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시인의 독후에세이
누구에게나 아찔한 순간이 있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다시 찾는 일이다.
10월 19일 금요일 오후 2시 48분, 지하철 역무실 문을 급하게 열었다. 벨이 울리는 휴대폰을 역무원 손에서 가로채듯 빼앗아 대답했다. "응, 엄마야. 괜찮아! 아무 일 없어" 나는 가쁜 숨을 쉬었다. 지하철역 한 코스를 가다가 역방향으로 급히 돌아와 전화기를 찾았다. 잃어버림과 찾아냄의 초광속 만남의 사건.
10월 19일 금요일 새벽 5시 40분. 남편은 먼저 출발했다. 서울에 세미나가 있었다. 나는 학교 수업 때문에 오후에 올라가기로 했다. 학교에서 학부모 공개수업을 진행하느라 일정을 맞출 수 없었다. 10분 일찍 수업을 마치고 여유가 생겼다. 동대구역까지 이동거리 포함 40분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지하철 근처에 주차를 하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시간이 많아 굳이 택시를 타지 않았다. 앞에 열차가 방금 지나가 몇 분 지체가 된 틈에 입술 아래 생긴 수포에 약을 바르기 위해 늘 손에 쥐던 나의 분신, 휴대폰을 가방 옆에 잠시 두었다. 왜 사건은 예감할 때 일어날까. 휴대폰을 두고 가면 난감하겠네~라며 1분 후 일어날 일을 예측하지 못하고 엷은 미소를 띠었다. 휴대폰 케이스에는 현금, 예매기차표, 카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사소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후에 처절한 결과를 얻었다. 정약용은 1801년 천주 교난으로 유배를 당했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인물. 수원화성을 거중기로 축조하며 승승장구하던 그였다. 새로운 문물, 개방적이고 실용적 학문을 추구하던 젊은 정약용은 천주교 입교라는 선택을 했다. 이 선택은 정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정적들의 뭇매를 맞았다. 임금의 오른팔, 실력파 나라 일꾼이 한순간 대역 죄인이 되었다. 서학에 대한 정적들의 예의주시를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그는 순간의 선택으로 많은 것을 잃게 되었다.
그는 큰 것을 잃었다. 중앙 정계는 물론 지방 관하에 발을 들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실용적 학문의 추구를 통한 나라 사랑이 가려졌다. 속 깊이 들어가 보면 높은 관직, 부귀와 권력의 길 또한 잃고만 것이다. 그의 가문은 권문세가 근처도 못 갈 폐족으로 전락했다. 개인의 선택이 가문의 명예까지 더럽히기에 이르렀다. 의도하지 않던 행동이 불씨가 되어 모든 것을 잃고야 만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통해 몰락한 자의 다양한 심정을 드러낸다. 폐족이 되었지만, 품위를 잃지 말라는 당부에서 그의 번민을 볼 수 있다. 유배라는 불가항력 앞에 답답함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해 본다.
그는 중요한 것을 잃었다. 정치세계와 단절, 가문의 몰락보다 더 중요한 것을 잃었다. 나라를 새롭게 하기위해 구축하던 사상과 학문을 마음껏 펼칠 수 없었다. 후학을 양성하기도 어려웠다. 공부할 여건이 녹녹치 않았고 서적을 편찬하기 수월치 않았다. 아들들에게 서적 편찬을 위한 지적이나 지시가 곳곳에 쓰였다. 환경적 한계로 인해 중요한 것을 잃게 되었다. 그것이 그를 한숨 쉬게 했고 책에 더 매달리게 했다. 그렇게 잃어버려 어려운 현실에서 500여권 도서편찬을 했다는 것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가 유배를 당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미쳤을까 예상이 된다.
그는 찾기를 갈구했다. 고난의 얼굴 이면에 영광이 있다. 그는 사소한 선택으로 크고 중요한 것들을 잃었다. 잃어버림으로 단절된 삶, 학문의 꽃을 피울 수 없는 한계, 가난과 외로움의 바닥을 경험했다. 이 책에서 그는 말한다. "마음에 항상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진 뒤에야 참다운 독서를 하는 군자가 된다". 그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좌절하지 않는다. 야망이 걸러진 학문의 본질을 하려했다. 낙심하고 무기력해질 법한 그는 아들들에게도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벼슬하는 집안의 사람이 자신을 다스리고 공부에 전념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렇게 해도 중간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폐족의 자제인 너희는 과거 공부를 못하니 오히려 학문에 매진할 수 있다. 그래서 진정한 독서를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본질에 더 가까워졌다. 나라를 위하되 자신의 지위를 위한 목적을 배제한 공부의 길을 걸어갔다. 그것은 군자의 모습이다. 유배지의 죄인이 도인처럼 말하고 있다. 고난을 통해 영광을 맛본 자의 수준은 이처럼 헤아리기 어렵다.
그는 찾으라고 엄히 말한다. 아들들이 자신이 깨달은 길로 걸어가길 간절히 바란다. 그는 유능했다. 명석한 혜안으로 임금의 근심을 덜어주던 자였다. 나라를 올바른 길로 가게 하려던 그는 그 길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찾아냈다. 20년이 걸리는 길이었다.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중요한 길이다. 그래서 혼자 가지 않았다. 아들들을 데리고 가려한다. 그들이 폐족이라는 불명예에 위축될까 염려하고 엄히 명한다. 그의 사랑은 가끔은 엄하고도 매몰차다. 차가운 이성으로 지적한다. 책을 읽고 요약하고 덧붙여 편찬하라고 지도한다. 세속에 더렵혀지지 않는 목적으로 학문하는 자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는 찾으라고 잔소리를 한다. 학문적 성과를 독촉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기본 도의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명예를 잃어 낙심해도 예의와 공동체를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큰집에 제사 지낼 때 과일을 좀 보내라는 말은 얼마나 생경하면서 또한 고매한지. 정약용의 잔소리는 그저 허투루 하는 잡소리가 아니라 인행의 나침반이었다. 아들들에게 실망하여 병이 나겠다는 말에 웃음이 났다. 내게 못마땅할 때 자주 하시던 친정아버지 말씀이 생각났다. 그는 비범하나 또한 평범한 인간이며 아비였구나.
10월 19일 금요일 오후 2시 35분. 작은 실수로 중요한 것을 잃었다. 휴대폰, 기차표, 현금, 그리고 여러 장의 카드, 전화기 속 수많은 정보와 가족의 얼굴을 잃었다. 한 코스는 2분, 역무원 실로 통화연결 30초. 전화기의 행방을 확인할 수 없던 그 짧은 시간 동안 아득하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서있을 수 없었다. 전화기 분실로 일어날 연쇄적 일이 눈에 그려졌다. 남편의 기다림, 5분에 한 번씩 전화하는 딸아이와 불통으로 터질 울음 등 필름처럼 그려졌다.. 거대한 상실감에 압도되는데 2분 30초로도 충분했다.
10월 19일 금요일 오후 2시 48분. 나는 다시 찾았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경위를 듣지 못했다. ‘전화기를 두고 가면 큰일나겟네' 라고 웃다가 폰을 두고 지하철을 타고 떠났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 후 2분 30초 안에 역무원이 나타났다는 말이다. 짧은 순간 잃었고, 더 큰 것을 잃을 것 같아 낙담했었다. 3분 안 되는 시간 가장 긴 기도를 했다. 불가항력은 신을 실존적으로 의지하게 만든다.
손바닥만 한 것을 찾을 때 이렇게 기쁜데, 다 잃은 후 더 중요한 것을 찾은 다산은 얼마나 숭고했을까 라고 연결 지으면 억지스러울까? 누구나 무엇인가 갈구하며 인생길을 걸어간다. 나도 같은 마음으로 갈구하며 살아가는데 때론 '왜 이렇게 밋밋한 시간, 갈구의 열정이 흐려지기 쉬운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다산의 아들들이 아버지에게 수많은 잔소리를 듣는 것처럼 이 책을 통해 묵직한 잔소리를 들어본다.
10월 19일 금요일 오후 3시 05분. 무사히 고속철도에 몸을 실었다. 찾은 자가 누리는 평안으로 심호습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