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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Dec 20. 2019

'마우스'가 실신하셨습니다.

마우스를 위한 on, off전략

중요한 문서작업 중 마우스가 먹통이 되었다. 패드에 손으로 터치해서 사용하려니 구간으로 복사 붙이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시간은 급하고 손은 헛돌고 땀이 삐질삐질 났다. 다른 마우스를 찾았지만 없었다. 혼자 덩그렇게 뒹구는 마우스에게 흔들고 두들기며 애원했다. 사망하신 마우스의 구매이력을 생각했다. 혹시 as기간이 남았는지, 왕복 택배비를 내느니 새로 하나 사야 하는지 번민스러웠다. 작은 것 하나에 속이 시끄러워 아침부터 짜증이 올라왔다.


번뜩 무슨 생각이 떠올라 마우스 뒤를 열어보았다. 처음 샀을 때 건전지를 넣던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건전지가 다 닳았을지 모른다는 생각과 블루투스 부자재는 건전지가 오래간다는 생각이 부딪혔다. 그러나 이유도 모르고 as를 보냈다가 건전지 문제라고 결론이 나면 낭패 아닌가. 얼른 옆에 문구점으로 달려갔다. 일반 건전지가 아니라 납작한 것 두 개를 사 넣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도 초록불이 번쩍거려서 건전지 문제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초록불이 더 선명하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건전지가 답이었나? 컴퓨터에 커서가 깜빡이고 제대로 작동했다. 머리를 쳤다. 너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게 우스워 허무했다.


건전지가 생각보다 빨리 닳아버린 이유를 생각했다. 평소 작업이 끝나면 파우치에 넣을 때 마우스를 끄지 않았다. 사용을 안 하면 저절로 off가 되는 방식이며 손바닥보다 작은 마우스의 건전지 소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파우치 안에 마우스는 늘 초록불이 깜빡거렸다. 마우스를 흔들거나 터치가 되면 다시 on이 되는 취약함(사용 시에는 취약함이 아니지만)때문이었다. 달랑거리는 가방 속에 마우스만 저 혼자 대기상태로 일하고 있었다. 


전원을 꺼야 on상태로 인한 전력소비가 멈춘다. 일을 시작했다면 마감이 있어야 한다. 마감 후 쉼으로 채워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체력이 좋을 때, 흥이 날 때야 off 없이 24시간 on으로 열정을 불태운대도 문제가 없다. 40대가 넘은 내가 20대처럼 열정을 불태우며 계속 전원을 켜놓고 항시 대기, 긴장이라면 예상치 못한 어느 날 갑자기 멈출 수 있다.


어젯밤 실신했다. 병리학적 실신 증상은 아니었다. 눈이 너무 무겁고 아무리 씻고 비벼도 감기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내가 쓰던 시간의 총량을 생각했다. 평소보다 4시간 일찍 잔다면 생체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내 몸이 평소보다 4시간 일찍 일어나리라는 흐뭇한 상상을 하며 자리에 누웠다.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내일 준비물이 무엇인지 숙제는 했는지 물어볼 새도 없이 실신했다.


알람 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워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데 한참 걸렸다. 5분 이상 울리는 연속 알람에 겨우 눈을 떴다.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살면서 단 한번 눈곱이 말라붙어 눈을 못 뜬 적이 있었다. 그때와 비슷했다. 다행스럽게 눈곱이 아니라 눈이 많이 부었던 것이다. 아이를 낳고도 몸이 전혀 붓지 않아 특이한 산모라는 명예를 얻었는데, 많이 자고 눈이 붓다니 황당했다. 


실신하고도 개운하지 않은 아침, 4시간을 더 자고도 피곤이 무겁게 누르는 아침. 실신하셨던 마우스가 떠올랐다. 전원 on으로 쉼 없이 달리는 일상의 습관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전에 마우스 사건으로 업무가 끝나면 10에 5는 끄기 시작했다. 그것처럼 나의  일상이 목표를 위한 과업과 쉼의 적절한 조화를 실천하기로 했다. 책을 쓰겠다는 목표가 힐링이기도 하지만 과업이 된 지금, 정해놓은 시간에 나의 열정을 켜고 끄기 습관이 절실해졌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쓰기 방법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매일 원고지 20매를 정해놓고 쓴다. 쓰지는 날이든 안 써지는 날이든 분량을 채운다고 한다. 더 쓸 수 있어도 그 이상 넘치지 않고 안 써진다고 내버려 두지 않는 반복. 자신을 과신하지도 불신하지도 않음에서 나오는 간소하며 정돈된 일상이다. 그가 40년 넘게 롱런하며 소설을 쓰는 비결이 정확한 자기 조절력 때문인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쓰기 방법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매일 원고지 20매를 정해놓고 쓴다.
쓰이는 날이든 안 써지는 날이든 분량을 채우려고 한다.
더 쓸 수 있어도 그 이상 넘치지 않고 안 써진다고 내버려 두지 않는 반복.

자신을 과신하지도 불신하지도 않음에서 나오는
간소하며 정돈된 일상이다.



불안이나 과한 열정으로 자신을 몰아세우다가 실신이 아니라 오랜 off상태가 될 수 있다. 나에게 지난밤 실신 사건은 사소하지만 인상적이었다. 마우스 실신 사건이 나에게 알람과도 같았다. 평생 해야 할 일을 꾸준하게 성취하려면 하루의 on, off를 잊지 않아야 한다. 오래 할 수 있는 작은 습관을 알려준 마우스에게 궁둥이 팡팡!


오늘부터 일이 마치면 확실하게 off 하자고요. 저는 양으로 하지 않고 시간으로 정했어요. 정한 시간에 이불속으로 쑉~(업무 특성상 마감이 없거나 몰아쳐 일해야 하는 분들에게는 체력과 탁월한 건강을 허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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