 않으려 얼마나 결심했던가. 그런데 자랐고 자기 의사를 따박따박 이야기하는 아이들 앞에 부모는 무장해제한다. 아니, 체력 고갈이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자녀교육이라는 목표를 지탱하지 못할 만큼 커진다. 삶도 무거워지는데 아이들도 무겁다고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이들 앞에 정신줄을 놓게 될 때가 많다. 아이들도 식견이 생겨 부정적 노출에 성자처럼 영향받지 않고 사랑으로 무럭무럭 자라기만 하지 않는다.


아이가 어리면 그 인간관계의 메커니즘, 혹은 미묘한 인간의 정서에 무지하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하고 돌아앉아 레고 블록을 만지면서 놀 수 있다. 학령기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엄마의 하루 종일 닳은 마음을 잘 안다. 부모가 지친 것도 알지만, 자신도 배터리가 다 나갈 지경이라 부모에게 양보하지 않는다. 엄마 아빠는 왜 그렇게 하면서 자기만 하지 말라고 하느냐며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지지 않으려는 마음은 한편으로 자아가 강해지고, 자기의 인식이 자라는 좋은 현상이지만 마주 대할 때는 거침없어 힘들다. 양쪽의 각자의 주장이 팽팽해질수록 희생과 섬김과 사랑과 양보가 가득하던 가정은 팍팍해져 간다. 아이가 자라면 더 힘들어진다는 육아 선배들의 말을 실감하게 된다.


매일 예쁘기만 한 아이, 매일 예쁜 마음으로 엄마 신발부터 손에 들고 있는 아이가 미운 말, 미운 눈, 미운 숨소리를 내며 씩씩댄다. 그럴 때 얼른, 오늘 뭐에 속상하냐고 물으면 된다. 엄마의 말과 행동에 섭섭해진 것은 없냐고 한 번이라도 물어보고 다음 단계로 진행해도 늦지 않다. 피곤해서 아이말을 물어볼 새 없이, 가면 갈수록 한심해진다고 윽박지르면 상황이 더 거세진다. 누구도 잡아줄 수 없는 고장 난 브레이크가 가정에 하나씩 생겨난다. 거칠어지는 상황에도 아이는 부모의 사랑과 신뢰를 확신하고 싶어 한다. 거칠수록 마음은 반대를 외치고 있을지 모른다.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고 확인하고 싶다. 미운 말 미운 행동을 해도 받아주는지 알고 싶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예뻐]라는 곡을 거실에 틀어놓을까 생각해 보았다.
단순한 한마디, 예뻐라는 말을 아끼지 않고 거침없이 난발하는 것을
싫어할 아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저 질릴 수 있지만, 싫지는 않는 것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말이든 노래든, 눈빛이라도


지인의 7세 아이가 놀러와서 그린 그림이다. 너무 예쁜 아이다

*아이의 도발과 부모의 무기력에 대한 여러 가지 메커니즘은 전문서적을 참고하세요. 이 글은 에세이라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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