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여름에 쫌

여름엔 고양이_루이스 웨인

탐방탐방 프로젝트 | by 하이디

7월 뙤약볕 좋은 날 동생과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

오전에 방문한 에코박람회 일정이 일찍 끝나고 점심을 먹은 곳에서 행운의 티켓을 얻게 되었으니... 어머 이건 가야 해. 다리가 아파도 무조건 가야지. 고양님들 용안이 가득하다는데.


루이스 웨인 Louis Wain (1860-1939)

고양이와 동물을 사랑한 영국의 미술가. 수많은 고양이 그림을 그렸고 말년에 정신질환을 앓음.


말년이 편안하지 못한 예술가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 그래도 생전에 반려묘와 소소하고 따듯한 일상을 충분히 누렸을까. 부디 그랬기를 바란다.


티켓 박스 표지판을 든 아메리칸 숏헤어가 우리를 맞이한다. 벌써 귀엽다며 입구를 찾는 두 눈과 발걸음이 바쁘다. 루이스 웨인의 사인을 지나자 벽면은 온통 고양이가 주인공이다. 웰컴 투 캣 월드!


시작은 모노톤의 목탄, 잉크, 석판화 피스들. 바로 이런 것을 원했다. 빛바랜 종이 위에 남겨진 날것의 선들. 이 화가는 정말 동물에 진심이었음에 틀림없다. 털, 깃털, 지푸라기 하나까지. 헛간에 찾아온 고양이 외의 동물들과 시골 풍경 묘사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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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구도의 고양이 드로잉 중에는 루이스 웨인의 첫 반려묘 '피터'도 있었다. 앉아서 무언가에 집중하는 피터를 그는 가만히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았겠지. 그리고 입가엔 저절로 흘러나온 미소도.


나는 지금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지만 부모님 집에서 잠시 고양이와 지낸 적이 있다. 동생이(미술관에 동행한 동생과 다른) 엄마에게 등짝을 맞아가며 데려온 하얀 솜뭉치 '라라'는 이제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영원한 첫 번째 반려묘로 내 메일 계정에도 이름이 남아 있다.


라라가 어렸을 때 사진과 동영상도 열심히 찍었지만 가끔 스케치를 하기도 했다. 움직이는 동물을 스케치하기가 어려워서 주로 잘 때 그리거나 사진을 보고 그렸다. 생각난 김에 묵혀 둔 스케치북을 뒤져서 다시 찾아보았다. 왠지 사진으로 볼 때보다 그림으로 남긴 라라의 모습에 더 정감이 가는 건 그리던 순간의 공기와 시간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루이스 웨인의 작업 시기와 테마별로 전시 공간을 옮겨 다니다 보니 구석에 놓인 입간판이 눈에 띈다. 가림막 출입을 막는 용도로 설치했지만 그것마저도 작품의 연장이다. 사실 이 전시의 기획자도 애묘인이 아니었을까? 준비하면서 얼마나 즐거워했을까 멋대로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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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후반으로 가면서 고양이들은 점점 의인화되어갔다. 표정이 풍부해지고 옷을 입고 직업도 가졌다. 패러디와 유머 코드가 가득한 고양이 세상은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고양이의 눈으로 바라보면 쓸데없이 진지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한 세상이었을까.

나는 식당이나 공공장소로 스케치북을 들고 가서 다른 자세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가능한 한 그들의 인간적 특징에 가깝게 고양이로 그려낸다. 이것은 내게 이중성을 주며, 이 공부가 나의 가장 유머러스한 작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컬러화는 사용한 재료도 다양했는데 색연필, 과슈, 수채화, 석판화 등 종류에 따라 그림의 무드와 고양이의 의인화 정도가 달라져서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석판화의 섬세함은 내 발걸음을 오래 잡아두었다. 신문, 잡지사에서 당시 신기술인 사진과 경쟁하는 삽화가로 활동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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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좋아해서 루이스 웨인의 출판물이 전시된 코너가 반가웠다. 시간을 말해주듯 낡고 빛바랜 종이들이 그의 그림과 오히려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느낌이다. 아직도 출판되는 책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온전치 못한 초판본을 구하는 수집가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어디서든 루이스의 고양이를 보게 되면 반가움에 눈을 반짝이겠지. 부디 나의 소유욕이 감상으로 만족하길 바란다.


탐방탐방 스크랩북

위키백과로 검색한 루이스 웨인 프로필. '우리의 말 못 하는 친구 연맹 관리 이사회'라니요! 어떤 조직의 이름이 이렇게 친근하고 귀엽다면 홍보 효과도 더 좋을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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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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