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탐방 프로젝트 | by 하이디
집에서 멀지 않아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이유로 몇 년째 미뤄두었던 <닻 미술관>에 드디어 발걸음을 했다. 좁은 오르막 길을 올라 푸르게 가꾸어진 정원을 마주하니 유럽풍의 아치문과 하얀 기둥에 둘러싸인 중정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마치 외부와 차단된 듯 공기가 달라진 느낌이다.
이번 전시의 테마이다. 고요한 공간에 고요한 사진들이 걸려 있다. 흑백과 세피아톤의 섬세한 그라데이션이 안개처럼 스며든 액자들. 시시각각으로 바뀌었을 빛과 그림자가 찰나의 순간에 담겨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내 눈앞에 있다.
15명의 작가들 눈에 포착된 생의 순간은 어떤 것이었을까. 팸플릿에 적힌 작가 리스트 중에는 당연히 아는 이름이 없었다. 나에게 미술관은 주로 회화 작품을 보는 곳이었다. 알만한 사진작가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를 좋아해서 알게 된 '조엘 사토리'와 전시회로 접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전부이다. 작가들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순수하게 작품으로만 알게 되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어 맘에 드는 작품을 발견하면 카메라에 기록해 두었다.
집에 와서 찍어온 사진의 작가들을 대조해 보니 신기하게도 중복되는 이름들이 있었다. 두 명의 여성 작가였다. 작가 프로필을 검색하고 온라인 갤러리를 클릭하며 늦은 밤 또 한 번 감상의 시간을 가졌다.
이모젠 커닝햄 Imogen Cunningham (1883-1976)
식물, 누드, 산업 풍경 사진으로 유명한 미국 사진작가. 여성 최초 사진작가로 꼽힌다.
작은 프레임의 구름 조각일 뿐인데 나는 왜 그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을까. 구름을 멋지게 담아낸 수많은 사진과 그림을 보았는데 이 사진의 무엇이 시선을 붙잡았을까. 어느 지쳤던 날 창을 통해 보았던 눈부신 구름과 하늘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해서였을까.
멋진 구도나 철학적 메시지는 차치하고 가장 맘에 들었던 부인과 고양이와 어항이 있는 사진. 편안한 미소가 지어지는 일상의 풍경이, 창가의 햇살이 그냥 좋았다.
전시장에 걸린 4개의 작품은 같은 작가의 것인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각각 느낌이 달랐는데, 온라인 갤러리에서 찾아본 이모젠 커닝햄의 메인 작품 세계는 예상 밖의 스타일이었다. 특히 식물 사진에서의 과감한 구도와 음영의 표현은 흑백 사진도 이렇게 강렬하고 화려할 수 있구나 감탄하게 했다.
바바라 보스워스 Barbara Bosworth (1953~)
미국의 사진작가이자 교육자. 광활한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탐구하며 그 풍광을 담아낸다.
세 장의 프린트가 연결된 커다란 풍경과 가장자리로 보이는 노부부의 모습. 저마다의 사색에 잠긴 듯한 관람객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사진 속 분들과 비슷해진 부모님을 투영하며 바라보았다.
(R↑) My brother holding leaves from an oak tree planted by my grandfather, 1998
전시에서 접한 바바라 보스워스의 사진은 모두 가족을 찍은 것이었는데 카메라 너머에 있었을 작가의 다정한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이것은 웹에서 찾아본 그녀의 작업 영상을 통해서도 전해졌다. 백발을 날리며 녹음 속으로 들어가 커다란 뷰 카메라를 꼼꼼히 설치하는 모습, 창밖 풍경을 몇 시간이고 바라보던 어린 시절 이야기, '느리게' 준비해서 '느리게' 보고 찍는 작업 방식, 새 사진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
하늘, 바다, 초원, 숲과 나무, 그곳에서 살아가는 동물과 곤충까지. 바바라 보스워스가 담아내는 세상은 그녀가 찍은 새처럼 내 마음에 날아들었다. 때로는 저 멀리 별무리에, 때로는 작은 풀꽃 하나에. 렌즈가 어느 곳을 향하든지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 배어 나왔다. 그래서일까. 사진을 바라보는 동안은 나도 그 장소에, 그녀의 바로 옆에 서 있었다.
교과서에 나와서, 유명하니까 상식이라고 해서 알아두었던 작가가 아니라 작품이 좋아서 작가를 탐색해 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발로 직접 다니며 발견했다는 뿌듯함도 있었던 것 같다. 충동적으로 정한 한 달에 한번 전시탐방 프로젝트가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겠지만 무엇이 얻어지는지 계속 기록해 봐야겠다.
탐방탐방 스크랩북
"사진은 우리가 살아있었던, 바라보았던 순간의 그림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