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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Apr 17. 2020

독일어를 영어로 배우니 영어가 쉽다더라

느리게 걸어요. 다른 길을 찾으며

*이 글은 아이의 다양한 호기심이 어떻게 가지 칠지 긍정하는 한 부모의 희망과 상상을 기록한 것입니다. 느린 교육도 괜찮다는 필자의 생각에 혹하실 수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독일어나 영어와 같은 언어교육에 대한 글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히 리베 디히' 정도만 적습니다.


 큰아이가 갑자기 독일에 꽂혔다. 독일의 무엇에 꽂혔는지도 꽂힌 연유도 알 수 없다. 꽂혔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갑자기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리더니 아이가 웃으며 하는 말. "엄마, 독일어 배우고 있어" 정말 뜬금없었다. 나의 짧은 외국어 지식으로 볼 때, 독일어가 어렵다는 것 즈음 안다. 그리고 독일로 유학 가면 학위를 따기가 그렇게나 어렵다는 정도를 지인들에게 들어 알고 있다.


영어 하나만도 벅찼던 고교시절, 그러다가 국문학으로 진학했으니 나에게 영어가 머물다 간 시간은 6년이 다다. 거기에 고교시절 3년 불어를 제2외국어로 배워 "똥, 따, 떼/ 쏭, 싸, 쎄/ 갸흐 송~"정도를 기억하는 수준이니 독일어는 천국에 가서야 들을 수 있는 말 정도로 멀다. 그런 생소한 '이히 리베 디히'를 스스로 찾아 배운다니 기도 안차고 코도 안찼다. 내년이면 고등학교 진학을 하는데 말이다.

아이는 4차 산업혁명에 독일이 인공지능을 기계기술로 접목해 어쩌고 저쩌고 매우 잘한다고 말했다. 나도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미래교육에 대한 선지식이 있어야 학부모에게 교육철학과 방향을 말할 수 있어 시중에 떠도는 강의는 많이 들었고 책도 많이 읽었었다. 독일이 산업혁명의 선두에서 활발한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는 말을 귓등으로라도 들었다. 몰랐다면 주먹을 흔들며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말렸을 테지만 그럴 수 없었다.  '네가 독일이 아니라도 좋으니 배우는 과정에 뭐라도 남길, 앞으로 3개월 지켜볼게. 절너의 흥미가 떨어지는 날 실망했다고 하지 않을 테야'라는 다짐 했다.


아이에게 호기심과 흥미가 일어날 때 쓸데없다고 윽박지르면 있던 호기심도 사라진다. 지금의 발현된 호기심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 실제 독일어에 매력에 흠뻑 빠져 '이리히베디히'(이것밖에 몰라 죄송합니다.)를 더듬거리며 독일 친구와 온라인 소통을 하거나, 실제 독일 대학으로 기계기술분야를 배우러 떠날 수 있지 않을까? 너무 거창하다 싶어, 가까이 생각해보니 독일어를 를 가르칠 수도 있고 번역 작업을 할 수도 있다. 독일 음식을 소개할 수도 있고 독일 소시지에 정통해 여행을 다녀와서 그 소시지를 유통한다고 하면 나는 매우 놀라 자빠지겠지. 이런 상상 정도밖에 못할 정도로 굳은 머리라면 융합과 초연결의 시대에 아이의 호기심이 어떻게 뻗어나갈지 더욱 궁금해진다. 열린 마음으로 아이의 호기심을 지지하기로 했다.

아이가 자기 방에서 무료 앱과 유튜브를 이용해 익숙하지 않은 발음을 따라 한다. 밖에서 다 들리도록 신나게 뿜어내니 웃음이 난다. 내가 중학생일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브라질 노래를 듣고 반해서 물어물어 찾아냈고 한글로 옮겨 외운 뒤 장기자랑에 써먹던 기억이 났다. 그때 요들송 메들리에도 흠뻑 취했었고 샹송도 몇 곡을 따라 부르던 기억이 났다. 거기까지였고 지금 그것을 써먹을 일도 없지만, 영어 외에 다른 나라 말을 흉내 내며 몇 곡을 뽑아내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었다. 모든 노력과 탐구가 눈에 띄는 성과를 내야만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랑스러워하는 것을 얻었으니 큰 일을 한 것 아닐까.


일주일이 경과하자 아이는 신기하게 어떤 경로를 통해 독일에 유학하고 있는 한국 대학생과 접선해서 독일 대학가의 방세까지 알아냈다. 그러면서 배우는 방식을 업그레이드했다. 영어로 독일어를 배운다고 했다. 황당했지만 끝까지 아이의 말을 경청해보면 이렇다. "엄마, 영어로 독일어를 배우니까, 일단 영어가 너무 쉬운 언어같이 느껴지고, 더 잘 들려. 그리고 영어가 고맙기까지 해서 눈물 날 뻔. 독일어 진짜 어려워. 그런데 계속해볼 거야." 어려운 독일어와 발음에 놀라 영어를 사랑하게 된 것도 호기심의 하나의 결과인 것이다.

아이를 관찰하니, 세상에는 생각지 못한 길이 얼마나 많을까 희망이 생긴다. 호기심을 끊지 않고 조련하고 길을 터주면 또 다른 갈래길이 나타난다. 그러다가 결국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발굴해내지 않을까? 무한한 아이의 호기심 진행형에 괜히 엄마가 설레는 중이다.


느슨하고 느린 방식의 교육에 뭐라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굳은 신념과 비장함에 비하면 이러면 안 되는 것이다. 아이에게 잘못된 것을 허락한 부모처럼 보일 것이다. 한국형 학부모에 어울리게 불안해야 한다. 미래에 없어질 직업군에 놀라야 하고 노인인구폭발로 노년을 걱정하며 아이들을 더 채근해야 한다. 인 서울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냉혹한 취업의 상황을 들며 협박 비슷한 말로 위기감을 조성해야 한다.


그럴 수 없다. 아이가 찾아내는 다채로운 방식이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에게 잘 어울린다. 어찌 모든 아이들이 획일화된 방식으로 공부하고 하나의 기준에 평가받아야만 하는가. 아이가 느리지만 자기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길 바란다.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분야를 찾아내길 바란다. 찾으면 저절로 달릴 수 있는 힘이 아이 내부에 넘쳐날 것이다.


부모세대가 살아온 방식과 완전히 다를 가까운 미래는 어른들이 일러준 방식이 낡은 옷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모두 버려야 할 것은 아니지만 정답이 하나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여러 가지 길이 있고 다양한 문제 해결이 필요한 시대가 이미 도래했고 진행 중이다. 선진국은 나 혼자 많은 지식을 가진 인재를 바라지 않는다. 1등을 찾는 게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에 능하고 창의적 발상으로 질문하고 생각지 못한 분야를 연결할 수 있는 인재를 찾는다. 부모들은 지금껏 해오던 익숙한 방식을 정통이며 정답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아이에게는 고유한 자기만의 길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은 남들이 다 가는 길을 목표도 없이 처량하게 걸어가게 된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아니기에 무력할 뿐이다. 그리고 고달프게 성적이라는 결과물을 생산하는 기계로 그저 순응을 잘하는 인재가 될 뿐이다. '생각이 없어야 1등을 한다'는 s대학생 이야기는 웃픈 현실이다.


아이는 분명 자기만의 길이 있다. 똑같은 아이는 없다. 아이들의 관심사는 다 다르다.  자기만의 유일한 길은 오래 관찰하고 도전하는 아이만 발견할 수 있다. 안정의 반대는 불안이 아니다.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다. 흥미진진함과 성장이라는 반대말을 마음에 꼭꼭 새기니 '이히 리베 디히' 다음이 무엇인지 격하게 궁금해진다.

안정의 반대는 불안이 아니다.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다.
안정의 반대는 흥미진진함이며 성공의 반대는 성장이라는 반대말을
마음에 꼭꼭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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