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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후 Apr 29. 2021

지금 바로 여기, 그리고 나

Carpe diem.

26살 때 여름방학, 대학 4학년 마지막 대학생활에 그 동안 궁금하고 하고 싶고 미뤄왔던 국토대장정을 해보고자 준비했다. 땅 끝 마을 해남에서 임진각까지 총 2달 안 되는 여정에 나는 신청했다.





 떠나기 전 나는 졸업 후 언제 떠나보겠느냐며 우리나라 전 국토를 밟아본다는 생각에 들떴다. 산과 나무와 바다를 보면서 여행하는 느낌? 이 들 것 같다는 부푼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정 반대였다. 6월 초였지만 너무나 더운 날씨와 무거운 짐 때문에 몇 시간만 걸어도 기진맥진이었고 너무나 쌘 햇빛에 목과 손토시를 한 팔이 따가울 정도로 탔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한 달 반만에 완주해야 되기 때문에 거의 걷는 것이 군대의 극기훈련 수준이었다. 쉬는 시간은 중간중간 5~10분 밖에 없었고 걷는 것은 엄청나게 속도를 내서 하루 안에 우리가 목표한 걸음을 걸어야 했다.




 1~3일차에는 정말 낙오자가 많고 부상자도 많아 차를 타고 목표 지점까지 오는 사람도 많았다.  10일쯤 되는 날이었나, 나는 생각과는 너무 다른 여정에 고민했다. "이렇게 해서 완주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




 풍경은 커녕 매일의 반복되는 엄청난 강도의 걸음과 조금만 더 걸으면 피부가 녹아내릴 것 같은 기분, 여행이 아니라 극기훈련 같은 이 여정에 나는 흥미를 잃었고 결국은 안동까지 와서 "그냥 집에 갈래요"하고 집으로 왔다.




 어린 마음에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왠지 모를 실패했다는 느낌이 굉장히 나를 힘들게 했다. "이 정도도 못 하나?" 내심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나를 위로하며 그렇게 집으로 왔다.




 지금의 나는 하루에 2~3시간 정도 걷는다. 직장과 그리고 헬스장, 마트 등 내가 가는 모든 곳은 걸어서 간다. 걷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문득 그때 그 시절을 떠올랐다. 




힘들깄 했지만 여러 사람들과 걸으면서 이야기도 하고 재밌는 추억도 많았다. 즐거운 점도 많았지만 가는 여정의 목표가 너무나 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돌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내가 원했던 여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때의 나를 돌아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지금 거기, 그 순간에 행복하지 못한 나'였다.




 그 순간에 불만이 있던 없던, 그 순간은 나에게 한 번 밖에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이었다. 걷는 많은 순간을 불평과 불만으로 보냈던 기억이 난다. 나의 목표는 임진각까지 도착하는 것이지만 나는 매 순간 불행했던 것 같다. 그것도 외부 환경이나 다른 사람들이 아닌 내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때 알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하지 못하면 영원한 행복은 없다고. 돈을 많이 모은다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하고 내가 가진 목표나 이상을 이룬다면 행복해 질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거쳐온 수많은 시절도 내 소중한 순간이고 인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불행했던 행복했던 그 과정도 나에겐 참 소중한 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때를 생각해보며 나는 '지금 여기, 그리고 나에게 집중하는 것' 내 삶에서 가장 큰 가치관이 되었다. 그리고 옛날 20대 초반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를 보면서 "carpe diem"이라는 용어가 무슨 말인지 드디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졌다.




  미래의 내가 어떻게 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나중에 잘 된 일 일수도, 잘못된 일 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상황이 어떻든, 결과가 어떻든, 지금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든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에 내가 행복하냐'이다.




 이 질문 하나가 나의 삶의 모든 선택에 방향을 정해주었다. 그리고 알았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가치관과 마음가짐, 인생관으로 살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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