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____ 셋째의 처세술!

이런 발칙한!

by 최신애

지인이 계획하지 않은 셋째를 임신하자 밝히기를 꺼려했다. 한 명도 낳지 않으려는 요즘, 시대착오적이라는 비난을 받을까 염려했을 법하다. 그러다 낳은 셋째는 앞선 아이 둘보다 외모도 준수하고 성격도 더 밝았다. 쉬쉬하던 지인은 가정의 랜드마크로 그 아이를 자랑스러워했다. 아이의 엄마는 활동적인 성격이라 집에서 죔죔만 해주지 않았다. 지인들과 모임이 잦았고 아이는 항상 동참했다. 최연소 계모임의 멤버라 칭할만한 스케줄도 피곤한 기색 없이 함께했다. 위에 두 아이는 말귀를 알아듣는 나이다. 그런 언니 오빠 사이에 눈도 깜짝하지 않고 장난감을 쟁취하는 전투력을 가졌다. 돌이 지나 뽈뽈 걸어 다니면서 큰 아이들의 가위바위보 게임에 끼고, 팽이 돌리기 게임에서 쓰리, 투, 고우~샷 말을 못 해도 몸으로 표현하던 아이다. 말도 못 하면서 온갖 필요를 표현했고 배고플 일이 없었다. 울 일도 없었다. 고자질로 자신의 위기를 넘길 재간도 충분했다.


어른들은 무인도에 혼자 던져놔도 살아남겠다고 칭찬했다. 어느덧 아이는 3년을 꽉 채운 나이가 되었다. 엄마가 어린이집 교사로 출근하면서 저도 엄마를 따라 어린이집을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룰에 민첩하다. 줄도 잘 서며 차례를 기다리는데 안달 내지 않는다. 어떤 게임이든 형님들의 키에 2/3 정도인 자신의 작은 체구를 원망하지 않고 달려든다. 시쳇말로 보통이 아니다. 밉살스러웠다면 다들 손사래 치며 귀 기울이지 않겠지만, 사랑스럽기까지 한 장점도 있다. 그 아이는 지인들 사이에 워너비 셀럽 베이비가 되었다.


이를 예쁘게 생각한 이웃 새댁이 만날 때마다 사탕이며 초콜릿을 쥐어 주었다. 원래 새댁의 최애 아기는 다른 집 아이였다. 새댁인 이모의 최애가 자신으로 바뀌자 아이는 이모에게 찰거머리처럼 딱 붙었다. 셋째로 태어나 엄마의 지극한 정성을 덜 경험한 아이는 섬세한 새댁 이모의 친절에 감개무량해했다. 이모가 나타나면 다른 아이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갖은 애교를 부렸다. 그러던 어느 날, 새댁은 하는 짓이 예뻐서 "너는 눈도 이쁘고 코도 이쁘고 입도 이쁘네. 요렇게 이쁜 거 누구 닮아 이쁘니?"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이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이모"


새댁은 아이의 생존 스킬에 놀라 그 대답을 전해주었다. 꽉 채운 3년. 365일*3=1,095일, 이만 육천이백팔십 시간, 백오십칠만육천팔백 분, 9천4백6십만 8천 초를 연마해온 노련한 처세술에 입이 벌어졌다. 셋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해석은 편견일까?


여느 다자녀 가정의 셋째들의 공통점이 있을 것이다. 애지중지하는 양육을 경험하지 못해 방치로 키워진다. 모든 상황에 적응을 잘하고, 뻔치가 좋아 천연덕스럽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르신들에 경계가 없다. 큰아이들을 따라 하다 보니 어휘력도 좋고 지적 작용도 활발하다. 형님들이 혼날 때 자기가 해야 하는 행동을 알고 있으며, 형님들의 혼나는 포인트를 알아 혼나기 전에 잘 빠져나간다. 그것뿐 아니다. 만약 혼이 날만한 사고를 쳐도 미소로 빠져나가고 어쩔 때는 형아들이 잘못한 것처럼 위장하기도 한다. 살아남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안다. 훈계에 익숙하기 때문에 웬만한 부모의 화와 고음을 견딜 맷집을 가졌다. 눈치가 빨라 깊이 고뇌하고 연구하는 면이 적어 공부에 큰 의의를 두지 않는다. 사실 부모들이 그저 귀여워 공부만 살길이라고 키우지 않는다. 눈칫밥으로 세상살이에 별 탈이 없다는 믿음을 준다. 척박한 환경에서 길러진 생존능력이 탁월하다


셋째 아이라 해도 누구 닮았냐는 질문에 엄마 아빠 외에 할머니나 할아버지 정도를 언급할 수 있다. 엄마 아빠 중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귀로에 많이 서 본 아이들은 어느 대답이 유용했었는지 잘 안다. 그런데 제 식구 중 누군가가 아닌 타인을 지칭하며 닮았다고 할 눈치까지 겸비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무뚝뚝하며 애교가 1도 없는 그 아이 엄마를 생각하면 절대로 교육의 힘은 아니다. 어디서 이런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이만큼 살아왔다. 남편이 지쳐서 힘든 내색을 할 때가 있다. 그 말에 의도가 무엇인지 눈치가 없어 생뚱맞게 대답할 때가 있다. 표면적 질문에 객관적인 반응을 해주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들을 때 황당하다.


남편은 오늘 누구로 인해 힘들었다고 말한다. 나는 그 사람을 비난하거나, 당장 때려치우라고 반응해준다. 최대한 집중해서 듣고 진지하게 대안을 찾아 말해준다. 돌아오는 답이 가관이다. 왜 그 사람을 비난하냐고 한소리 듣는다. 이런 대 환장 파티가 있나! 나에게~~ 때문에 힘들다고 했으니, 힘들게 한 그 사람을 말로라도 복수를 해달라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에 다다르면 내가 더 화가 난다. 남편을 위한다고 한 말이 남편을 화나게 했단다. 무얼 원하는 걸까?


그럼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남편이 원하는 것은 존경과 칭찬이다. "여보, 그렇게 힘들게 하는 사람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견디다니, 당신 인성은 세상 최강이네" 또는 이렇게도 말해줄 수 있다. "그렇게 힘든 사람 때문에 회사가 망할 수도 있을 텐데 당신 때문에 회사가 난관을 헤치고 나가는 거 같아" 또 이런 말은 어떨까? "나라면 당장 때려 칠 텐데 우리 가족 생각해서 책임감 있게 관계를 헤치지 않으면서 일처리 하는 당신이 대단해 보여. 나라면 그렇게 못할 거야" 너무 이상적이거나 오글거리는 말일까? 이런 교과서적인 답을 들을 때 싫다는 남편들을 보지 못했다. 내가 해주는데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많이 보았다.


이렇게 글을 쓰고 누군가를 코치하지만, 나도 남편이 말하는 표면적인 내용에 어긋난 반응을 하거나 섣부른 대안을 제시할 때가 있다. 그러면 여지없이 그날은 1차전이 2차전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발발된 전쟁은 빨리 사그라들지 않는다.


"여보, 미안, 당신이 그렇게 힘든 사람 하고도 일을 하니 대단한~~"

"그만해. 맘 상했어!!!!"


오늘은 망했다. 내일 풀어야겠다.


3년을 꽉 채워 처세술을 연마한 그 아이보다 눈치가 없을 때가 있다.

내일 사탕 몇 개를 쥐어주고 아이의 노련한 처세 내공을 전수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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