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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신애 Jun 20. 2020

문정희 <뜨거운 소식> 감상

*주말인데 혼자이고 싶었는데, 시를 읽는데 와 닿아 기록합니다. 아주 주관적인 감상을요.


뜨거운 소식

                           문정희


몇 날을 혼자다

혼자 집이다

온 세계가 나 하나로 가득하다

시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창밖의 석류도 혼자 여물어간다

다 익으면 혼자 입을 열리라

그래, 홀로 잘하거라


차를 한 잔 마시려고

불 위에 물을 올린다

물이 불을 만나 와글와글 소리를 낸다


나는 물에게 말한다

뜨거워졌니?

어서 내 몸으로 들어오너라



몇날을 혼자인 날이 있었던가? 나의 시간의 퍼즐을 떼어 본다. 몇 날을 혼자였던 적은 나에게는 없다.


몇날을 혼자인 화자가 혼자임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창밖의 석류와 차를 마시기 위해 끓이는 물소리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석류와 청각적으로 물 끓는 소리가 혼자인 화자의 곁일 뿐 아무도 없다. 이 두 가지가 화자의 고요의 시간에 동참하고 있다.


혼자인 화자는 물에게 말을 건다. 뜨거워졌느냐고. 물이 끓는 것과 혼자인 화자가 그 물의 온도를 보면서 자신의 열정, 혹은 생의 열망을 연결 짓는 것 같다.


몇 날을 혼자며 아무도 없는 적막이 부러운 이유는 나는 몇 날을 혼자인 적이 없었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 수련회를 떠났을 때 며칠 있었던 시간 단 한 번. 그런데 그런 시간에도 나는 일을 했다. 아이들을 만나 가르쳐야 했고 학부모의 전화를 받았다.


그 누구에게도 걸려오는 전화가 없고 어떤 요구받는 일 없는 시간. 그것이 몹시 부러워지는 시다.

몇 날을 혼자, 혼자 집에서 칩거하는 기분은 어떨까?


나는 무척 소란스러운 하루를 시끌벅적하게 보내는 사람이고 사람들과 함께할 때 내가 가지 에너지를 다 쏟으며 살아왔다. 나에게 남은 마지막 1할도 가정에 다 쏟아 기진맥진해서 잠들던 날이 많았다.

 

어느덧 몸은 자유로워지고 아이들이 자기 몸을 간수할 수 있는 날이 닥쳤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몇 날을 혼자인 세계에 진입하지 못했다. 마음만 먹으면 열어볼 수 있는 세계의 문이지만 단연코 아직 도전하지 못하고 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오늘 같은 날도 나는 일상을 습관처럼 어슬렁거리는 중이다. 그 이유가 낯선 것에 대한 불안인지 아니면 혼자일 때 어떤 사유에 머물지 몰라 방황할 나를 직면하기 두려운 것일까?


어서 몇 날 혼자이고 싶고, 혼자 집이고 싶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적막 가운데 우두커니 혼자이고 싶은 반면, 혼자여 본 적이 없는 겁쟁이 같은 마음에 기어코 가족을 끼어 생각하고 일을 결부하곤 한다.

몇 년이 지나면 나에게도 이런 혼자라는 시간이 분명 닥칠 텐데, 벌써 안절부절못할지 모르거나 너무 심취해 호사롭게 지낼까 설렘 반 걱정 반이다.


아무튼, 밀린 집안일이며 종일 매달려야 할 어떤 것 앞에서 '화자'에게 어떤 기분일까 물음을 던진다. "뜨거워졌는지"



몇 날을 혼자다

혼자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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