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시인생활에세이-아이의 말말말
"이모, 나는 왜 나를 볼 수 없어?'
제법 진지한 아이의 질문에 싱겁게 대답했다.
"이모도 이모가 안보여, 다 컸는데도 내가 안보이니 어쩌냐? 나는 이제 어떡하냐?"
눈은 두 개, 120도 둔각을 넘지 못하는 인간의 가시범위로 자신의 형체를 볼 수없다는 과학적 설명을 요구하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어린 아이에게 걸맞지 않을 설명을 뒤로하고 유머로 받아쳤다. 아이의 눈은 더 동그래졌다.
어른도 자신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을 볼 수 없는 상태에 대해 불만족해 하는 것에 놀란 눈치다.
과학적 원리보다 더 깊은 함의를 혼자 들춰본다.
청소년기 혹은 대학생 시기까지 사람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한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나는 누구인가'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고 답한다. 반항적이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잘 모르는 게 사실이다. 그들은 매일 겪는 사건, 만나는 관계, 배우는 내용을 통해 나름 체계적인 세계관을 세워간다. 이렇게 수 년이 지나면서 나름의 논리적 세계관을 기준으로 세상을 관찰하여 비판하거나 찬사를 보낸다. 이런 수순을 밟은 대부분의 성인들은 자신의 세계관을 통해 생각과 행동을 일관성있게 한다.
성인이 된다고 누구나 탄탄한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얄팍할 지라도 ~은 선하고 옳다거나 인간은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신념을 가지게 된다. 성인인데 이런 세계관이 없는 것같다며 좌절하지 말자. 그것은 자기 비하일 뿐이다. 누구나 미세한 기준이라도 세우고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신체적 성장이 그치고 배나 되는 시간을 더 살아본 성인들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일까?우리 주변에 복잡한 세상사에 미묘한 감정으로 혼란을 겪는 사람이 많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과 잘 맞고 맞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떤 결정이 합리적인지 모르겠다. 모르겠다 투성이로 사는 어른이가 얼마나 많은가.
왜 복잡하며 혼란스러울까?
그 원인을 탐욕이라고 가정해보자. 가정은 가정일 뿐이다.
그들은 선택의 기회 앞에서 자신의 신념에 맞게 결정하면 된다. 그런데 오랜 고민으로 불면증을 호소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선택에 실수가 없기를 바라는 완벽주의에서 기인한다. (자신의 신념이 약하거나 확신이 없거나 정서적 어려움, 심각한 환경적 요인은 다음 기회로 넘길 작정이다. 풀어낼 실력이나 필력도 없다. 이 글을 전문적 내용을 에세이를 가장해 쓰고있다. 배가 산으로 가는 건 아닌지......에세이는 처음 의도와 다르게 달리기도 하니까, 쩝! )
완벽주의는 선택의 주체인 자신이 완벽한 결정을 지혜롭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한다. 그들은 모든 조건에 실수가 없거나,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실망을 끼치지 않으려는 완벽성을 추구한다. 최대한 손해보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도사리고 있다. 불가능을 껴안고 가능할 것이라 맹목적으로 긍정하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에 완벽한 결정이란 없다. 모든 상황은 관점에 따라 희비가 갈라진다. 선과 악에 대한 평가가 상대적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선이 다른 이에게는 악이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한다. 모든 이를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것은 자만이다. 사람들은 욕구와 가치관이 다르다. 배려심에 손해보면서 선한 선택을 해주어도, 유익을 얻을 상대가 불편해 하는 반응에 당황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모든 조건을 만족시킴으로 얻는 결과는 무엇일까? 바로 비난이 아닌 자신에 대한 좋은 평가이다.혹은 뛰어난 분석력에 대한 감탄과 부러움의 시선이다. 완벽을 추구하다 복잡해지고 자신의 중심이 가려질 때 탐욕을 들춰봐야 한다. 자신을 드러내고 빛나게 하려는 탐욕으로 일을 그르치고 선택앞에 복잡해진다. 혼돈이 거세게 밀려온다. 높은 파고에 좌초되고 미아가 되기 쉽다.
복잡하고 자신의 원하는 바를 도통 알수 없다는 사람의 문제는 자기보호라는 방향성 때문이다 타인을 위하고 실수를 줄이려 하지만 결국 비난을 피하고 인정을 받으려는 자기중심적 의도에 휩싸여 복잡해진다. 복잡하면 자신을 보지 못한다.
나에 대한 저평가를 좋아할 사람이 없다. 그렇지만 타인과 공동체를 위한답시고 자기보호를 가장하면 자기를 볼 수 없다. 안개에 둘러쌓여 가시거리가 1미터도 안되는 상태에 이른다.
사람좋고 배려가 심하며 착해빠졌거나 모든 일에 완벽하다는 유형들의 내면은 사실 많이 어둡다. 복잡해서 고여있다가 썩게된다. 자신도 그런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못한다.
실수의 선택을 할 수 있다. 모두 중 여러 명이 실망할 수 있다. 손해를 볼 수 있다. 단 한 번에 성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내려놓기 시작하면 가벼워진다. 안개가 걷힌다. 거울로 얼굴을 볼 수 있게 된다.
어른이라도 자신을 볼 수 없어 답답할 때 위에서 언급한 탐욕을 들춰보고 내려놓으면 그제야 자기가 보인다. 가시범위가 갑자기 넓어진다.
나를 뚜렷이 알고 보는 사람이 진정성있게 타인을 위할 수 있다. 이제, 그는 평가와 인정을 의식하여 복잡해지지 않는다. 그래서 선명한 시력으로 사건의 핵심을 찾고 가감없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